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시대에 맞춘 현대적 재해석
여운 남는 게임의 엔딩... 트루먼 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선보여

※ 이번 기사에는 트루먼 쇼와 아메리칸 아카디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트루먼이 사는 세상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그의 삶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각본이나 큐 싸인도 없죠. 늘 완벽하진 않아도 진짜입니다. 진짜 인생이라고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씨헤이븐에 사는 트루먼 버뱅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카디아에 사는 트레버 힐스다. 보험설계사로, 혹은 회계사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소시민적 삶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서른 즈음에 한 가지 진실을 깨닫는다. 바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며, 이 세트장 너머로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자는 명작이라 손꼽히는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후자는 무엇일까. 자못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작품의 이름은 ‘아메리칸 아카디아(American Arcadia)’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아메리칸 아카디아는 트루먼 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기자는 아메리칸 아카디아를 “21세기의 트루먼 쇼”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두 작품 모두 미디어에 의해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개인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아메리칸 아카디아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트루먼 쇼의 요소들을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 TV에서 인터넷으로… 트루먼 쇼의 현대적 재해석

하나씩 살펴보자. 트루먼 쇼가 개봉한 1998년은 TV쇼의 황금기다. 당시는 인터넷이 막 자리를 잡던 때로, 오락거리를 찾는 이들의 눈이 향할 곳은 TV밖에 없었던 때다. 영화 속 트루먼 쇼가 TV를 타고 전국의 안방극장에서 방영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2023년은 ‘1인 미디어’의 시대다. SNS,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의 눈과 귀는 전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개인들을 향한다.

트루먼 쇼가 트루먼 버뱅크 한 사람의 삶을 다뤘다면, 아메리칸 아카디아는 아카디아에 사는 모든 이들의 삶을 다룬다. 마치 거대한 인터넷 방송처럼 총 23,414명의 아카디아 사람들은 각자의 채널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감시당하고, 아카디아 밖의 사람들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다. 삶이 너무 평범해 ‘보는 맛’이 없는 이들은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아카디아에서 사라진다. 트레버 힐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메리칸 아카디아의 디테일이 눈에 띈다. 바로 광고다. 트루먼 쇼의 광고는 노골적이다. 트루먼의 아내, 트루먼의 친구 역을 맡은 배우들은 수시로 상품의 로고를 잘 보이게 고쳐 들고 카메라를 응시한 채 상품의 매력을 어필한다. 이 뿐만인가, 트루먼이 아침마다 만나는 쌍둥이 중년 사내들은 매번 트루먼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밀어붙인다. 뒤에 있는 입간판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광고가 효과가 없다. 노골적인 광고는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최근에는 장면 속 은근하게 녹아있는 간접광고(PPL)가 대세다. 통유리로 완전히 뚫린 트레버의 사무실 뒤를 차지한 거대한 빌보드야말로 PPL의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 “쇼는 계속되어야만 해(The Show Must Go On)”

이제부터는 두 작품의 결말에 대한 기자의 개인적인 해석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마 많은 이들이 트루먼 쇼의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기자 역시 그랬다. 아메리칸 아카디아의 결말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하나의 쇼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트루먼은 자신을 옥죄어왔던 바다로 향한다. 어릴 적 아버지를 집어삼켰던 바다에 몸을 맡긴 그를 막는 것은 트루먼 쇼의 기획자 크리스토프다. 그는 트루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쇼를 트루먼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가 만든 맹렬한 폭풍을 지나 쇼의 끝에 다다른 트루먼은 매일 아침 시청자들에게 전하던 인사를 남긴 채 막 뒤로 사라진다.

“좋은 아침입니다!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요.”

트레버 역시 같은 결말을 맞는다. 아카디아 밖의 조력자 안젤라의 도움을 받아 진실을 깨달은 그는 아카디아를 탈출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그의 성격을 조절해왔던 세뇌가 풀리면서, 이타적이고 용맹한 영웅으로 거듭난 그는 모든 방해를 이겨내고 결국 아카디아를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다음이다. 아카디아를 벗어난 그는 안젤라와 함께 프로덕션 회사를 세우고, 자신의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아메리칸 아카디아를 시청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진정한 끝을 맺는다. 자신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판매하고, 관찰의 객체였던 그가 주체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게임은 삶의 상품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제 다시 트루먼 쇼로 돌아가보자. 트루먼의 탈출로 트루먼 쇼는 막을 내렸고, 쇼를 송출하던 화면엔 잡음만이 남는다. 영화 내내 트루먼 쇼를 애청하던 두 경비원은 쇼가 끝나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TV쇼를 찾는다. 이들이 찾는 것은 또 다른 트루먼 쇼다. 이 역시 미디어가 있는 한 삶의 상품화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바보가 되지 말아요!(Don’t Be A Fool!)”라는 가사는 아카디아에 갇힌 트레버를 깨우는 말이면서, 동시에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트레버의 삶이 소비됐듯, 우리 역시 누군가의 삶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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