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D 9차 개정 앞두고 게임 중독 질병화 위한 움직임 일어
관련 연구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록, 실질적 효과 없을 수도"

[게임플] 최근 게임 중독을 질병화하려는 움직임이 다시금 일고 있다. 게임 중독의 질병화가 정당하냐는 물음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하냐는 물음을 던진다.

우려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사건에 게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 8일 한 매체가 연이어 발생하는 칼부림 사건과 총·칼을 휘두르는 게임 사이의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근거라곤 낡은 논문 한 편과 진위마저 의심스러운 단편적인 목소리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고 비웃었다. SNS에선 이를 패러디한 밈(meme)이 번졌다. 하지만 우리 인식의 그늘 아래에서 시간은 기사 의도대로 꾸준히 흐르고 있었다.

 

■ 다가오는 KCD 9차 개정, 빈틈 노린 게임 중독 질병화 주장

기사의 말미엔 기사의 내용과 사뭇 다른 전문가의 말이 인용된다. 기사는 모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입을 빌려 “학교에 정신과 전문가를 투입해 정신 건강이 가장 취약한 청소년의 문제를 진단하고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맥락 없이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말을 담긴 교수는 오래전부터 게임 중독의 질병코드 등록을 주장해 왔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중독성 행위 장애로 인정하고, 질병코드 ‘6C51’로 등록했다. ‘게임 중독 질병화’라는 이름의 망령이 4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이유는 명확하다. WHO의 ICD를 골격으로 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제9차 개정이 지난 2022년부터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ICD-11을 따라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등록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검찰까지 나서 신림동 흉기 난동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게임 중독을 지목해 논란을 키웠다.

앞서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록 당시에도 이에 대한 반발과 반박은 많았다. 당시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선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게임 이용 장애 진단 기준의 적합성에 대한 논란은 종식되지 않았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기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WHO의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 등록이 적절했는지는 전문가들이 논의해야 할 영역이다. 따라서 비전문가로서, 또 일개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향후 ICD를 따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이다.

다행히 게임 중독의 질병화 논의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관련 연구 역시 다양해졌다. 관련 연구 몇 가지를 근거로, 게임 중독의 질병화가 낳을 결과를 살펴보면서 그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 과잉 의료화, 사회적 낙인, 게임산업 위축… 게임 중독의 질병화가 낳을 폐해

인하대학교 법학연구소 소속 김용민은 ‘WHO 게임 이용 장애 질병 코드화의 의미와 과제’라는 논문에서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화 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한다.

가장 먼저 지적한 부분은 ‘과잉 의료화’다. 논문에 따르면, 과잉 의료화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해 온 의료가 오히려 사람들의 건강 불안을 부채질하여 필요 이상의 의료 행위를 발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의 원인인지 혹은 이로 인한 결과인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이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도덕한 의료인들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낳는다. 특히 현재 보험의 수가 산정 체계를 고려하면 게임 이용 장애는 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데, 높은 비보험 수가를 노리고 게임 이용 장애를 진단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화로 인한 편견 및 사회적 낙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게임 이용 장애 관련 연구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학자들이 진행한 연구 대부분이 게임을 중독 원인으로 전제한 상태로 진행됐다. 이는 아시아권 국가가 게임 중독을 이미 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해버리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치료가 시급한 환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또한 게임산업의 위축 역시 예상되는 결과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게임 질병 코드 도입으로 인한 사회 변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 코드화되면 게임산업이 입는 피해 규모는 2025년까지 최소 연간 4조 5,809억 원에서 최대 7조 5,92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 역시 최소 약 3만 개에서 최대 약 5만 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록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또 다른 연구는 더욱 흥미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김석환, 한상훈, 김보라, 강형구가 발표한 논문 ‘게임이용장애 질병분류가 게임이용자의 태도와 게임의향에 미치는 효과’는 총 5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했다. 연구자들은 정상적인 게임 이용자와 게임 이용에 문제를 겪는 이용자들을 구분하고,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분류가 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특성에 따라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이용자가 느끼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과 부정적 영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특히 게임 이용의 문제를 겪고 있거나,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록 후 게임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게임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꺼이 더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 이용 중인 게임의 수나 게임 이용 시간의 경우, 질병 코드가 등록된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즉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록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이들의 스트레스와 게임 비용 부담만 증가시킨다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 우려된다.

반대로 게임 이용의 질병 코드 등록은 무차별적인 게임 수요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분석 결과, 게임 이용 시간 24% 감소, 게임 비용 28% 감소, 이용 게임 수 22% 감소 등이 전반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 게임 이용 장애의 존재 부정 안 해… 구체적인 ‘핀셋 정책’ 마련이 우선

정리하자면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록은 여러 차원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해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을 환자로 몰아세우고, 특정 의료 집단에겐 막대한 이익을, 학부모와 정치인들에겐 유용한 통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화는 게임 이용자들의 게임에 대한 수요를 떨어뜨려 한국의 게임 산업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게임 이용에 문제를 겪는 이들에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이 게임에 사용하는 비용을 더욱 크게 늘린다는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다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앞서 다룬 연구에서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록을 찬성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 이용에 문제를 겪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들을 위해 적절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물질 중독 이전에 사회 시스템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KCD의 9차 개정은 2025년으로 예정됐다. 그전까지 구체적인 관리의 대상과 방법이 마련되는 소위 ‘핀셋 정책’이 준비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는 비단 게이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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