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타이틀 이후 36년, 새로운 액션 구조로 찾아온 성공적 전환

[게임플] 첫 타이틀이 세상에 나온 지 36년이 지났다. 빨간 머리 모험가의 이야기는 아직도 새롭다.

지금 시점에서 '이스(Ys)' 시리즈를 논할 때 '이스8: 라크리모사 오브 다나' 이야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명작이라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리즈 사상 최고의 게임이었다. 3D 이스 시대로 넘어온 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시스템과 내러티브의 정점이다.

그러나 '이스9'는 여기에 불필요한 것들을 덧대다가 도리어 매력을 해친 사례였다. 8편이 정점을 찍은 만큼 다음 과제도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 시리즈를 36년간 이어지게 만든 매력은 무엇일까. 미지를 향한 모험, 유독 빠른 템포의 액션, 아돌을 중심으로 한 세계 속 크고 작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본연의 가치를 유지하되, '이스8' 법칙에서 벗어난 또 다른 그릇에 담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스10: 노딕스'가 나왔다. 가장 나중 이야기를 다룬 전작과 달리, 아돌 최초의 모험인 1편과 2편 뒤 벌어진 일을 그린다. 모처럼 만난 어린 시절 아돌은 낯선 여전사와 콤비를 이룬 채 나타났다.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알던 '이스'였고, 우리가 모르던 '이스'이기도 했다.

■ 우리, 그래픽 보려고가 아니라 싸우려고 이 게임 켰잖아요

플랫폼은 PS5, 하드 난이도로 진행했다. 항해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웬일로 배가 난파되지 않는다. 대신 나포당한다. 통행세를 내지 않은 배를 응징하기 위해 해역의 지배자 발타 수군이 나타나고, 그곳의 해적 공주 '카자 발타'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델링과 모션은 확실히 좋아졌다. 쓰면서도 민망한 평가지만, 이스 시리즈의 그래픽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다만 3D 그래픽이 출발선부터 한참 뒤였고, 그 상태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린다는 것이 문제다. 닌텐도 스위치로 함께 나왔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직 당대 다른 게임들에 비해 많은 부분 뒤처지는 것은 맞다. 특히 배경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시리즈 최고의 매력, 스타일리시 액션의 발전이 단점에서 눈을 돌리게 해준다. 이스10은 아돌과 카자의 2인 교대 플레이로 진행된다. 3인 파티플레이로 정착된 7~9편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멤버만 줄은 것이 아니라, 액션의 밀도가 크게 늘었다. 

공격력과 속도에 특화된 아돌, 실드 파괴에서 독보적 역할을 맡는 카자가 필요에 따라 교차하며 액션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콤비 가드 키와 조합해 사용하는 콤비 액션은 유용하면서 시원시원하다. 고난이도에서는 둘의 SP를 관리하며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재미도 있다.

■ '맛깔나는' 새 액션 시스템, 최고의 보스전을 만들다

전투 매커니즘도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았다. 긴 시간 이어진 플래시 무브/가드 시스템이 사라졌다. 가드와 회피 조작은 여전하지만, 완전히 다른 구조로 활용된다. 가드로만 대처할 수 있는 공격, 회피만 통하는 공격이 이펙트 색깔에 따라 다르게 들어온다. 

완벽한 순간 가드하는 저스트 가드에 대한 보상도 확실하다. 적을 순간 그로기에 빠뜨리고, QTE 액션 연출로 큰 대미지를 주기도 한다. 반면 일반 가드로 막고 있다가 보스 강공격이 들어오면 유저 쪽이 튕겨나가면서 경직되는 등 타이밍을 재는 공방의 맛이 있다.

전작들에서 플래시 무브나 가드를 한 번 성공하는 순간부터는 오직 유저의 턴이었다. 계속 다음 플래시를 연계해 무한 무적으로 때리는 것이 가능했다. 이것은 일견 화려하긴 하지만, 후반 긴장감이 줄어드는 원흉이 되기도 했다. 

속도감은 마나 라이드가 해결해줄 거야
속도감은 마나 라이드가 해결해줄 거야

이스10은 화려한 속도감을 줄이는 대신 묵직한 액션의 맛을 살렸다. 강력한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코드는 순수 컨트롤보다 '적 패턴 파훼'가 됐다. 그만큼 초반부터 까다롭지만 성취감이 생겼다. 긴박한 액션을 느끼고 싶은 컨트롤 중심 유저라면 1회차 나이트메어 이상 난이도로 플레이할 경우 하드코어한 재미를 제대로 느낄 듯하다.

그 결과, 이스10 최고의 장점은 보스전이 됐다. 3D 이스 시리즈 가운데 메인 보스전에서 평균적으로 재미와 긴장감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최종 보스전들을 놓고 비교한다면 이스 시리즈 역대 최고 중 하나에 충분히 들어갈 만하다. 

■ 걱정했던 해상 콘텐츠, 걱정보다 안정적인 맛

전투 연출이 만족스러운 만큼 스토리와 탐험 연출도 발전했다. 게임 진행 중 늘어나는 마나 기술 가운데 마나 라이드는 정말 잘 만든 느낌이다. 탐험 중 수상보드처럼 타고 질주하며 속도감도 느끼고, 메인 스토리에서도 어드벤처 액션을 극대화하는 효자 시스템이다.

해상전은 출시 전 걱정이 컸다. 이스 그래픽에 역동적인 맛은 기대하기 어렵고, 템포를 크게 갉아먹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를 살렸고 조작감도 나쁘지 않다. 과거 '어쌔신 크리드4: 블랙 플래그'에 나온 해상 전투를 조금 더 간편하게 가다듬은 느낌이다. 그다지 길지 않고 해상 필드와도 로딩 없이 연결되어 부담이 없다. 

이스 시리즈 전통인 NPC 규모 키우기도 재미있고 편리해졌다. 선박을 키워나가고 선실에 동료를 영입하며, 전작들처럼 마을을 왔다갔다할 필요 없이 메뉴 한 번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항해 중 NPC들의 다양한 대화가 더빙으로 흘러나오는 점도 소소하지만 중요한 재미다.

스토리는 무난하다. 이스8만큼 흥미와 감동과 스케일이 모두 휘몰아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모난 곳 없이 재미있게 전개를 따라갈 수준이다. 음악은 팔콤 게임이 늘 그렇듯 훌륭하지만, 시리즈 기준에서 아주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스'치고 초반 필드 음악에 인상이 조금 약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배를 업그레이드하고 무기 세팅하는 재미는 의외로 괜찮다
배를 업그레이드하고 무기 세팅하는 재미는 의외로 괜찮다

■ 한창 바쁜데 자꾸 납치하지 말라니까요

새로운 시스템으로 판을 짠 만큼 아직 미흡한 부분도 몇 보인다. 우선, 적 종류가 조금 더 다양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해상전도 배를 키워나갈수록 후반 다양성이 크지 않다.

일반 몬스터는 상관 없지만 엘리트급의 종류가 아쉬운데, 초중반 지나치게 자주 만나는 꼭두각시형 그리거가 대표적이다. 이야기 전개 때문에 필요하지만, 스토리 구현을 위해 게임 템포를 희생하는 부분이 곳곳에 나타나는 느낌이 아쉽다.

템포 희생의 대표 사례는 '정경의 섬' 급진입이다. 새로운 기능을 배울 수 있는 곳이고 스토리 구성에서도 필요한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플레이 경험을 놓고 봤을 때 굳이 급박한 전개에서 맥을 끊는 일을 반복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섬 탐험이라도 밀도가 좀 높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전투에서는 다양해진 조작에서 나오는 피로감이 있다. 듀얼센스 기준 트리거 버튼에 회피와 마나 스킬, 일반 스킬과 가드+콤비 스킬이 모두 들어가 검지 손가락이 바빠진다. 또 초중반은 합동 스킬이 지나치게 좋고, 후반은 또 개별 스킬이 일방적으로 좋아져 스킬 밸런스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은 시리즈 고질적 문제인 락온 기능 불편이다. 락온 여부나 타겟 변경이 직관적이지 않고, 적이 크게 움직일 때나 적을 처치하고 락온이 자동 전환될 때 부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카메라도 여전하다.

"얘네 왜 이래" 싶은 부분도 종종 있지만, 아돌과 카자의 감정선 변화도 나쁘지 않았다
"얘네 왜 이래" 싶은 부분도 종종 있지만, 아돌과 카자의 감정선 변화도 나쁘지 않았다

■ 총평 - 순수 재미로서, 어느 장수 액션 게임의 성공적인 전환점

'이스8'을 재미있게 즐긴 유저라면 전작의 아쉬움을 털어내기 충분한 게임이다.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가지는 매력과 신선함이 더 크다. 그중에서도 액션은 이스 시리즈의 새로운 잠재력을 열었다.

이스가 비교적 낡은 IP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개발환경을 고려할 때 AAA급 퀄리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액션과 탐험 스타일이 있다. 경쟁력 없는 그래픽 퀄리티 속에서도 이스만의 재미를 찾게 되는 이유다.

이스10은 새 스타일을 찾는 동시에, 시리즈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과제를 넉넉하게 완수했다. 전투는 과거 최고작들 이상이라고 평가할 만큼 흥미롭고 세련됐다. 이 시스템 속에서 콘텐츠와 이야기를 갈고 닦는다면, 차후 이스8 이상의 명작을 만들어낼 기반은 충분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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