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속 극적인 드라마, 사회문화적 정신이 되다

[게임플] 게임과 얽힌 유행어가 모처럼 희망찬 단어로 나타났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줄임말은 '중꺾마'. 모든 스포츠에서, 그리고 문화계와 정계까지 이 말을 인용하고 나섰다. 예전부터 없던 말은 아니지만, 올해 말을 관통하는 명언으로 새삼 떠오른 것이다.

'중꺾마'는 한국의 대표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 중 하나인 '데프트' 김혁규에서 나왔다. '페이커' 이상혁과 함께 국내 리그 LCK의 최고참이자 최고의 원거리 딜러 중 한 명이다. 중국 LPL과 더불어 모든 대회를 석권했지만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만 비어 있었고, 매년 끊임없는 도전 끝에 마침내 올해 롤드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 말은 데프트가 직접 한 말이 아니었다. 그룹 스테이지 중간 인터뷰를 진행한 쿠키뉴스가 실제 답변을 변형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창작해 넣은 것. 하지만 당시 상황과 너무 잘 어울렸고, LoL 팬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데프트가 속한 DRX는 LCK 출전팀 중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리그를 6위로 마감했고, 선발전을 거쳐 간신히 롤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우승은커녕 8강만 가도 성공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신예 선수들이 베테랑 데프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고, 눈에 띄는 기량 발전이 롤드컵 도중 나타나기 시작했다.

'데프트(Deft)' 김혁규 (사진: LCK 플리커)
'데프트(Deft)' 김혁규 (사진: LCK 플리커)

그저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 끝이라면 지금 정도의 파급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8강부터 시작된 DRX의 시나리오는 '꺾이지 않는 마음' 그 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DRX는 8강에서 중국의 강팀 EDG를 만나 '패패승승승'으로 드라마 같은 리버스 스윕을 기록했다. 이긴 경기 모두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였다. 4강부터는 LCK의 집안 싸움이었다. 서머를 우승했던 젠지 e스포츠를 상대로 1패 뒤 3연승, 결승에서 T1을 상대로 또다시 5세트까지 가는 혈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모두 1세트를 진 뒤 역전승이었다. 그 누구도 우승 후보로 상상조차 하지 않은 언더독의 거짓말 같은 반란이었다. 데프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대답해 '중꺾마'의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프로 데뷔 9년 만에, 그리고 롤드컵 출전 일곱 번 만에 마침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쓰러지고 좌절해도 언제나 연습을 멈추지 않았고, 높은 프로의식으로 후배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일제히 존경을 받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전설적인 선수의 마지막 목표, 상대적 약팀, 명승부와 극적인 역전승까지. 스포츠 드라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소재가 현실에 압축됐다. DRX와 데프트의 스토리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16강 진출과 함께 '중꺾마'를 높이 세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사진: 대한축구협회)
16강 진출과 함께 '중꺾마'를 높이 세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사진: 대한축구협회)

롤드컵이 끝나고, 다른 스포츠에서도 '중꺾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범용적으로 어울렸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어느 야구 기자가 열세에 놓인 키움 히어로즈에게 필요한 것으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정적 계기는 11월부터 열린 카타르 월드컵이었다. 1무 1패로 16강 경우의 수가 매우 희박해진 한국 대표팀에게 '중꺾마'를 인용한 응원이 쏟아졌고, 결국 포르투갈전 역전승과 함께 16강 진출을 해냈다. 운동장에서 대표팀 선수들은 '중꺾마'를 써넣은 대형 태극기를 들며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알렸다.

공교롭게도, 2022년은 각 종목에서 수많은 숙원이 풀리며 '성불의 해'로 불리기도 한다. 데프트의 롤드컵 우승에 더해 '쵸비' 정지훈은 무관의 굴레를 던지고 LCK 우승컵을 들었고, NBA의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는 파이널 MVP 수상으로 커리어의 최종 조각을 완성했으며, 리오넬 메시는 월드컵 우승으로 마침내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반열에 올랐다.

결국 '중꺾마'는 올해를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떠올랐고, 정계 인사들과 대통령까지 이를 언급하는 등 사회 전반적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데프트는 담원 기아 이적 후 박보균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각종 지상파 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다.

e스포츠의 정체성을 굳이 다시 따질 필요 없이, 이미 스포츠 중 하나로 우리 일상과 문화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스포츠는 어딘가에서 공식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승부가 스포츠 정신을 함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스포츠다.

점점 자조와 혐오가 만연해지는 인터넷 풍경에서, 모처럼 사회에 희망과 의지를 주는 유행어가 탄생했다는 반가움도 나온다. 글로벌 경제 한파가 몰아닥치는 시기, 데프트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스토브리그를 거치면서 DRX 선수들은 팀을 나누어 흩어졌다. 하지만 마음이 흩어진 것은 아니다. 2023년에도 그들은, 그리고 모든 선수들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또 새로운 승부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이 올해가 우리에게 남기는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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