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도트 그래픽과 사운드 트랙은 JRPG 향수를 부른다
JRPG가 겪었던 수모와 현재 J 라벨이 가지는 의미

[게임플] "JRPG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

‘씨 오브 스타즈’의 환상적인 도트 그래픽과 사운드트랙은 개발사가 창조한 새로운 판타지 세계는 물론 90년대 JRPG의 향수까지 선물한다. 

‘씨 오브 스타즈’를 논할 때 90년대 JRPG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크로노 트리거’가 그러하며, 개발사 사보타주의 디렉터가 특별히 언급한 ‘에스토폴리스 전기’, ‘가이아 환상기’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언급된 작품들과 ‘씨 오브 스타즈’와 같은 작품들 총체를 집합시키는 용어 ‘JRPG’의 용법은 꽤 불분명하다. J는 ‘일본산’을 뜻하고 RPG는 말 그대로 RPG를 지칭하지만, 현대에 와서 JRPG는 90년대 일본 RPG 스타일을 구현하려고 한 게임을 일컫는 데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JRPG는 '스파게티 웨스턴'처럼 스타일이 장르가 된 경우다. 언뜻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 3월 ‘파이널 판타지 16’의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의 호주 유튜버 스킬업과의 인터뷰에서 발언은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그는 JRPG라는 용어에 대해 “일본 개발자로서 처음 들었을 때, 이 용어는 마치 우리가 게임을 만든다고 놀리는 것처럼 차별적인 용어 같았다”며 “과거의 일 때문에 감정이 상한다”고 말했다.

서구권에서 ‘크로노 트리거’, ‘드래곤 퀘스트’와 함께 큰 인기를 끈 ‘파이널 판타지’의 16번째 넘버링 타이틀 디렉터의 발언은 꽤 영향력이 컸고 해외 매체들은 해당 인터뷰를 재생산했다.

영국 매체 게임스레이더는 “개발자들이 싫다면 JRPG를 무엇으로 불러야 하나? (If developers don't like the term JRPG, what do we use instead?)”의 제목의 기사에서 현대 게임 장르의 불분명함과 스타일로써의 JRPG를 설명했다.

이후 6월 폴리곤은 ‘JRPG’ 용어의 타자화 역사를 되짚는 사설을 내며 JRPG의 시작점을 따졌다. 폴리곤이 발견한 최초는 1992년 구글 그룹스 채팅이었지만, 이를 대중적 사용의 시작으로 보기는 어렵고 콘솔 시장에 WRPG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JRPG 용어의 사용이 본격화된 시기에 서구권에서의 JRPG에 대한 비난도 함께 시작됐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당시 매체들은 JRPG가 왜 재미가 없어졌는지 전문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2009년 현재는 사라진 영국 매체 OXM은 “J-RPG가 싫어하는 7가지, 그리고 바뀌어야 할 것(7 J-RPG Hates, And What Needs To Change)’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며 양산된 JRPG를 비판했다.

드래곤 퀘스트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리이 유지와 IGN의 2010년 인터뷰에서도 당시 서구권의 JRPG를 향한 시선을 알 수 있는 문맥이 나타나는데 인터뷰어가 “턴제 RPG를 보는 미국 평론가와 일본 평론가의 차이점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는 “미국 평론가들이 턴제 전투 시스템에 대해 왜 더 부정적인지 가끔 궁금하다”고 답했다.

이후 2012년 IGN이 'JRPG가 고쳐야 할 점 10가지'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낸 것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그리고 같은 해 GDC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은 일본 게임 업계와 JRPG에 대한 서구권의 인식에 방점을 찍었다.

“현재의 일본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는 일본 개발자에게 “일본 게임은 구리다”라고 발언한 인디 게임 개발자 ‘필 피시’의 모습이 담긴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아직도 반복 재생되고 있다.

당시 일본 내부의 반응은 일본의 게임 매체 4Gamer의 당시 GDC 현장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사는 “일본 게임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라는 논쟁이 번지고 있다고 표현했고 말미에는 “예산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도 유럽과 미국의 게임 개발 현장과의 차이가 크며 현재,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정부 및 다른 산업까지 포함한 큰 개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당시 일본의 게임 업계가 위기론과 패배주의에 물들고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또한 일본 게이머들의 자국 게임에 대한 반응도 꽤 냉담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일본 개발자들이 지금 'JRPG'라는 용어에 좋지 못한 인식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요시다 나오키 디렉터와는 반대의 생각을 하는 일본인 개발자도 있다. ‘데빌 메이 크라이’와 ‘베요네타’를 제작한 카미야 히데키는 8월 VGC와의 인터뷰에서 “JRPG라는 용어에 긍정적이다”고 밝히며 “실제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JRPG가 일종의 일본 창작자만의 고유한 감수성으로 만들 수 있는 RPG이며 앞으로 JRPG의 왕이 될 게임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노력해야한다고 말하며 JRPG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의 표현처럼 최근 업계에서 JRPG라는 용어는 요시다 나오키 디렉터의 우려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씨 오브 스타즈’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메타크리틱 88점을 받으며 ‘파이널 판타지 16’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뷰어들은 ‘씨 오브 스타즈’를 두고 JRPG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씨 오브 스타즈’는 단순히 JRPG 스타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디렉터가 밝힌 대로 JRPG 명작들의 좋은 점들을 모두 집어넣은 JRPG에 대한 헌사와 같다.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많다고 해도 말이다.

JRPG를 한때 비난했던 주체이자 반대격에 서 있던 WRPG 개발자들이 JRPG의 유산을 이어서 재생산하고 있다. 장르처럼 게임의 국경을 나눌 수 없는 시대지만, 근래 들어 게임 앞에 붙은 J 라벨이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JRPG는 영광의 시대를 분명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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