유저와 기업, '갑을관계'가 아니라 '콘텐츠와 소비자의 관계'일뿐

익명성에 기댄 무분별한 욕설과 비방은 게임산업 종사자들도 피해갈 수 없다.

게임물관리위원회(위원장 여명숙, 이하 게임위)는 게임 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언어폭력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문제 해결에 직접 발 벗고 나섰다.

게임위는 올바른 언어 사용과 언어 폭력 행위의 법률적 책임에 대한 내용을 담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 유저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익명성에 기댄 유저 간의 게임 내 언어 폭력 사안은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당사자인 유저들 사이에서도 자중하려는 분위기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를 향한 언어 폭력은 아직도 멀어보인다.

■ 감정노동과 흡사해지고 있는 게임 커뮤니티 운영

모바일 게임 개발사가 유저들과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 만든 커뮤니티라도 욕설과 비난의 글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만연하다.

보통 게임 업데이트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뽑기에서 원하는 내용물이 나오지 않는 내용의 글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건의, 버그 신고 게시판에올려지는 그런 글에는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는 게임사 직원이 먼저 확인하고 사과의 말과 함께 답글을 단다.

이런 풍경은 오래되지 않았다. 국내 게임산업이 온라인, 모바일 게임 위주로 트렌드가 바뀌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케팅, CS(고객만족)과 같은 유저 서비스 업무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자고 일어나면 신작게임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게임 시장에서 유저들을 붙잡기위해 지속적인 콘텐츠 업데이트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길면 1달, 짧으면 1,2주 텀으로 콘텐츠 업데이트를 내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업데이트 스케줄은 인력이 많은 대형 게임사에도 버거운 업무량이다.

몰아치는 업데이트 스케줄 속에서 완벽한 게임 밸런스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저들의 욕설과 비난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돈과 시간을 들여 하는 게임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화가 나는데 보통 게임사를 향한 욕설이나 비난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유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모두 모니터링해야 하는 게임사 담당자의 경우 유저들의 욕설과 비난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보기 싫어도 봐야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유행했던 한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의 TV광고를 보면 고객에게 인격적으로 모독당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비화를 엿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커뮤니티에서 난무하는 욕설과 비난은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 갑을이 아닌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

해당 사건 대표이사 사과문 댓글 (사진 출처: 커뮤니티 캡쳐)

최근 게임사가 공정한 경쟁을 해야하는 게임의 질서를 해쳐 유저들의 신뢰를 잃는 사건이 일어났었다. 유저들은 분노했고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문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유저들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에서 대표이사의 사과문은 도화선에 불과했다. “그게 사과문이냐”, “머리숙이는 영상을 찍어라” 등 유저들은 도를 넘어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게임에 돈을 썼으니 이정도는 당연하다 라는 것처럼 말이다.

잘못은 게임사에도 있었다. 문제를 파악한 후 즉각적인 대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대두되며 유저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자 게임사는 당일 저녁 해당 건을 조사하겠다는 공지를 올린 뒤 만 하루 동안 유저들은 별다른 소식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것.

게임사가 직접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이유는 유기적인 소통과 빠른 피드백을 들 수 있다. 복잡하고 충격적인 사안이라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면 중간 진행 상황이라도 별도 공지를 통해 유저들에게 이해를 먼저 구했어야 했다.

유저들은 하루 내내 기다린 후에 공지를 접했고, 또 하루를 더 기다린 후 대표이사의 사과문을 접했다. 기다리다 지친 유저들의 도 넘은 비난과 욕설은 당연한 수순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언어 폭력과 도를 넘은 비난이 정당화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구 한명이 욕설을 하기 시작하면 군중 심리에 섞여 동화되기 쉽다. 내 한마디 쯤이야 하는 익명성에 기반한 언어 폭력을 합리화 시키면서 더욱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단을 정당화 시키지는 못한다. 유저와 게임사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의 관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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