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B Winter 2012-2013 결승 5세트, GSG vs CJ엔투스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영향력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2011년 한국 출시부터 지금까지 부동의 국민 게임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e스포츠다. LCK를 비롯해 수많은 대회를 수놓은 드라마는 한국과 전 세계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롤스토리'는 이 게임을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명승부 중 한 장면을 포착해 당시의 배경과 서사를 전하는 코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전략, 어느 선수의 환호와 눈물, 짜릿한 혈전이 13년의 시간 동안 녹아 있다. 이것은 e스포츠가 스포츠이자 엔터테인먼트로 가치를 지니는 원천이기도 하다.  



보존해야 할 LoL 경기를 선정할 때 첫 번째는 무엇이 좋을까. LCK는 이미 방대한 기록을 통해 명승부들을 보존하고 있다. 반면 1부 리그가 아니기에 잊혀질 수 있지만, 당시 무엇보다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고 이후 더 많은 이야기로 뻗어나간 경기도 있다. 

솔로 랭크에서 게임 시작과 함께 모든 팀원이 미드를 향해 달린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까. 단체 트롤이겠거니 판단하고 나의 팀운과 라이엇의 제재 프로그램을 저주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 승리를 위해 사용한 전략이라면 어떨까.

'NLB'라는 대회가 있었다. 나이스게임TV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의 줄임말로, '롤챔스' 시절 초창기에 하위 리그 역할을 했다. 아마추어 팀부터 LCK 중도 탈락팀까지 맞붙는 장이었으며, 2013년부터 우승팀에게 롤챔스 본선 직행 시드를 부여해 만만치 않은 중요성을 가졌다.

컨디션 헛개수 NLB 윈터 2012-2013, 결승에 두 팀이 올라왔다. 하나는 익히 알려진 이름 CJ엔투스였다. 또 하나는 GSG. 이전까지 로망(RoMg)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왔고, 준프로에서 시작해 갖은 파란을 일으키며 '우주체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승 예측은 프로팀인 CJ엔투스로 기운 상태였다. "인섹이 고통받는 팀"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롤챔스에서 이미 GSG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서로 주고받는 승패 끝에 세트스코어 2:2가 만들어졌다. 

문제의 최종 5세트는 여기서 시작됐다. 

중계진, 관중, 시청자를 모두 멘탈 붕괴시킨 당시 GSG(위) 조합
중계진, 관중, 시청자를 모두 멘탈 붕괴시킨 당시 GSG(위) 조합

■ "5미드, 5미드예요. 미드가 밀려요!"

블루 진영으로 시작한 GSG는 밴픽 1페이즈에서 트페, 올라프, 케이틀린을 가져왔다. 무난한 미드, 탑, 원딜 픽으로 보였다. 정글 마스터 이, 서폿 신드라 등 기상천외한 픽을 꺼내다 터지는 양팀이었지만 단두대 매치인 만큼 이번만큼은 신중한 듯했다. 

라는 예측은 4-5픽에서 충격적으로 빗나갔다. 블리츠크랭크, 그리고 하이머딩거였다. 관중석에서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지금은 메타에 따라 종종 나오지만, 리메이크가 되기 전 이 시절은 대회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챔프다. 

게다가 강타 스펠은 하이머딩거가 들었다. 무슨 챔프가 어느 포지션인지도 알 수가 없는 혼돈이었다. 게임 시작 2분 뒤 양 진영의 미니언이 처음 마주쳤다. GSG 팀 5인 전원은, 상대 레드를 그랩으로 당겨서 먹은 뒤 미드로 향했다. 

'5미드' 전략, 정확히는 올라프만 로밍으로 사이드를 커버하면서 4명이 미드를 푸시하는 정신 나간 전술이었다. 그리고 1분 30초 뒤, 그들은 미드 1차 포탑을 파괴했다.

게임 시작 9분 30초, 미드 억제기가 사라졌다. 

■ "10명의 챔피언이 있었고, 가장 강력한 것은 슈퍼 미니언이었다"

CJ엔투스는 미드 라인이 터져나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쉔과 이즈리얼이 사이드를 맡은 뒤 나머지 셋이 방어에 나섰지만, 상대 픽은 모두가 라인 푸시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덫과 딩거 포탑이 깔리고, 트페와 케이틀린이 순식간에 라인을 지우면서 블리츠크랭크가 압박을 넣었다. 카직스, 쉔, 이즈리얼과 소나가 라인 푸시를 따라잡을 리가 없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억제기가 깨지고 슈퍼 미니언이 몰려오는 순간, 재앙이 시작됐다.

그나마 상대 의도를 눈치채고 마지막에 픽한 초가스가 라인을 받아내려 시도했다. 그러나 GSG 역시 이를 파악하고 초가스에게만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포탑 방패도 없던 시대에 이것만으로 공세를 막는 것은 무리였다.

GSG의 전략은 정확히 4미드와 올라프 1로밍이었다. 올라프는 유체화와 순간이동을 쉬지 않고 쓰면서 사이드 라인을 혼자서 막아내고, 유사시 미드로 합류해 싸움을 결정짓는다. 그날 매치의 밴픽 과정에서 상대에게 라인 정리가 약한 챔프를 유도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CJ에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인섹' 최인석이 자신의 방송에서 털어놓은 비화에 따르면, 쉔이 최대한 빨리 6레벨을 찍자마자 궁극기로 합류하면서 한타를 열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롱판다'의 쉔이 4레벨에 내려와 무리한 점멸 도발을 시도하다가 터졌고, 그 뒤로 미친 듯이 굴러가는 게임을 막을 수 없었다. 게임 10분 만에 밀려들어오는 슈퍼 미니언을 막기조차 어려운 챔프들이었다. 

결국, GSG는 상대 넥서스를 19분 20초경 파괴했다. 하이머딩거가 도란 링만 4개를 사오는 등 모두가 초반 아이템만 구매하면서 내일을 보지 않고 달려온 결과였다.

■ "발상에 한계 따위는 없다, 어느 시대라도"

GSG의 전략은 LoL에서 교본처럼 내려오는 경기 법칙을 기본부터 파괴하고 있었다. 

EU메타로 불리던 포지션 정립은 물론, "라인에 누군가는 서야 한다"부터 "누군가 강타를 들고 정글을 돌아야 한다"까지. 하이머딩거의 강타는 정글 캠프 처치가 아니라 라인 미니언을 빨리 없애버리기 위해 사용됐다.

현장은 당연히 열광의 도가니였다. LoL 팬들 사이에서도 충격의 한 경기가 됐다. 우승 직후 GSG는 당시 존재하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성했다. 이후 MVP 블루가 이 팀의 시드권을 사들이면서 선수 세 명을 함께 영입했다. 이 행보는 한국 LoL 판도가 뒤흔들리는 시작점이었다. 

당시 정글을 맡은 '솔로' 이관형은 닉네임을 바꾼 뒤 서포터로 포지션을 옮겼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레전드 서포터 '마타'다. 2014년 삼성 화이트에서 현재까지 정석이 된 시야 중심 운영을 정립했고, 그해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한 이지훈은 2015년 '페이커'와 교체 출전하며 역시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함께 했다. 특히 시그니처 챔프인 아지르로 스프링 결승 MVP를 받으면서 "당시 SKT는 미드에 롤의 신과 황제가 함께 있었다"는 말로 회자되곤 한다.

'푸만두' 이정현은 2013년 페이커와 한 팀이 되어 서머 우승, 한국 최초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함께 한 서포터였다. '천주' 최천주는 삼성 블루에서 2014 스프링 우승, 2015년 중국 LGD로 이적해 서머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 면면으로도 전설로 남을 만하고, 당시 이런 광기 가득한 전략을 생각하고 수행할 수 있었던 창의력도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미래에 꽃피우게 될 선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응축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지금은 나이스게임TV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프랜차이즈 도입 이후 NLB와 같은 시스템도 사라져 대회 공식 영상과 사진조차 찾기 어렵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막아야 하고, 아마 수많은 이들이 앞으로도 기억하지 않을까. 모든 게임의 전략에 한계란 없다. 그것이 우리가 e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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