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적응하던 X세대 … 구·신 콘텐츠 두루 경험하는 수혜를 입기도

각종 예능을 필두로 영화와 게임에 이르기까지 아재 열풍이 매섭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이 '추억'을 테마로 콘텐츠를 만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일시적인 '추억팔이'로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 시장이 무섭게 커져가고 있다. 국내 게임 시장의 규모는 약 10조 원. 이 중 모바일 게임이 차지하는 4조 원 대의 매출 중 대부분은 30~40대의 아재들로 조사됐다.   

90년대 대표적 게임이던 <리니지 시리즈>나, <테라>, <뮤>와 같이 오래된(?)게임들이 시대에 맞춰 모바일 플랫폼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영화 역시 영웅본색부터 포레스트 검프,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 이르기까지 70년대 생들의 20대 때 즐겼던 문화 콘텐츠들이 부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영향력이 아재들의 힘에서 나온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재에선 이러한 흐름이 왜 발생했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면면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재> 각종 문화 콘텐츠들의 과도기 경험하며 자란 70년대 生

아재라 일컫는 현재의 30~40 세대들은 1990년대 국내의 문화 콘텐츠의 과도기를 거친 세대다. X 세대라는 별칭이 처음 등장할 만큼 사고방식이 기성세대(당시)와는 180도 달랐고, 문화 콘텐츠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에 적금만 넣어도 복리 이자로 재산이 늘어났으며 부동산 호황을 비롯 평생 종신제 직장을 다니던 기성세대의 자녀들이다.

당시 기성세대들은 이 신조어를 두고 (게임과 영화, 음악이 좋다고 몰두하는 하는 짓을 보니 싹수가 노래서 X세대라고 냉소를 품기도 했다.) 현재의 아재들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같은 PC 통신을 통해 다방향 소통의 장을 최초로 열은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변화에 힘입어 김정주 회장이 넥슨을 만들었고 김택진 대표가 엔씨소프트를 만든 중요했던 시기다.

한마디로 90년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는 대격변의 시대였고, 현재의 아재들은 이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 감성을 골고루 섞은 <하이브리드 세대>로 종합할 수 있다. 최근 90년대의 문화 콘텐츠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아재는 90년대 당시 문화 향유 계층의 콘텐츠 생산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세대다. 새로운 문화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마음껏 소비했던 10~20대 세대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 감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아재들은 80년대인 유년시절부터 <로보트태권V>, <마징가제트>, <은하철도 999>와 같은 애니메이션과 <스타워즈>, <전격Z작전>, <V>와 같은 미국의 영화들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접하면서 문화 콘텐츠의 패러다임을 경험했다.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이나 <닥터슬럼프>, 90년대에 들어 이노우에의 <슬램덩크> 등의 만화책 역시 최초로 경험하게 된다. 게임 역시 MSX, 닌텐도,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드림스퀘어  등의 하드웨어와 소프트를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접했으며 온라인 시대로 넘어오며 <바람의 나라>, <리니지>와 같은 MMO부터 <디아블로>, <녹스>등의 RPG, <둠>, <레인보우식스>,<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까지 대부분의 게임 장르를 골고루 거친 첫 세대이다.

대중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X세대를 대표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핑클>, <SES>, <젝스키스>, <HOT>등의 열혈 팬덤 문화도 지금의 아재들의 만든 산물이다. 거리엔 복사 테이프와 빽판(복제된 LP) 판매가 활개쳤던 무법지대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품 앨범 판매량이 평균 1백만 장이 우습지도 않게 넘고 반짝 뜨던 가수들의 앨범도 기본으로 몇십만 장이 나가던 시기였다.(김건모의 3집 앨범은 280만 장이 팔렸다)  이러한 바탕에는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는데 80~90년대 경제(IMF 직전)는 현재와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으로 고속 성장을 이뤘다. 그만큼 문화적 수혜를 한 몸에 받은 세대가 지금의 아재들이다.

게임 태동기 불법복제의 주범.. 어두운 단면도

반면 게임의 경우 고전 시절부터 대만산 불법복제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던 시기로 타 콘텐츠에 비해 이중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만의 경제 성장은 일본의 불법복제 게임 수출로 증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국인 일본도 이 같은 폐해를 잘 알고 있었지만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며 수교를 맺고 관계를 공고히 다져가던 시기라 크게 공론화 시키지는 못 했다고 한다.

한때 용산전자상가 게임골목은 이제 없다.

90년대 중반 용산의 이 골목은 콘솔 게임의 가장 유명한 번화가였다. 불법복제가 플스1 드림퀘스트 세가 세턴 등의 콘솔과 소프트의 불법복제가 성행되던 곳이기도 했다. 이후 한글화 게임은 전멸했으며 몇몇 아케이드 격투 마니아들과 일본어와 영어 능숙자들만이 게임을 소화하는 소규모 시장으로 더 축소돼 시장이 죽었고 이들도 같이 문을 닫았다. 이후 사진 속 처럼 휴대폰 상가로 탈바꿈했다. 당시 몇몇 게임 상가들은 용산 전자랜드의 목 좋은 곳으로 이전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때는 늦었다. 휴대폰 매장 역시 게임과 마찬가지로 용팔이로 불릴 만큼 악명 높은 바가지 상술과  사기 약정 계약 등으로 용산 전자상가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됐다. 온라인 쇼핑몰의 강세와 용산 자체의 개발 이슈와 함께 이제는 유명무실해졌다. 한국판 아키하바라 목표는 스스로가 무너뜨렸다. 

당시 게임의 성지였던 청계천과 용산에선 정품을 사겠다고 온 소비자를 회유해 불법복제를 유도했다. 팩 게임의 경우도 정품 게임보다 마진이 많게는 10배 이상 높았고 플로피 디스크 게임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직접 복사를 해주고 팔았기 때문에 마진은 수십 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CD 게임으로 넘어온 시절도 마찬가지. 플스나 세턴에 복사 칩을 달아 수익을 내고 공 CD에 복사를 해서 또 수익을 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콘솔 게임의 경우 현재까지도 여타 국가에 비해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번외지만 최근 콘솔 게임들이 한글화 훈풍을 맞고 있는 가운데 용산을 기점으로 다시 불법복제 이슈가 불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추세다.)

<추억>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의 발전  

90년대 문화 콘텐츠에 아낌없이 돈을 썼던 세대들은 이제 게임 시장에서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만든 넥슨과 엔씨를 오늘날 대한민국 최대 게임사로 만들어 준 것 역시 지금의 아재들이다.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라는 장르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도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버그가 나오면 이들 게임사에 찾아가 짜장면 얻어먹으며 함께 버그를 수정했고 앞으로의 업데이트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하고 참여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머드 게임 시절부터 이어져온 마니아들이 많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선 현업에 충실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하여 매일 넘쳐나는 새로운 다양한 콘텐츠들을 현재의 10~20대의 유저들 수준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아재들은 과거 게임의 리메이크에 친숙함을 선호하는 성향이 짙다. 게임사들도 상품의 구성, 기획,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재 마케팅 중 향수는 게임과 영화를 비롯 모든 문화 콘텐츠를 통틀어 극강의 무기로 꼽힌다. 추억 속의 게임들이 새로운 디바이스 플랫폼으로 다시 나왔을 때 가장 반기는 유저들의 대부분이 아재들이다. 그것을 목적으로 만든 게임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재미있는 현상은 10~20대들의 경우도 상당수 호응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콘솔 게임 중 30주년을 맞은 젤다의 전설이나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 슈퍼마리오, 파이널 판타지, 포켓몬스터 등은 세대와 세대 간 공감의 장이 영화와 만화에 이어 게임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일반 영화에서 2013년 디지털로 컨버전돼 다시 재개봉했던 영화 <러브레터>

게임의 경우 기술력이 집약된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시리즈화와 업데이트를 통해 세대 간 이질감을 상쇄시키기 충분했고 영화는 사운드와 화질 개선 등의 간단한 작업을 거쳐 리메이크해 재개봉하기 때문에  철저히 일정 수치 이상 관객을 동원했던 작품들 중심으로만 재개봉한다.

만화책으로 시작됐던 마블 시리즈나 드래곤볼, 슬램덩크는 애니나 영화화 되고 세대에 세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단단한 스토리와 시리즈의 문화가(스토리 부문에서 드래곤볼은 제외하고 싶다) 계속 업데이트 되고 이종으로 컨버전 되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소유의 콘텐츠로 채워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여유, 감성에 흔들리는 <아재>

아재들이 올드게임들의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 하는 것을 반기는 이면엔 소싯적 친구들과 즐기던 게임에 대한 향수로 찾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당시에 만들어진 추억이 해당 콘텐츠로 인해 되살아나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게임사들의 마케팅 전략 역시 이러한 부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임업계에서 아재 유저는 "리메이크 IP에 언제든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라고 말할 정도다. 동시에 10~20대들 역시 과거 콘텐츠들의 새로움과 재미를 기성세대와 함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콘텐츠에서 세대 차이의 폭이 사라지고 있다. 

게임의 광고 역시 아재들의 추억 속 영웅으로 채워지고 있는 추세다. 머라이어 캐리와 아놀드 슈왈제네거.

모바일은 조작성이 간편해야 한다. 특히 아재의 입장에선 간편해도 너무~ 간편해야만 한다. 이유는 게임에 집중할 시간이 현재 세대들에 비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거 10대 20대 시절처럼 기민한 컨트롤은 위의 캡처와 같이 깊은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어린 시절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게임 집중하기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대부분이 가장이 됐고 직장에서 상사의 자리를 차지하며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제적으론 안정됐을지 몰라도 체력과 시간에 항상 모자람에도 불구,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함께 경험한 소위 한국의 게임 1세대로 게임에 대한 호기심은 뒤처지지 않는 세대가 아재다. 종합하면 금전적 여유와 게임에 대한 열정은 높은데 물리적인 한계로 단순한 조작과 결과를 선호하게 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와 미디 음악 등부터 시작해 사운드블래스터와 현재의 GTX까지 게임 전반의 발전사를 몸으로 체험했던 세대인 만큼 콘텐츠를 평가하는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경제력을 갖췄기 때문에 PC의 업그레이드 수준도 평균 이상으로 얼리어답터 성향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추억이 가져오는 이면

이렇듯 경제력이 소비의 핵심이기 때문에 아재 주연의 복고 열풍이 지속될 수 있는 점은 각 업계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면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아재로 불리는 세대들은 1996년 IMF를 경험한 세대들이기도 하다. 현재의 경제력은 갖춰져 있을지 몰라도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93학번부터 98학번을 포괄적으로 X세대라고 칭하는데 이들이 대학교를 입학하거나 졸업하기 직전부터 기업들의 종신제는 사라졌고 연봉제, 아웃소싱, 계약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내에 있는 대학교만 졸업하면 어느 대기업이든 졸업 전부터 예약이 돼 있었다.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과거의 향기로 추악한 21세기를 없애고 따뜻했던 20세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당들과 짱구 가족이 사투를 벌이는 애니메이션이다. 2001년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필자가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작품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등장하는 악당부터 20세기를 대표하는 비틀즈의 존레논과 오노요코를 연상시키는 오마주다.

IMF의 여파로 졸업 후 취업 보장이란 '천상의 밧줄'을 잃어버린 이 세대들은 사회 속 무한 경쟁 체제의 첫 번째 주자였다. 학력고사와 수능(94학번부터 200점 만점 기준의 수능 시작)만 잘 보면 인생이 열렸던 과거와 달리 모든 것이 치열한 경쟁으로 변모된 첫 시기를 격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오늘날 아재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 힘든 사회의 구조 속에 있다.

이러한 각박하고 암담한 현실 속에 과거의 좋았던 추억을 회상하는 현상이 지금 현재의 복고화 바람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갈수록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심각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러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서 채우고 게임과 영화 등의 콘텐츠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 90년대의 아날로그적인 요소에서 무언가의 순수함과 따듯함으로부터 위로를 얻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을 퇴행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은 그러한 이면을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수작 중 수작이다. 

마치며

이미 언급했듯 90년대 당시 문화 향유 계층의 콘텐츠 생산 주체화.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게임과 영화 음악 등의 콘텐츠 창작의 임계점. 암담한 현실에서 혈기왕성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퇴행 현상들이 복고 열풍을 이끌어온 현재 아재의 실체로 보인다. 

불법복제로 콘솔 게임 시장을 죽였지만 현재는 역으로 모바일을 비롯한 콘솔 게임의 정품 구매에서 가장 많은 구매력을 가진 유저층 역시 아재다. 세대가 바뀌면서도 이어지는 콘솔 및 온라인 게임 시리즈화와 플랫폼의 컨버전은 매우 좋은 상품들로 다가오고 있다. 레고나 피규어들이 백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품임에도 <아재 수집가>가 생기게 된 이면 역시 어릴 적의 무수한 문화콘텐츠들을 받아들이고 즐겼던 경험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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