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흔한 손동작인데?"로 넘어갈 수 없는 '헤이트 심볼'
철저하게 피해 받은 게임계, 가해자라는 누명까지 써야 하나

혐오 집단은 사라져도 그들이 흘린 혐오는 지워지지 않는다.

스튜디오 뿌리에서 시작된 애니메이션 작업물 속 혐오 상징 손동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넥슨을 비롯한 게임계는 전수검사와 수정 작업에 한창이다. 외부에서는 고의성과 혐오 의미를 입증할 수 있느냐는 반박도 있다. 그러나 조기에 잡지 못한 혐오 상징물은 맥락과 정황을 살펴보며 잡을 수밖에 없고, 또 잡아야 하는 존재다.

한국에서 '혐오 상징물' 문제의 시작점은 일간베스트(일베)였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고인 모독과 약자 혐오 등 부정적 밈으로 아직까지 곳곳에 흔적을 남기는 극우 커뮤니티다. 'ㅇ'과 'ㅂ'을 형상화한 손동작이 대표 심볼로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수많은 논란과 사건을 만들어냈다. 

게임에서 이 손동작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게임에 오면 착해져서는 아니다. 너무 티가 나기 때문이다. 가상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취할 수 없는 손동작이다. 대신 게임에 몰래 넣을 만한 다른 코드가 있었다. 고인 비하나 민주화운동 조롱처럼 일베에서만 사용하는 밈이 곳곳에 침투했다. 큰 골칫거리이자 두려운 폭탄이었다.

첫 대형 사건은 2015년 '던전앤파이터'에서 불거졌다. 날짜별 이벤트를 안내하는 이미지에서 하필 5월 23일 부분만 한 NPC가 아래로 떨어지는 그림이 들어갔다. 저 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이다. NPC 캐릭터의 의상까지 그 대상이 입던 색깔로 굳이 수정되어 있었다. 정황을 조합할 때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는 바로 삭제됐고, 당시 네오플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서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이미지의 고의성 여부와 책임 소재는 가려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흐지부지 넘어갔을까. 아니었다. 이 사건은 한 달 뒤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결과까지 이어졌다. 

당시 '던전앤파이터'에서 문제가 된 이미지
당시 '던전앤파이터'에서 문제가 된 이미지

■ "일베 상징이 걸리면 대표이사, 퍼블리셔, 혹은 게임 자체가 사라졌다"

2016년에는 신작 '이터널 클래시'가 기름을 부었다. 벌키트리라는 개발사에서 만들고 네시삼십삼분(4:33)에서 퍼블리싱하던 전략 디펜스 게임이다. 출시 초기 평가가 좋아 주목할 게임으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내부에 일베 밈이 다수 녹아든 것이 확인되자 공기는 180도 바뀌었다.

4-19챕터 이름이 '반란 진압', 5-18챕터가 '폭동'이었다. 날짜가 가진 의미와 일베에서 사용하는 혐오적 명명을 생각하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했다. 앞서 말한 5-23 등 일베가 주로 공격하는 날마다 이런 어둠의 패러디가 숨겨져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첫 사과문이 올라왔지만 오히려 불을 지폈고, 4:33 공동대표가 재차 사과문을 통해 앞으로의 대책, 그리고 이터널 클래시의 광고 중단과 법적 대응을 발표했다. 사실상 퍼블리싱을 끊은 것이다. 

개발사 벌키트리의 대표는 문제 해결 이후 직을 사임했다. 이터널 클래시는 어떻게든 운영을 이어나갔지만, 유저들은 모두 등을 돌린 뒤였다. 결국 사건에서 약 1년 뒤 서비스 종료 공지가 올라왔다. 

한 사람과 한 팀을 넘어서, 한 게임을 서비스하는 모든 주체가 증발한 것이다.

'이터널 클래시'는 게임 관련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터널 클래시'는 게임 관련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분위기 좋던 신작 게임이 한 번에 나락으로 갔다. 이를 본 모든 게임사가 내부 점검에 나섰다. 챕터와 스테이지 이름은 물론 캐릭터와 아이템 이름, 대사 하나하나가 전부 해당됐다. 모르고 있는 일베 용어와 혐오 밈도 많기 때문에 교차검증 과정도 필요했다. 

게임은 콘텐츠이자 상품이고, 게이머 대부분은 즐기기 위한 게임에서 혐오 상징과 마주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역, 성별, 세대에 관계 없이 혐오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일련의 과정은 게임사들이 작품 내용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기가 됐다. 의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정황을 통해 날벼락 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들의 닉네임 검열 수위와 기준도 고민 중 하나였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혐오 밈 트렌드(?)를 빨리 읽고 대응해야 하는 숙명이 이어졌다.

이 흔하디 흔한 OK 손동작이, 경우에 따라 모욕적 인종 혐오가 될 수도 있다
이 흔하디 흔한 OK 손동작이, 경우에 따라 모욕적 인종 혐오가 될 수도 있다

■ "그냥 흔한 손동작인데? 피해망상 너무 심한 것 아냐?"

혐오 상징물은 해외에서 더욱 깊은 역사를 가진다. 서구권에서는 헤이트 심볼(hate symbol)이라는 말을 쓴다. 하켄크로이츠 같은 문양이 대표적이며, 손동작과 색깔, 숫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심볼이 존재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해 분류한 사이트까지 운영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헤이트 심볼이 더욱 성행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각종 '짤'에 삽입하고 패러디하면서 존재감을 올리기 편하다. 둘째로,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중의적으로 '은근슬쩍' 집어넣어 혐오 의미를 피해가기 매우 효과적이다.

현재 영어권 검색으로 헤이트 심볼을 찾으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놀랍게도 'OK' 사인이다. 우리가 알겠다는 뜻으로 수없이 쓰는 그 손동작 맞다. 하지만 세 손가락과 동그라미 부분이 각각 W와 P를 형상화한다는 의미로 'White Power'라는 의미를 새로 부여했고, 실제로 백인우월주의 극우 집단 시위에서 적극 사용되어 널리 퍼졌다.

일베의 각종 밈을 비롯해, 이런 은근한 사인들은 상대를 피해 없이 조롱할 수 있다. 누군가 분노하더라도 "일상적 손동작인데, 너의 피해망상 아니냐"고 되받아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 초기부터 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어떻게 판단하느냐도 중요하다.

국내 일상 생활에서 알겠다는 의미로 OK 사인을 했는데 갑자기 인종 비하라며 누군가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은 이상한 것이 맞다, 하지만, 평소에 흑인 비하를 일삼던 한 백인이 흑인과 평범하게 웃으며 대화하다가 OK 사인을 한번씩 한다면 어떨까. 이를 본 누구에게나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모든 헤이트 심볼은 그 사람과 주변 정황을 살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효과적인 모욕'을 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의도에 물증이 없다고 해도, 정황상 의심할 소지가 있고 다수의 이용자가 분노한다면 그것을 고쳐야 할 필요는 있다. 그렇지 않으면, 헤이트 심볼은 '걸리지 않는 선'에서 계속 생명력을 넓히게 된다.

■ 결국 '혐오 심볼'인 메갈리아 집게손, 초기 왜곡과 포장이 문제였다

다시 국내의 혐오 상징물로 돌아오자. 매번 불거지는 집게손 모양 동작은 메갈리아 상징 마크에서 시작됐다. 

2015년 5월 디시인사이드에 메르스 갤러리가 생겼고, 디시 중에서도 양 성별 가운데 최악의 악명을 가진 '분탕'들이 지옥 같은 키보드 배틀을 벌였다. 그 결과, 빠르게 선점을 시작한 남연갤 이용자들에 모 대형 여초 카페의 인력이 합세하면서 주류를 형성했다.

얼마 가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수위의 혐오 발언과 표현으로 인해 갤러리가 폐쇄됐고, 이들은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를 만들어 일베의 '미러링'을 새 명분으로 내세운 채 혐오 활동을 계속했다. 손가락은 한국 남성의 중요 부위 크기를 비하하는 의미로 내걸었으며, 그마저도 잘못 집계한 자료에 조작된 해석을 붙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남성혐오 상징물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긴 갈등이 예고됐다. 탄생 과정을 설명할 때부터 사실관계 왜곡이 있었고, 손가락에 대해서도 "양성평등 의미를 함께 가진다"며 다급하게 없던 의미를 만들어 덮어쓰기가 진행됐다.

메갈리아 커뮤니티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들이 해온 혐오 워딩은 그대로 퍼져 있다. 또 이들의 당당한 혐오 활동과 이에 대한 방치는, 성별 갈등이 극에 달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당시 사회 전반에 진짜처럼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황을 알던 사람들이 '여자 일베'로 취급하던 곳이 갑자기 진보 지식인들의 논평에서 "유일하게 일베와 싸운 전사들"이라고 포장되어 있었다. 물론 저 곳은 일베와 싸운 적이 없었다. 일베 기법을 배워와 그밖의 커뮤니티에 혐오 상징물을 뿌리고 다녔을 뿐이다.

관련 단체나 정계 입장에서는, 저 엄청난 화력이라면 우리 세력을 빠르게 키우기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맞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일단 혐오 사고를 저지르고 포장지를 덮는 방식은, 당장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사채를 당겨 쓰는 판단과 같다.

결국 그 반동은 오고 있다. 2019년 손동작 사태가 사회를 뒤덮고, 2023년은 게임에서 터졌다. 혐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고 논의할 기회도 없이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집게손동작에 피해를 입고 대처하려는 움직임까지 사상 검증이라는 이상한 주장으로 또 공격을 받는다. 피해자인 게임계에게 가해자라는 누명까지 씌우려 한다.

■ 혐오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임사

반복해 말하자면, 혐오 상징물은 '은근슬쩍' 넣는 것이 핵심이다. 의도를 가졌는지 물증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앞뒤 정황과 주체를 통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 뿌리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장면 중 하나에 남성혐오적 손동작이 우연히 스쳐지나갈 수는 있다. 애니메이터 관점에서는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주요 인력 중 하나가 꾸준히 혐오적 발언을 SNS에 게시해온 점, '은근슬쩍'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 그 사람이 변신 씬을 맡았다고 스스로 말한 점, 이를 통해 유저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점을 조합할 때 넥슨이 긴급히 작업물 조사와 수정에 나가는 것은 마땅히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게임계 전체가 검수에 한창이다. 모든 의심 집게손이 의도는 아닐 것이다. 당연히 억지도 있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의심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싹을 자르겠다는 의지다. 게임사에게, 게이머에게 혐오에 대한 일말의 의심은 훗날 어떻게 돌아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부당해고는 애초에 사실관계상 아니다. 사상검증도 아니다. 게이머들의 분노는 남성혐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혐오'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일베 상징물이 나타났을 때는, 지금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게임에 큰 타격이 갔다. 

지금도 그들에 대한 경계는 유효하다. 만약 어딘가 게임 일부에 일베 전용 이미지나 상징물이 들어갔다면, 혹은 그런 행동을 예고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제보를 부탁한다. 지금 혐오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쪽의 혐오에도 함께 분노할 사람들이다. 이미 그런 의혹 제기와 항의는 무수히 많았다.

게임사는 지금 사상을 탄압하는 가해자가 아니라, '혐오 테러'에 폭격을 맞은 피해자들이다. 그들에게 '2차 가해'를 멈추길 빈다. 사상과 성별 갈등을 위한 프레임은 부디 이 자리에서 나가길 바란다. 게임이 도구로 이용당하는 일은 이미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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