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악화가 이유도 아니고... 흑자전환과 동시에 내치기라니"
"우리 팀은 몇년 야근하며 게임 다 만들었더니 나가라네요"
"장기 서비스 팀 기피 심화... 실무진, 게이머 손해만 더 커질 것"

[게임플] 날씨는 덥지만, 게임계는 구조조정 바람이 차갑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지난해 신작 '니케: 승리의 여신' 흥행으로 고공행진 중인 시프트업은 7월 돌연 '데스티니 차일드'의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시프트업이 유일하게 서비스해온 게임이다. 최근 실적은 부진하지만, 그동안 누적 매출 2천억 원을 넘기면서 기업의 정체성이자 버팀목으로 자리해왔다.

종료 발표도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바로 직전에 여름 이벤트와 신규 콘텐츠, 하반기까지의 로드맵을 발표해 유저 기대감이 오른 참이었다. 게다가 공지 당일은 신규 캐릭터 업데이트를 실시하는 날이었다.

조사 결과, 내부 실무자들도 당일까지 종료 사실을 몰랐다는 복수의 제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구조조정 소식도 곧바로 이어졌다. 데스티니 차일드 운영 인력은 희망퇴직과 전환배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유사 사례는 쉬지 않고 나왔다. 올 3월 '아키에이지 워' 고매출로 반등에 성공한 엑스엘게임즈는, 4개월 뒤 그동안 회사를 떠받쳐온 원작 '아키에이지' 팀의 구조조정을 통보했다. 희망퇴직 및 전환배치 신청을 받으나, 전환배치가 쉽사리 되지 않을 경우 권고사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공시보고서에 따르면 엑스엘게임즈 2021년 영업손실은 130억 원, 2022년은 상반기만 145억 원이었다. 자본잠식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겠냐는 의견도 소수 있다. 그러나 노조는 "아키에이지 워 팀은 반대로 역대급 성과급을 받고, 외부 채용도 받고 있다"면서 "재정 악화로 불가피한 인력감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알 만한 업체에선 이례적... 이유가 무엇이든, 실무진 희생으로 봐야"

이미 팀 시스템이 갖춰진 채 진행해온 프로젝트에는 전환배치를 마구잡이로 받기 어렵다. 하물며 내부에서 갑자기 소식을 들을 경우는 더욱 불가능하다. TO를 갑자기 낼 수 없으니, 소수를 제외하면 퇴직의 길을 밟아야 한다. 미래 준비를 할 시간도 전혀 얻지 못한 채 맞닥뜨리는 사태다.

업계에서는 '토사구팽'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한 달에 걸쳐, 이런 현상에 대한 게임계 개발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반응은 비슷했다. "의아하다"는 것. 

게임계 초창기는 기습 집단해고나 주먹구구식 전환배치가 잦았다. 하지만 업계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드물어졌는데, 이름 있는 게임사들에서 갑자기 비슷한 일이 동시에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판교 소재 한 기획자는 "계획 없는 인건비 출혈이 불러온 파국 아니냐"고 추측했다.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던 2020년경 벌어진 연봉 인상 경쟁을 뜻한다. "타 업계에 개발자 누출을 막기 위해 그랬다지만, 당시 번 개발비와 지켜낸 인재들로 미래 대비는 게을리했다"며 경영진을 질타했다. 

이 추측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위의 두 업체는 당시 '연봉 파티'에서 큰 폭으로 인상에 참여한 곳들은 아니다. 다만 업계 전반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조정의 핵심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의견이 일치한다.

또다른 개발자는 비상장사에서 비슷한 일이 이어지는 점에 주목했다. 기업공개(IPO)를 염두하고 가장 가치를 높이기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흥행 신작이 탄생하자마자 기존 적자 게임을 제거하고 개발작 모멘텀만 남겨두면 가치는 큰 폭으로 뛰어오른다.

이 개발자는 "단순히 적자가 시작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매출원이 더 줄고, 경영진 책임도 피할 수 없다"면서 "흑자전환 뒤 기존 게임을 쳐내면 오히려 기업 호재를 노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느 쪽이든, 경영진의 욕심 혹은 과실이 일선 실무진의 책임으로 희생되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

■ "어디든 안심할 수 없어... 신작 다 만들었더니 피바람 몰아쳤어요"

'토사구팽'은 비단 오래 된 게임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업계에서는 게임 완성에 끝까지 참여한 직원들을 출시 직전 내치는 모습까지 나타나 불안감을 더한다.

제보에 따르면, 올해 A 게임사는 몇 년간 걸친 개발 끝에 대형 신작 'B'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런데 출시를 앞두고 며칠 전, 개발팀에 찾아온 소식은 노고 치하가 아닌 구조조정이었다. 내부 팀원 상당수에게 권고사직 공지가 떨어진 것.

내부 분위기를 지켜봤다는 한 개발자는 "하루에 서너 명이 동시에 나가는 일도 있었다"면서 "불합리한 야근 강요도 있었지만 게임 출시만 바라보고 모두 수행하면서 달려왔는데, 게임을 완성하고 다들 한 숨 돌리려던 중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겪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다른 내부 관계자는 "보통 신작팀은 큰 게임을 완성하고 흥행시키면 인센티브(성과급)를 주겠다는 약속을 듣는다. 'B' 게임팀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들었다. 출시 전이나 직후 퇴사하면, 당연히 회사는 성과급 지출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소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수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사에게 문의한 결과 "성과금, 보너스, 인센티브는 노동관계법령에서 따로 규정하지 않은 수당"이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근로계약서 혹은 사규에 의해 정해진다. 물론 사측에서 이런 것들을 일부러 의무로 명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임은 운영에 신경을 쓴다고 해도 신작 개발보다는 인력이 적게 든다. 보통 운영에 남지 않은 인력은 다른 부서 배치를 알아보거나 또다른 신작팀 합류, 혹은 천천히 기간을 들여 좋은 조건의 이직을 알아본다. 하지만 이런 출시 직전 기습 권고사직은 '토사구팽' 이상의 무언가라는 내부의 분노가 쏟아진다.

불안감은 아직 구조조정이 불어닥치지 않은 업체 관계자들에게도 번진다. 개발자 C씨는 수년 사이 몸집을 대거 키운 판교의 한 게임사로 최근 이직했다. 그러나 영업비용 급증으로 적자가 된 직장 실적을 지켜보며 이번 사건들에 웃지 못하는 입장이다.

C씨는 "경영진은 곧 출시될 대형 신작들이 단박에 재정을 개선할 것이라며 안심을 당부하지만, 오히려 흑자전환될 때야말로 대규모 인원감축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커지는 분위기"라며 "게임계 전체 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업계 이직을 미리 알아보는 개발자도 주변에 있다"고 전했다.

■ "라이브팀 기피 심화... 결국, 최종 피해는 게이머들이 받는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하는 구조조정도 물론 괴롭지만 최소한의 이해는 가능하다. 그런데 드디어 숨통이 트이나 싶으니 어려울 때 버텨준 팀에 구조조정이 들어가는 최근 사례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토사구팽 현상은 업계 전체에, 그리고 유저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개발자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아 하는 걱정이 있었다. 라이브팀 기피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임사 개발직은 큰 틀에서 신작팀과 라이브팀으로 나뉜다. 보통 같은 조건이라면 신작팀을 훨씬 선호한다. 완성된 게임이 정말 별로일 경우 리스크도 있지만, 완성 후 보상과 커리어

서울 소재 게임사의 한 개발자는 "구직이 정말 급한 게 아니라면, 그런 업체들의 장기 서비스 팀은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서 "언제든 갑자기 서비스가 종료되고 내쳐질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 직원들 이야기도 다 비슷하게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장기 서비스 게임은 지금도 인력 충원이 하늘에 별 따기인데, '서비스 종료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한 번이라도 업계에 퍼지면 사실상 제대로 된 인재가 갈 가능성은 없다"면서 "게임 운영의 질 저하, 수명 단축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라이브 서비스에 좋은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퀄리티가 떨어져 유저들이 떠나고, 라이브팀이 더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몇몇 게임사의 기습 구조조정은 이를 가속시킨다. 다른 업체들에도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이유다.

냉정하게, 경영 관점에서 현재 실적과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해외 유명 기업들이 이 방법을 지양하고 국내에서도 보기 드물어졌던 데는 이유가 있다. 당장은 웃을 수 있다. 멀리 보면 모두가 울게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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