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와 학계 속, 게임 갈등 부추겨 사익 노리는 메시지 주의해야
게이머가 지지할 것은 '정책'... 인물과 진영 아니다

[게임플] 대한민국에서 게임은 한때 정파를 가리지 않고 사회악이었다. 이제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진흥을 외친다. 그러나, 그 진실성이 진영논리 속에 오염될 때가 있다.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 위원장과 얽힌 폭로는 업계인과 게이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조직적인 지원으로 유명 게임 유튜버를 허위사실로 저격했으며, 이를 정치공세로 함께 엮으려 했다는 증거 자료가 대거 공개된 것. 앞서 위원장 재직 당시 게임위 비위가 감사원을 통해 확인된 뒤로 본인의 입장은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복선은 깔려 있었다. 위원장 재임 시기인 2017년 '뉴 단간론파 V3' 등급분류 거부 사태가 있었다. 여명숙 전 위원장은 이후 유튜브 해명에서 당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을 언급하며 "모방범죄 우려에 의해 처리했고, 그대로 판매될 경우 여론을 감당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시작점부터 이상한 말이었다. '단간론파' 시리즈와 살인사건은 모방 여부 등 모든 면에서 아무런 연관점이 없었다. 게다가 게임위는 정치 단체가 아니라 규정에 따라 게임 등급을 분류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게임으로서 심의를 하지 않고, 바깥 사건과 여론에 의해 게임 잣대를 바꿨다는 말을 해명으로 당당하게 쓴 것이었다. 

게임 등 문화 콘텐츠는 작품 그 자체로 다뤄야 했다. 특정 이슈나 갈등을 고려했을 때는 순수하게 콘텐츠를 향유할 권리를 침해받는다. 게임위 사태의 단초가 된 '블루 아카이브'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게이머들이 분노한 지점은 게임 바깥 갈등으로 인한 신고가 게임의 평가를 뒤집었다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는 행동으로 연결됐다. 

2017년 게임위원장 재직 시기 여명숙
2017년 게임위원장 재직 시기 여명숙

■ 게임 영향력 증가, 어떤 이들에게는 도구로서의 매력 증가다

게임은 오랜 편견과 공포를 깨고 주류 사회에 스며들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정신의학계와 종교계 중 일부는 게임중독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게임 이해도를 내세우고 게이머를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세상이다. 게임 소비가 자연스러워지고, 파급력 역시 커졌기 대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명세를 얻으려는 이들에게 게임이 매력적인 수단이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이머들이 듣고 싶은 말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해주고, 이를 통해 인지도를 늘려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인물들은 정계와 학계에 다수 존재한다. 그 메시지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진영이나 정파처럼 본래 말하고자 했던 본심이 나올 때마저 의심 없이 대중에게 흡수되는 현상은 분명 두렵다.

게임뿐 아니라 성별 갈등처럼 화제성 높은 구도에서 흔히 이용된 방식이다. 갈등을 조장해 편을 나누고, 한쪽 편 입맛에 맏는 정보를 진위 불문하고 쏟아내 '수호대' 역할을 한다. 워딩이 자극적일수록 인기는 오른다. 

본인의 입지는 오르지만, 그런 갈등은 결국 희생양이 생기고 업계를 병들게 한다. 이런 공작은 게임계와 유저들 역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 진영논리와 혐오가 일정 이상 올라가는 순간 여론 광풍을 되돌리기는 너무나 힘겹기 때문이다. 

셧다운제 폐지 역시 진영을 가리지 않고 게임 관련 의원들이 합심해 만들어냈다
셧다운제 폐지 역시 진영을 가리지 않고 게임 관련 의원들이 합심해 만들어냈다

■ 정쟁 도구로 활용될수록, 게임의 '민생 법안'은 사라진다

민생 법안이 정쟁에 휩쓸려 입법이 정체된다는 소식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게임법에도 '민생 법안'들이 있다. 역시, 입법 진척은 지지부진하다.

게임법 전부개정안은 오랜 기간 천신만고 끝에 완성해 이제 겨우 문체위 소위에 다다랐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과 중소 업체 지원책 등, 게임 생산자와 소비자들에게 모두 필요한 90개 이상 조항이 담겨 있다.

이 법을 둘러싸고도 여러 저항과 공작이 있었다. 여명숙 전 위원장 역시 그중 하나였다. 모든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극단적 강공책을 펼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게임업체들과 한통속이라 일부러 유명부실한 법안을 냈다는 주장을 냈다. 대표발의가 이상헌 의원이라는 점에서 출발한 정파 공격이었다. 

하지만 전부개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게임에 관심 높은 의원들이 발의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여당과 야당 모두 게이머 위주 주장, 게임사 위주 주장을 펼치는 의원이 혼재했다. 

그 가운데 "게임위원장 가운데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나선 사람은 여명숙뿐이었다"는 주장을 펼치며 편가르기 정쟁에 더욱 불을 지피는 이들도 있었다. 선거 등 이슈마다 양당 캠프를 옮겨다니며 자신의 활로를 찾는 사람들 손에 게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정쟁에 휘말리는 동안, 전부개정안 등 '겜생 법안'들은 여러 번 본회의 상정 기회를 놓쳤다. 남은 21대 국회 기한은 째깍째깍 흐르고 있다. 2024년 5월까지 계류한 법안들은 자동 폐기된다.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정치를 통한 게임 개선이 아니라, 게임을 통한 정치 욕망 채우기에 휘말린 결과다. 

■ 정치는 목적이 아니라, 게이머들의 '아이템'이어야 한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제2의 여명숙'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해야 한다. 이미 나타났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계를 소재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인물을 공격하는 움직임에 휘말리지 않도록 분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정책 그 자체를 두고 토론해야 한다. 

게이머들은 이상헌 의원과 그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의원이 낸 게임 법안을 지지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여당 하태경 의원의 사행성 게임 분류 법안도 높은 지지를 얻었다. 게임에 이념이 없듯, 건강한 게임계를 바라는 시각에도 진영논리는 없다.

정치가 게임 위에서 군림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처음부터 모든 계열의 아래를 받쳐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게임인들에게, 그리고 게이머들이 손에 쥐어야 할 '아이템'이다. 그 아이템으로 어떤 정책을 만들 것이냐, 게임 산업과 문화를 어떻게 쾌적하게 만들 것이냐가 앞으로 남은 퀘스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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