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시작일 뿐, 하지만 곧 흔해지는 모습이길

[게임플] "한국 게임으로 메타크리틱 논쟁하고, 해외 커뮤니티 반응과 비교하는 시대"

이 풍경은 일상적이어야 했다.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마침내, 이런 모습이 조금 더 일상에 다가올 가능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P의 거짓'은 출시 직전까지도 해외에서 큰 관심을 얻지 못한 게임이다. 지난해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고, 시연과 체험판에서 연이어 호평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해외 유저들은, 좋은 게임이리라는 확신을 쉽사리 가지지 못했다. 한국 게임이었으니까.

그만큼 글로벌 콘솔 시장에서 한국 게임의 인식은 낮았다. 낮다기보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완성까지 거쳐 나온 게임은 소규모 개발작에 불과했다. 멀티플레이 게임은 사정이 나았지만, PC 흥행작을 콘솔로 이식하는 선이 한계였다.

게임 전체 분야를 통틀어도 마찬가지다. 일관적인 게임성, MMORPG 일변도, 막대한 과금 경쟁, 실적 위주 운영이 한국 게임을 향한 일반적 이미지였다. 한국에서 온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 출시될 경우 '페이투윈'부터 살펴보는 것은 현지 유저들에게 당연했다. 

'P의 거짓'이 게임 바깥에서 기대를 모을 요소는 부족했다. 게임사 네오위즈와 핵심 개발자들은 글로벌 기준으로 무명에 가까웠다. 소울라이크 장르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 수많은 게임사가 프롬 소프트웨어의 그림자를 좆았다. 하지만 제대로 완성도를 갖춘 것은 극히 일부였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뚜껑을 열자 기대 이상의 평가인 메타크리틱 80점대가 나타났다. 해외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정 받는 게임이 되고 있다. "프롬을 제외하고 최고의 소울라이크"라는 리뷰가 스팀 최다 추천에 걸린 것은 그런 놀라움을 상징한다.

세계적인 화제작들 사이에 P의 거짓이 있었다
세계적인 화제작들 사이에 P의 거짓이 있었다

'P의 거짓' 역시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독창성의 한계가 존재하고 몇몇 디테일이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한국 콘솔 패키지 게임이 해외 대작들과 동등한 평가를 받는다는 점부터 거대한 한 단계를 밟아올라간 셈이다.

해외 유명 매체들이 게임의 작품성과 정체성을 향해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한계를 짚기도 한다. 글로벌 유명 유튜버들이 밤새 플레이에 매달리면서 게임을 향해 진지한 추천과 토론을 하는 모습도 잡힌다.

스팀 동시접속자 기록을 살펴보고, 스팀 글로벌 인기 4위까지 올라간 기록을 보며 앞으로 행보를 유추한다. 엑스박스 게임패스 사이트는 이달의 간판 게임으로 P의 거짓이 걸려 있다. PS스토어에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P의 거짓 포스터가 잡힌다.

지극히 오랜만에 보는 모습은 또 있었다. '엔딩 쿠키 영상'이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타난 영상에서 차기작이나 DLC의 단서를 유추하는 것. 그것을 또 해외 팬들과 함께 정보를 나누는 것. 모두 한국에서 십여 년 만에 보게 되는 장면이다. 

소위 '국뽕'과는 조금 다르다. P의 거짓 하나로 한국 게임 위상이 갑자기 치솟지는 않는다. 해외 유명 기대작 출시와 함께 벌어지는 일들이 이제 겨우 한국 게임에 나타났을 뿐이다. 

간신히 시작이다. 하지만 시작하는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은 분명 큰 의미다.

일상의 전조를 꼽자면 2017년 '배틀그라운드'였을 것이다. 한국에서 개발한 게임이 스팀 역대 최대 동접 기록을 세우고, 크래프톤은 게임 하나로 글로벌 게임사 반열에 올랐다. 그 실적보다도 국내 게이머들에게 위화감을 준 것은, '배그'에 푹 빠져 지내는 세계적인 스타들의 모습이었다.

국내 중견 게임사들도 하나둘씩 글로벌 시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멀티플레이는 물론, 패키지 게임을 향한 시도도 조금씩 늘어났다. 네오위즈가 빨랐던 것은 그 이전부터 더욱 일찍 준비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한국 게임에서 보지 못했던 일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넥슨은 민트로켓에서 개발한 소규모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로 메타크리틱 '머스트 플레이' 획득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매년 십여 종 게임만 얻는 영예다. 멀티플레이 게임이긴 하지만, '퍼스트 디센던트'는 역시 오픈 베타 첫날에 글로벌 스팀 동시접속자 7만 8천 명을 기록했다. 

기대작도 점차 늘어난다.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트레일러가 해외 게임쇼 한 켠에 굵직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소니와 MS 등 세계적인 콘솔 플랫폼 홀더들의 협업 제안도 늘어난다. 그동안은 하지 않았지만, 하기 시작하자 터널 속 빛이 조금씩 보인다. 

2023년 최고의 평가를 받은 '데이브 더 다이버'
2023년 최고의 평가를 받은 '데이브 더 다이버'

한국 게임계는 분명히 위기다. 사업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고정적 매출원들이 흔들리고, 많은 게임사들이 실적 부진과 적자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긴 시간 변화를 두려워한 채 안정을 꾀했다. 결과는 조금 늦게, 그러나 더욱 확실하게 가라앉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바뀌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도전을 실행에 옮기는 시간은 약간 늦었다.

콘솔 시장이 실적을 크게 개선해줄 기회의 땅은 결코 아니다. 예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기획해야 하는 반면, 고정 수익은 많지 않다. 하지만 글로벌에서 업체 인식을 바꾸고 다양한 방향으로 시장에 도전할 길이 열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게이머들에게 한국 게임의 글로벌 기준 토론이 당연한 일상이 되길 바란다.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세계 속 한국 게임의 가치를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그 '필수 조건'이 충족될 때 다음 계단을 오른다. 아직 업계가 좌절할 때는 아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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