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그오'부터 '우마무스메'까지, 유저 목소리로 운영이 변화하고 있다

[게임플] 한국 게임사들이 생각하는 한국 유저는 시련일까, 혹은 축복일까.

판교는 이따금 고요하게 소란하다. 성난 유저들의 목소리는 육성으로 뱉는 구호가 아니라 커다랗게 출력되는 문구에 들어가 있다. '트럭', 언젠가부터 게임계 시위의 기본으로 자리잡은 단어다.

'트럭 시위'의 개념이 처음 탄생한 계기는 2020년 말 e스포츠 팬덤에서였다. T1 LoL 선수단 코치 내정으로 인한 반발이 팬덤을 휩쓸었고, 효과적인 메시지 표출 방법을 고민한 끝에 누군가 선전용 트럭에 시위 문구를 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사옥 근처로 항의 문구를 담은 트럭이 돌아다녔다.

트럭 시위는 곧바로 온갖 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화제를 낳았다. 멀리서도 문구가 눈에 확 띄면서, 위치 이동도 간편했다. 모금을 통해 비용을 처리할 경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2021년에 접어들면서 게임계 유저 시위의 시작을 알린 것은 '페이트/그랜드 오더(페그오)' 논란이었다. 기존 일본 서버에 비해 차별을 받는 운영이 문제였다. 유저들은 트럭 시위 방식을 채택해 효과적인 메시지 전파에 성공했다. 이후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와 운영 개선 약속까지 이어지는 단초가 됐다.

이어서 넥슨의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가 확률을 비롯해 전반적 운영 불만이 폭발하면서 똑같이 트럭과 간담회의 길을 걸었다. 트럭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온갖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트럭이 흔해지자, 마차까지 등장했다. 지난 여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우마무스메)' 유저들은 카카오게임즈의 미숙한 운영에 항의하기 위해 게임의 핵심 키워드인 '말'을 활용했다. 판교 테크노밸리가 탄생한 이래 마차가 돌아다닌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 마차를 운전한 말 '그레이스'는 하나의 상징적인 캐릭터로 떠오르기도 했다.

9월 넷마블 앞으로 유저들이 응원을 담아 보낸 '페그오' 커피 트럭
9월 넷마블 앞으로 유저들이 응원을 담아 보낸 '페그오' 커피 트럭

2022년 9월이 됐다. 돌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운영에 만족한다며 박수를 받는 곳 중 상당수가, 그 당시 트럭 시위와 유저 간담회를 거친 게임들이었다.

시계를 2021년 1월로 돌려서, 페그오 한국 운영에 화난 유저들에게 "여러분은 2022년에 넷마블에게 커피 트럭을 보내게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미래가 현실이 됐다. 그뒤 절치부심한 넷마블이 최고의 운영과 소통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넥슨도 마찬가지였다. 메이플스토리와 마비노기는 간담회 당시 마음을 돌리기 어렵겠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요구사항을 담기 위해 운영 구조 전체를 개편했다. 물론 지금도 불만이 있고 개선할 점도 남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라는 기대를 심는 일은 성공했다.
 
트럭은 증오가 아니라 전하고 싶은 마음을 보내는 수단이었다. 트럭과 마차를 빌리기 위해 모금을 벌이는 유저들의 목표는 서비스 종료나 게임사 공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모금에 지갑을 열 필요 없이 조용히 게임을 그만뒀을 것이다.

궁극적인 방향은 '우리가 사랑하는 게임을 살리고 싶어서'였다. 그 목적을 위해 거쳐야 했던 아픔은, 정말 게임이 살아나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한국 우마무스메는 이제 매달 일정을 이미지화해 공개하고 있다
한국 우마무스메는 이제 매달 일정을 이미지화해 공개하고 있다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우마무스메' 한국 운영도 빠르게 달라졌다. 전문 TF팀을 꾸린 뒤 점검 시간과 공지 체계, 그리고 이슈 대응 시스템을 모두 개편했다. 

간담회에서 나온 요구를 모두 목록화해 차례대로 해결에 나섰고, 푸쉬 메시지와 같은 서비스 품질 문제도 놀라운 속도로 개선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돌발상황에서도 먼저 상황을 알리고 대안을 내놓는 모습으로 인해 "앞으로도 이렇게만 일하면 된다"는 댓글이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핵심 문제였던 키타산 블랙 픽업 조기 종료도 전례 없는 재픽업을 실시하면서 해소했다. 11일 하루 동안 픽업이 열렸고, 잔여 포인트도 모두 회복된 채였다. 개발사 사이게임즈도 자국 서버에 일정 부담을 안아야 하는 결단이었던 만큼, 양사의 소통 체계가 더 적극적으로 변했음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우마무스메가 엄청난 화제성으로 흥행한 게임인 만큼 운영 논란도 크게 퍼진 바 있다. 그중 카카오게임즈가 억울한 부분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차 시위를 겪고 난 지금 우마무스메는 훨씬 좋은 운영으로 거듭났다.

일본 서버와 같은 방식으로 바뀐 메시지, 작은 요청도 하나씩 고쳐나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일본 서버와 같은 방식으로 바뀐 메시지, 작은 요청도 하나씩 고쳐나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유저들이 침묵했다면, 오히려 먼 미래는 어두웠을지 모른다. 페그오도, 마비노기도, 그리고 우마무스메도 유저들의 시위와 게임사 진통이 없었다면 나아지지 않은 채 그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운영측조차 지금 미흡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유저들은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히 떠난 결과 모든 절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봐왔다. 그 결과 모두가 힘을 모아 절을 고치는 쪽을 택하기 시작했다.

유저가, 팬들이 요구하는 방향이 백 퍼센트 옳진 않다. 때로는 유저끼리도 반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기도 한다. 아무리 트럭을 보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임사들도 있다. 하지만 유저 목소리를 큰 영향력으로 전달할 창구가 생겼다는 것 자체로 의미는 크다. 

게임계의 소비자 대우 문제는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보통 전면에서 대표에 서는 유저는 적어도 매달 몇만 원, 많게는 몇천만 원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패키지 게임처럼 한 번 지불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업계 상품이라면 VIP 고객이지만, 2년 전까지는 그들의 정당한 요구조차 닿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게임 운영을 향한 인식은 오직 악화를 달렸다. 이제는 트럭을 통해 유저들의 '소비자 행동'이 시작된 셈이다. 

9월 크게 내려앉았다가 운영 변화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는 앱스토어 매출 순위
9월 크게 내려앉았다가 운영 변화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는 앱스토어 매출 순위

'싫음'의 표현이 분명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좋음' 표현 역시 분명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한국 유저들의 피드백은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테스트를 경험한 해외 개발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질책이 아프게 쏟아지지만, 그만큼 게임에서 고쳐야 할 점을 가감 없이 꼼꼼하게 짚어낸다는 의미다.

운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사는 각성하라며 최전방에서 목소리 높이는 유저들은, 운영이 만족스러우면 누구보다 앞에 나서서 주변에 게임을 홍보하고 다닐 유저들이다. 누가 돈을 쥐어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애정과 관심에서 흘러나오는 행동이다. 이제는 게임사에서 더 큰 애정을 게임에 보여줄 때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던 우마무스메도 조금씩 회복세가 들고 있다. 구글플레이 매출은 50위권 밖까지 밀려나갔다가 픽업에 따라 크게 반등했고, 앱스토어 매출은 잠시나마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변화가 불러온 바람이다. 

뼈를 깎는 변화를 다짐한 지금의 마음을 이어나간다면, 훗날 카카오게임즈 사옥 앞에 '커피 마차'가 멈춰설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판교에서 아메리카노를 타주는 '그레이스'의 일러스트를 볼 날이 오길 빈다. 세상에는 모두를 웃게 만드는 트럭도 있다.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