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에 진심으로 빠져본 실무진들의 결정권이 중요하다

[게임플] 기자의 인생 게임 1순위는 '발더스 게이트 2'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렀다. 마침내 그 1순위가 2편에서 3편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추억이 발전해서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발더스 게이트 2편은 당시 기준에서도 중하위 그래픽이었다. 하지만 모험에서 무수하게 갈려나오는 볼륨과 자유도, 아무리 파고들어도 끝이 없는 시스템은 매일 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 긴 게임을 3회차까지 플레이했고, 매번 플레이마다 경험 방식은 달랐다.

'발더스 게이트 3'는 이 시리즈에 빠졌던 이유를 그대로 보존했고, 부족했던 점은 트렌드에 맞게 끌어올렸다. 이 자유로운 세계 속에서 모든 대화를 컷신과 더빙으로 즐기게 될 줄이야. 물론 그래픽도 최신화됐지만, 만일 더 투박한 모습이었더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2023년은 "좋은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이 더욱 확고해지는 해다. 기대를 뛰어넘는 수작이 몰려오는 풍년 속에서,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발더스 게이트 3'는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올해의 게임 후보다.

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

■ 한국 게임들, 세계에 먹힐 '재미'를 찾아서

두 게임은 공통점이 몇 있다. 그래픽이나 개발 기술력에서 최고급은 아니다. 충격적인 소재로 화제를 끌지도 않았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폭을 혁신적으로 넓혔다. 무엇이든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은 곧 게임 역사에 남을 재미로 다가왔다.

한국은 어떨까. 그래픽과 기술력은 늘 발전했다.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디테일로 게이머에게 감탄을 주는 일은 드물었다. BM과 직결되는 성장 시스템은 계속 다듬고, 공격적인 홍보 소재로도 활용했다. 상품으로 발전을 거듭했지만 작품 발전은 느렸다.

그래서, 올해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빛나는 발견이었다. 소규모 인력이 아기자기한 그래픽으로 만들었지만 수많은 콘텐츠로 재미를 선사했다. 글로벌 게이머와 미디어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 뛰어든 결과는, 정식 출시 열흘 만에 판매량 100만 장 돌파라는 기록으로 돌아왔다.

2017년, 한국의 글로벌 최대 히트작 '배틀그라운드'도 첫 시작은 재미였다. 배틀로얄 장르 시스템을 가장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형태로 다듬었다. 전 세계가 심장 뛰는 생존 대결에 열광했다. 베타 때부터 조금이나마 더 즐기고 싶다는 유저 문의가 줄을 이었다.

게임사들이 콘솔과 글로벌을 목표로 선언한 지는 5년이 넘었다. 모바일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입지 확장을 위해서는 적절한 판단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깨닫는 일부터 오래 걸렸다.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는 게임사들도 있다. 넥슨의 '데이브'는, 그 가운데 해답지의 한 페이지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한 '스컬'은 한국 인디게임 최초 글로벌 100만장 신화를 달성했다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한 '스컬'은 한국 인디게임 최초 글로벌 100만장 신화를 달성했다

■ '재미'를 느껴본 사람들이 재미를 만든다

재미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 구조가 수학 공식처럼 존재한다면, 누구나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는 주관적인 감정이며, 각자 취향마다 재미 척도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세기의 명작이라도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있다. 혹평을 받는 게임도 세상 누군가에게는 인생 게임일 수 있다.

하지만 외모에서 보편적 미남 미녀가 존재하듯, 보편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은 정할 수 있다. 절대 다수가 즐겁거나 감동을 받을수록 유저 반응과 매체 평가는 오른다. '발더스 게이트 3'는 장르 호불호마저 어느 정도 초월해 보편적 재미를 인정받은 사례다. 라리안의 스벤 빈케 CEO를 비롯해 세계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겨온 사람들이 정성들여 개발한 결과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 시대에 전 세계 게이머들이 어떤 게임에 재미를 느끼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머리로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다양한 게임에 재미를 느끼고 몰두해본 인력이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큰 틀부터 디테일까지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보편적 재미라는 감각이 태어날지 느끼고 움직일 수 있다.

환상적인 비주얼을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었던 '디 오더: 1886'
환상적인 비주얼을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었던 '디 오더: 1886'

해외 게임으로 예를 들어보자. 2015년 '디 오더: 1886'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그래픽과 컷신 연출력을 보였다. 하지만 게임으로 즐길 거리가 전혀 없었고,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게임이 됐다. 멋진 비주얼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게임의 '재미'와는 동떨어진 감각이다.

2017년 팔콤의 '이스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는 이스 시리즈에 대한 애증을 애정으로 돌린 수작이었다. 비주얼 품질은 PS3 게임이라고 해도 과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크리틱 85점에 달하는 저력을 일궈냈다. 비주얼 외 분야에서 유저에게 충실한 만족감을 줬고, 그 결과 지금도 일본 액션RPG 추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두 게임의 플레이 화면을 잠깐 보여주고 무엇이 더 재미있어 보이느냐 묻는다면, 백 명 가운데 99명 이상이 '디 오더'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상호작용을 실천하고 느껴본 사람의 평가는 정반대가 될 것이다. 그런 평가를 내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것이 겉보기와 실제 재미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장르 본연 재미의 계승을 1순위에 두고 개발 중인 'P의 거짓'
장르 본연 재미의 계승을 1순위에 두고 개발 중인 'P의 거짓'

■ "우리는 재미를 계승하는 게 중요했다"

'P의 거짓' 최지원 디렉터가 유튜브 인터뷰에서 장르적 보편성을 이야기하며 남긴 말이다. '블러드본' 등 프롬발 소울라이크와 너무 유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 게임이다. 하지만 체험판 버전을 모든 유저에게 제공한 뒤, 재미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에서 주목하는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그 인터뷰에서 P의 거짓 개발진은 한 나절 넘게 소울라이크 장르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토론을 거쳤다. 그 정도로 진성 게이머들이었고, 해당 장르에 미친 듯이 몰입해본 이력이 있다. 9월 19일 뚜껑을 열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적어도 이들이 장르의 재미를 전혀 모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데이브 더 다이브'도 민트로켓에서 윗선 개입 전혀 없이 재미있을 것들을 치열하게 만들면서 흥행을 이뤘다. 한국 인디게임 최초 100만장 판매를 달성한 '스컬'도 취향에 맞는 게임을 만들기 위한 개발진들이 모여 순수 재미를 추구한 사례였다. 재미에 대한 이해는 실무진들의 몰입과 개발 자유도에서 나왔다.

글로벌 도전을 선언한 한국 게임 중 최고의 그래픽, 첨단 기술, 방대한 볼륨, 획기적인 시스템을 내세운 것들은 많다. 하지만 결정권자 개인 취향만 맞춘 재미거나, 10여년 전 재미 공식이거나, 애초에 재미 자체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만든 게임이 자주 보였다. 

지금 세계의 게이머들이 어떤 게임에 빠져들고 있는지, 그 게임은 어째서 재미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때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재미에 열광해본 개발자 다수가 결정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글로벌 진출 성공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