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은 '첫 대화'를 싣고, '함께 즐기는 미래'로 나아간다

[게임플] "이번엔 시위야, 아니면 커피야?"

판교에서 트럭 시위는 더 이상 신기한 풍경이 아니다. 아이돌 팬덤에서 기획사에 항의할 때 사용하던 시위 트럭은 e스포츠 이슈를 통해 게임계로 넘어왔고, 어느새 게이머들의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트럭이 더 이상 나쁜 일만도 아니다. 게임사 앞에 트럭이 도착했다고 해서 반드시 '비상 상황'이 발생하진 않는다. 유저들의 공동 입장이 전달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이를 개선할 경우 다음 트럭은 커피와 쿠키를 싣고 찾아오기도 한다. 

게임 운영은 흔히 정치에 빗대 표현한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목표를 가진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경제와 사회복지, 치안, 교통 등 현실 정치에서 만족시켜야 하는 시스템은 게임에서도 운영 필수 요소다.

반면 그 속에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닿기 쉽지 않았다. 공식 및 비공식 커뮤니티는 수많은 글과 논쟁이 난무한다. 꼭 필요한 건의와 위험한 의견이 섞여 흘러간다. 이를 누군가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조상님들은 운영 항의를 위해 꽹과리를 들었다

과거 조선 시대에 재미있는 제도가 있었다.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신문고(申聞鼓)’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문고보다도 그 처리가 훨씬 빠르고 직접적인 소원제도였다.

상언은 ‘백성이 임금에게 글을 올린다’는 의미로, 백성이 자신의 사정을 글로 풀어내면 임금이 이를 전해 받곤 했다. 비유하자면 조선판 ‘마음의 편지’ 다. 글을 쓸 수 있어야 상언을 올릴 수 있었기에, 보통 글을 배운 중인이나 양반이 상언을 주로 올렸다.

반대로 ‘징이나 꽹과리 등을 치는 행위’를 뜻하는 격쟁은 임금이 거둥하는 길가에서 소란을 피운 이의 처지를 들어주는 제도다. 글을 쓸 줄 알아야 했던 상언에 비해 부담도 없고, 그 효과 역시 확실하기 때문에 신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사정을 임금에게 소명할 수 있었다.

게임계 트럭 시위는 현대판 ‘상언격쟁’이다. 게임사가 임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통치를 상품으로 두고 임금은 생산자, 백성은 소비자로 보는 그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트럭은 매체가 가진 특수성을 극복하고 유저가 운영 주체에게 자신의 처지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귀한  수단이다. 반드시 부정적인 목소리만 전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운영을 칭찬하는 목소리도, 고생하는 개발진을 격려하기 위한 커피도 트럭 위에 실렸다.

게임계 트럭 시위의 시작점이었던 '페그오'는 이후 커피 트럭을 받았다
게임계 트럭 시위의 시작점이었던 '페그오'는 이후 커피 트럭을 받았다

■ 항의든, 응원이든, 소수 의견이든... 누구나 트럭에 글귀를 담을 수 있다

게임계 트럭 시위의 원조격인 '페이트/그랜드 오더'는 다음 해 운영 개선에 감사하는 커피 트럭이 되돌아왔고, 트럭 대신 '마차' 시위로 화제가 집중됐던 '우마무스메'도 1년 뒤에는 커피 트럭을 받았다. 게임을 함께 즐기기 위한 목소리를 담은 만큼, 항의만큼이나 감사의 메시지 역시 따뜻했다.

최근 판교에 돌아다닌 트럭은 넥슨을 향한 '메이플스토리' 트럭이었다. 유저들 가운데서도 리부트 월드를 이용하는 용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을 모았다. 리부트 월드 플레이 환경 개선과 소통 창구를 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리부트 월드 트럭은 메이플스토리 유저의 전체 의견이 아니다. 오히려 소수에 속한다. 일반 월드와의 사이에서 형평성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고, 직접 경험해야 느낄 수 있는 실정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색다른 형태로 다가온다.

한쪽이 선하면 한쪽이 악해야 하는 대립도 아니다. 서로의 입장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난이도가 까다롭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이제서야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차'로 이목을 집중시킨 '우마무스메' 역시 지금은 '갓운영'으로 칭송받고 있다
'마차'로 이목을 집중시킨 '우마무스메' 역시 지금은 '갓운영'으로 칭송받고 있다

■ "갈등을 위한 트럭이 아닙니다"

7년 가까이 게임을 즐겨왔던 유저 ‘메하르방’은 하나둘 떠나가는 주변 지인들을 보며 트럭 총대를 맡았고, 메일을 통해 직접 대화를 요청해왔다. 현재의 서버 과포화 상태와 서포터 직업의 피해, 솔 에르다 조각 교환 불가 조정으로 인한 리부트 월드의 어려움까지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너프 후 사냥 어려움에 대해 "리부트 월드는 경험치 배율만이 아니라 몬스터들의 체력 역시 대폭 증가하고, 유저 간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특징도 가진다"면서 "방금 시작한 유저들은 200레벨 이후에 일일 퀘스트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현실적인 고충을 말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명하게 전한 메시지는 또 있었다. 단순히 이익 실현이나 갈등을 위한 트럭이 아니라는 것. 메하르방 유저는 "이번 시위를 악용해 일반 월드와 리부트 월드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유저가 없었으면 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단지 "업데이트에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고, 모든 유저가 게임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누렸으면 한다"면서 "게임사와 유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즐기는 게임 만들기', 이것이 대부분의 트럭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네오위즈 '아이돌리 프라이드'처럼 처음부터 좋은 운영으로 커피 트럭만 받고 있는 사례도
네오위즈 '아이돌리 프라이드'처럼 처음부터 좋은 운영으로 커피 트럭만 받고 있는 사례도

■ 트럭은 '첫 대화'를 싣고 달린다

온라인 게임은 단순히 체험하고 끝내면 그만인 여느 서비스와 다르다. 그 속에서 유저는 경험을 켜켜이 쌓아간다. 게임이 주는 독특한 경험 위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과 유대가 쌓이고, 거래를 통해 얻은 재화 등이 쌓이면서 유저는 게임에 '매몰'된다.

우리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 맛이 변한 식당을 대하듯 휙 돌아서기엔 무겁게 쌓인 경험이 발치를 맴돈다. 결국 이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총대진을 모은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답답함에 붓과 꽹과리를 들었듯이.

트럭은 부정적인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함께 게임을 만들자며 내미는 애정의 손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주제에서 트럭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고, 한층 더 만족스러운 운영으로 나아간다. 

세상에 완벽한 정치가 없듯, 완벽한 게임 운영은 없다. 하지만 완벽에 가깝고자 하는 노력은 가능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트럭이 메시지를 싣고 판교에 도착할 것이고, 그 메시지가 정상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단절을 끝내고 대화로 향하는 길이 더욱 많이 열리길 빈다.

트럭이 싣고 있는 것은 무기나 갈등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연료에 가깝다. 

길용찬, 한지훈 기자
가장 낮은 곳부터, 한 걸음 더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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