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가 주류가 된 시장, 팬덤 확보 위한 치열한 경쟁 심화
시장 가능성만 보고 뛰어들면 실패 가능성 높아, 높은 시장 이해도 필요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X게임 페스티벌 ‘AGF 2023’이 성료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의 수많은 소비문화의 장이 펼쳐졌고 이 모든 것의 코어에는 일본 만화풍을 기반으로 파생된 장르를 한데 모아 설명하는 ‘서브컬처’가 있었다.

‘서브컬처’의 원래 용법은 보다 포괄적으로 사용되지만, 현재는 애니메이션, 만화를 전반으로 이르는 데 쓰인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오타쿠 문화를 설명한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소비 역사는 30여 년이 넘으며 오랜 기간 한국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소비 형태지만, 근래 겪는 ‘서브컬처’ 열풍은 이전과는 궤가 다르다는 것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호요버스의 게임스컴 참가 홍보물
호요버스의 게임스컴 참가 홍보물

요컨대 현재의 서브컬처는 단순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만을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브컬처 소비문화를 주도하는 생산지는 일본이 도맡지만, 이번 AGF의 메인 스폰서를 호요버스가 맡은 것처럼 중국은 물론 한국, 미국 등 국경을 찾아보기 어려운 전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다.

그 이름처럼 다소 국한된 지역과 계층 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해석됐던 ‘서브컬처’는 이제 메인 스트림이 됐으며 하위문화의 개념보다는 해당 장르를 일컫는 데 사용된다.

게임 업계에서는 일찍이 서브컬처를 컨셉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많았고 이를 소비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일본 애니메이션풍 RPG, 카툰 렌더링 그래픽 등으로 소개됐던 게임들이 이제는 서브컬처라는 용어 아래에 집합하고 있다.

호요버스의 '원신'
호요버스의 '원신'

최근의 ‘서브컬처’ 용어 사용의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게임 업계에서 용어 사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에는 우연히 2020년 출시한 ‘원신’이 서 있다. ‘원신’의 글로벌 흥행은 현재의 서브컬처 열풍의 중심으로 해석되곤 한다.

‘원신’은 출시일에 구글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통합 기준 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 다운로드 2위, 수익 2위에 올랐으며 출시 한 달 뒤에는 게임을 넘어 모바일 전테 카테고리에서 수익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원신’의 글로벌 누적 수익은 51억6000만 달러(약 6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게임과 서브컬처의 결합의 이상적 방안과 흥행 공식을 시장에 내놓은 호요버스는 이후에도 꾸준히 흥행작을 출시했고 지난 4월 출시한 ‘붕괴: 스타레일’은 최근 보고에서 누적 5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호요버스는 이제는 명실상부 서브컬처 명가로 불리며 “서브컬처는 돈이 된다”에서 “서브컬처는 글로벌로 돈이 된다”를 증명했다. 덕분에 중국 시장은 물론 전 세계 시장이 서브컬처 장르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번 지스타 2023에서 드러난 몇몇 게임사의 방향 역시 서브컬처로 가닥이 잡혀 있었다.

웹젠이 이번 지스타 2023에 출품한 '테르비스'는 의외의 퀄리티로 호평 받았다.
웹젠이 이번 지스타 2023에 출품한 '테르비스'는 의외의 퀄리티로 호평 받았다.

지금까지 서브컬처에 도전하지 않은 개발력이 있는 게임사들은 서브컬처 장르 이해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서브컬처를 이미 도전했거나 이해가 있는 스튜디오는 현재의 작품을 수선하고 장기 흥행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오리지널 IP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요버스를 위시한 중국 시장, 서브컬처의 본산 일본, 트렌드를 잡아가는 한국 등 모든 시장이 현재 서브컬처 포화 상태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서브컬처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릴만한 현재 팬덤 확보를 위한 싸움과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현재의 서브컬처 시장을 2010년 즈음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있었던 치열한 걸그룹, 보이그룹 시장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접근성 높은 시장에 소비자는 수많은 선택지를 가진다. 온보딩 직후 흥행도 중요하지만, 이후 운영과 콘텐츠에 따라 흥행이 결정된다.

포화된 시장에서 콘텐츠는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를 들고 시장 공략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며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시장에 선보여진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팬덤을 확보하는 팀만이 살아남는다.

12월 5일 기준 글로벌 모바일 매출 순위. 서브컬처 대세라지만, 매출 순위 상위권에 드는 일은 쉽지 않다.
12월 5일 기준 글로벌 모바일 매출 순위. 서브컬처 대세라지만, 매출 순위 상위권에 드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 서브컬처 시장에서 글로벌 성공 공식을 써낸 ‘원신’의 성공 비결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캐릭터 매력, 내러티브, 게임 플레이 재미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게임의 전부라고 볼 수 있으며 서브컬처가 아닌 모든 게임에 해당하는 공식이다. 게이머는 기꺼이 훌륭한 이야기를 위해 돈을 지불하며 훌륭한 게임성을 즐기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게임 개발은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 내러티브 그리고 흥행을 위해서 결정적으로 캐릭터 매력을 단단히 쌓아 올려야 하는 서브컬처다. 다양하고 창발적인 방식의 캐릭터 모에화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 서브컬처 업계다. 업계에서는 최근 만만히 보고 도전했다가는 큰코다치는 장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덕심을 자극하기 위한 허들이 경쟁에 경쟁을 거듭해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또한 기존 글로벌 시장의 흥행을 위해서 이용되는 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고공행진을 이어 나가는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지난 9월 누적 매출 5억 달러(한화 약 6,625억 원)을 기록했다.

출시 1주년 대규모 업데이트에서 일본과 한국 앱스토어 매출 2위를 기록하며 최근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등지에서 장기 흥행 체제를 구축하는 모습이다. 센서타워 보고서에 따르면 ‘니케’는 지난 11월 출시 직후 2주 만에 6,700만 달러(한화 약 896억원)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니케'는 출시 당시 지역별 매출에서 일본이 37.9%를 차지하며 가장 비중이 높았다. ‘니케’의 이와 같은 일본 흥행에는 탄탄한 세계관과 캐릭터의 디테일, 완성도 높은 연출 등 다양한 요인이 해석되지만, 출시 전후 일본 시장에서 TV와 옥외 광고 등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초기 흥행을 견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브컬처는 게임성과 막대한 마케팅 비용까지 감내해야 하는 시장이다. 올해에도 수많은 게임이 여러 내외부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섭종'을 결정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게임은 장기 흥행을 위한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흥행에 성공하는 작품이 많을수록 흥행에 실패하는 작품들도 다수다.

기자가 'AGF 2023' 현장에서 느낀 서브컬처 장르 게임 팬들의 열기는 아직도 쉽게 잊히질 않는다. 당시 현장은 AGF(Anime x Game Festival)라는 이름에 걸맞은 페스티벌 분위기였다. 다양한 연령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을 보고 서브컬처 문화의 지속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현장에서 유저들은 주어진 창작물을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서브컬처 문화가 지금까지 자생해온 것처럼 제2, 제3의 콘텐츠를 재생성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브컬처 시장에서 2차 창작물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AGF에서 만난 유저들은 훌륭한 작품성을 가지고 승부하는 작품이라면 기꺼이 사랑과 성원을 보낼 것으로 보였다. 2024년과 2025년 많은 신작이 이들을 찾아온다. 이 중 전도유망한 서브컬처 시장의 미래만 보고 도전한 작품과 '찐'으로 장르와 유저를 이해한 작품이 분명 다른 결과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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