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미술, 소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와 예술 콘텐츠 들은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거울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인 80~90년대는 극한의 대치를 다룬 각종 콘텐츠가 등장했으며 이후 전쟁이 테러로 바뀌면서부터 테러와 관련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종차별, 인권이 강조되던 시기에도 이와 관련된 영화와 서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임 역시 이 같은 문화콘텐츠와 맥을 같이 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전쟁 역시 게임에선 없어선 안될 중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정치가 만연하던 사회에는 정치 게임이 등장했다. 이념이 혼란한 시기가 오자 왜곡된 정치 성향을 게임에 담아 여론의 뭍매를 맞은 게임사도 등장했으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담은 게임도 등장했다. 이렇게 게임은 현실과 맞닥뜨려 현실을 비춘다.

미국과 소련이 냉전을 겪던 1945년부터 이러한 게임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던 가정에 PC가 보급되기 이전 보드게임들도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한 소재들이 인기를 얻었었다

문명과 공존한 전쟁, 그리고 게임

인류는 전쟁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무수하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을 갈구한다.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말하길 "인간에겐 파괴본능이 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뼈아프지만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다만 내가 사는 현실에선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인류는 놀이로써 대체할만한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장난감 총이 만들어지고 영화와 소설들은 앞다퉈 전쟁을 다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는 아케이드게임의 르네상스 시대이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시대였다. KGB나 CIA가 등장해 첩보전을 벌이며 무수한 콘텐츠도 만들어졌다. 냉전시대에 나왔던 게임들에겐 공통적인 코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영웅주의'다.

람보나 코만도 등의 영화와 함께 등장했던 게임들 '이카리', '그린베레'등은 1인이 적진에 쳐들어가서 초토화 시키고 누군가를 '구출'해내는 것이 임무다. 구출이라는 미션을 제외하면 사실상 '적진 초토화'가 목적인 게임에 가깝다.(이는 영화도 같다) 

주인공은 열심히 행군하며 무한의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지며 탱크도 훔쳐타며 전진한다. 당시는 슈퍼맨, 배트맨 등 각종 '맨' 시리즈가 영웅주의와 함께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훗날 이러한 '맨' 시리즈 역시 게임에서 없어선 안될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1985년 미국의 육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라는 게임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소비에트 연방군 기지에 쳐들어가 포로를 구출하는 임무를 가졌다. 홀로 적진에서 나이프와 소총, 화염방사기, 로켓 런처 등의 무기로 무장해 적들을 물리친다.

1985년 미국의 육군 특수부대인 '그린베레'라는 게임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소비에트 연방군 기지에 쳐들어가 포로를 구출하는 임무를 가졌다. 홀로 적진에서 나이프와 소총, 화염방사기, 로켓 런처 등의 무기로 무장해 적들을 물리친다.

게임은 혼란 속에서 만들어졌다

인류는 세계대전과 바로 이어진 냉전시대를 겪으며 공업, 의학, 제약 및 첨단 기술을 만들어냈다. 탱크를 만들던 군수업체가 자동차를 찍어냈으며 죽어가는 군인을 살리기 위해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전쟁 중 각종 전염병과 질병으로 숨져가는 전우를 위해 제약 분야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컴퓨터 게임의 태동 역시 전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각종 시뮬레이션의 근원은 미국 국방부에서 1958년 제작한 미사일 시뮬레이션이 최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초기 아파치, 팰콘과 같은 전투기를 현실에 대등한 수준으로 조작해야 기체를 움직일 수 있는 고난도 수준을 보여 일부 밀리터리 마니아를 제외하면 친숙해지기 어려운 장르였다. 우주 탐사와 핵무기 실험의 위험성과 우주과학에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선 반드시 모의실험이 필요했다. 이 시뮬레이션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각종 장르에서 다양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발전됐다.

1980년에 발매된 아타리의 ‘미사일커맨드’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적군의 미사일을 아군의 미사일로 방어하는 방식으로 이때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에 대해 우려가 깊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쏘아 맞춘다는 ‘스타워스’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7년 실제로 존재하는 미국 전투 헬기 '아파치'가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등장했다.

전쟁의 끝 그러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1991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풀리고 연합이 붕괴됐다. 그러면서 세계 전쟁의 양상도 국가대 국가에서 테러가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과 대적할만한 국가는 이제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앙심을 품은 국가와 단체는 소규모 국지전 양상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세계 주요국들은 현재까지 몸살을 앓고 있다. 전쟁과 테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군인과 군인 간의 전투가 아닌 어떠한 단체가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을 상대로 향한 보복적 폭력을 가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내용적인 측면으로 보면 더욱 사악해지고 잔인해졌다.

이러한 현실이 게임 속에선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됐다. 영화 붉은 10월의 작가 이자 레인보우 식스, 스프린터셀, 더 디비전까지 무수한 전쟁 및 반테러리즘 게임의 원작자인 '톰 클랜시'는 시대에 맞춰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특수부대 소재의 FPS, TPS 게임의 '대부'가 됐다. 과거 FPS 게임이 외계 혹은 그와 유사한 괴물과의 전투를 다룬 반면 톰 클랜시의 시리즈는 직설적으로 테러리스트를 지목했다.

레인보우 식스(1998년)에선 각국의 주요 인사를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를 진압하는 내용을 그리며 더 디비전(2014)에선 생화학 무기를 이용한 테러리스트를 처단하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며 테러의 방법도 달라지고 있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톰 클랜시는 테러 관련 콘텐츠의 대부이다.

톰클랜시 원작의 게임들은 현재까지도 기대작으로 꼽히며 유저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냉전이 종식된 직후를 배경으로 한 레인보우 식스에는 테러리스트로 소비에트 연합 맵(루인 시티)이 등장하기도 한다. 메탈기어 솔리드의 아버지 코지마 히데오의 처녀작인 ‘스내쳐’ 역시 1991년 모스크바에서 원인불명의 폭발사고로 ‘루시퍼 알파’라는 생물병기가 누출돼 유라시아 대륙 인구의 약 80%가 죽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며 체르노빌 사건을 연관 지었다.

훗날 생물병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바이오하자드까지 옮겨가며 호러라는 장르의 옷을 입게 됐다. 전쟁과 핵, 테러, 생화학, 생물학적 테러는 모두 인간이 만든 재앙이자 호기심이다.   

정치게임 '트로피코5'

여타 게임들이 논픽션과 픽션을 가미했다면 트로피코5는 군더더기 없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재자를 때려잡는 정의의 '맨'이 등장하는 게임이 아니고 부패한 독재가 승리하는 미션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쿠바에서 30년간 집권한 카스트로 독재정권의 실체를 소재로 담았다. 아무도 모르게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을 쌓아두면서 국민에게 안 들키고 정권을 유지하는 게 목표인 게임이다.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네거티브를 펼치고 위기를 들먹이며 국민을 공포로 몰아 표를 결집시켜 정권을 유지해야 승리할 수 있다.

트로피코는 부패와 비리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을 반어법적으로 경쾌하게 표현한 수작으로 꼽힌다. 로딩 화면에는 '김정일은 양주 값으로 일 년에 35만 달러를 소비하며 항상 기쁨조라는 아리따운 여성들을 대동하고 다녔다고 합니다'라는 문구도 확인할 수 있는 등 현실 속 세계의 독재자들을 직설적으로 겨냥했다. 이 게임의 특징은 플레이하면서 현실의 '나'와 게임 속 내가 동화되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트로피코5의 로딩 화면은 세계 각국 독재자들의 만행을 고발한다.

국내에서도 현실에 반영된 게임은 있다. 최근 '일베 논란'으로 서비스된 지 얼마지나지 않아 사라진 모바일 게임 '이터널클래시'다. 이 게임은 정치와 사회적 문제로 번지며 지탄의 대상이 됐었다. 시대를 담은 무수한 이념과 이즘 속에서 유저는 물론, 사회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게임들은 소리 없이 없어져 버리기 십상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흙수저의 애환 '시대의 우울'

국산 인디게임 중년기사 김봉식

오늘날에 이르러서 시대에 반영된 건 '우울'일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대비 비현실적인 최저임금, 이마저도 일 자리가 없이 언제 끝날지 모를 구직 활동 중인 수많은 젊은 세대의 현실이 게임에 녹아들었다. 중년기사 김봉식은 얼결에 써본 투구가 머리에서 안 빠져 내친김에 용사가 되자는 내용이다. 이 같이 유쾌하고 명랑함 이면을 풀어서 해석하면 어쩌다 떠밀려 온 사회라는 전쟁터에 진입하면서 칼도 없이 작대기 하나 들고 싸워야 하는 흙수저의 비극을 희화적으로 풀어낸 것을 알 수 있다.

용사는 구직 중 또한 취직을 하고 싶어 왕에게 면접을 보고 각종 스테이지에서 실기시험을 보며 몬스터를 때려잡아 식권을 획득하는 내용의 게임이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식권을 획득할 수 있는 잔인하고 무서운 현실을 풍자해 동세대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인디게임이기도 하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공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매일 아침 들어오는 종이 신문을 보고, TV를 통해서만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던 시대에는 내가 속해있는 사회 즉, 친구나 동창 동아리나 회사 등이 전부였다면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온 90년대 후반부터 인간의 관계는 무한대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콘텐츠들도 인터넷의 시작과 동시 촘촘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는 게임으로 연결되고 반대로 게임이 영화로 연결되고 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시대다. 그것이 게임으로써 만들어질 소재가 충분히 된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현실을 게임 속에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소재는 현실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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