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큰 결정일까, 무엇이 바뀔까, 그리고 넥슨은 무엇을 원할까

[게임플] 처음에는 시네마틱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비노기' 옆에 '언리얼 엔진' 로고가 떠오르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지난 주말 킨텍스에서 열린 '마비노기 판타지 파티'는 예상을 초월하는 소식을 들고 나왔다. '엔진 전면 교체'. 마비노기를 상징하는 NPC '나오'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았다. 밀레시안들의 환호성은 현장을 뒤덮었다.

19년 전인 2004년, 마비노기는 '플레이오네'라는 이름의 엔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오직 마비노기만을 위해 준비한 엔진이었다. 당시 사양 기준에서도 그래픽카드 부담 없이 아기자기한 카툰 렌더링 구현이 가능했다. 마비노기 특유의 감성을 표현한 비결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지나치게 구형 엔진이었다. 언리얼과 유니티가 몇 세대를 초월한 신형 엔진을 내놓았고, 지금 눈높이에 맞는 연출과 콘텐츠를 구현하기에 플레이오네는 버거웠다. 그래픽의 한계도 눈에 들어왔다.

넥슨 마비노기 팀의, 그리고 민경훈 디렉터의 발표는 그 한계를 모두 뛰어넘겠다는 메시지와 같았다.

■ "그냥 그래픽 더 개량하는 것 아니에요?"가 절대 아닌 이유

유저 입장에서는 "그래픽이 굉장히 좋아지겠구나" 정도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픽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에 불과하다. 일반 게이머층보다도 개발자들이 더 놀라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전혀 호환이 되지 않는 엔진으로의 교체는, 사실상 이 게임을 다시 만든다는 의미다.

게임을 개발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하게 되는 것은 장르와 전반적 콘셉트 구상이다. 보통 그 다음이 엔진 선택이다. 이때 어떤 엔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개발 작업의 모든 분기가 뻗어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픽뿐 아니라 게임의 모든 틀이 엔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서로 다른 엔진은 심지어 코딩 언어조차 다르다. 모션과 효과 연출도, 전투의 타격감도, 최적화 기술도 전부 다르게 적용된다.

마비노기의 플레이엔진은 당연히 언리얼과 호환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당시 언리얼 엔진은 온라인 게임에서 그다지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위에 언급한 부분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제작해야 한다.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참조 삼아서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언리얼 엔진으로 교체를 발표하는 순간 환호하는 현장
언리얼 엔진으로 교체를 발표하는 순간 환호하는 현장

보통 업계에서 말하는 엔진 교체 중 9할 이상은 엔진 상위 호환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정도다. 대표적 예시가 언리얼 엔진 3에서 4로 재탄생시킨 '블레이드 앤 소울'이다. 이마저도 다시 만들어야 하는 분야가 굉장히 많은 작업이다. 언리얼 4->5는 호환이 쉽게 설계됐지만, 3->4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엔진의 자체 개량도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플레이오네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나 지금이나 오직 마비노기만 쓰던 엔진이어서 그 정도의 노하우를 가졌을 만한 전문가가 거의 없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점은 있다. 플레이오네 엔진이 C++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 언리얼 계열 엔진에서도 활용하는 언어다. 하지만 구동 방식이 완전히 똑같을 리는 없기 때문에, 그저 복사-붙여넣기만으로 매끄럽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마비노기는 19년 동안 수많은 코딩을 쌓아왔다. 결국 모든 코드를 최소한 한 번씩은 다시 들여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판타지 파티에서 밀레시안에게 인사하는 민경훈 디렉터, 최동민 콘텐츠 리더
판타지 파티에서 밀레시안에게 인사하는 민경훈 디렉터, 최동민 콘텐츠 리더

■ "언리얼 경력만 있다고요? 이제는 오셔도 됩니다."

언리얼 엔진으로의 교체 효과는 그래픽뿐 아니라 수많은 개발 환경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인력 수급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개발자 입장에서 마비노기와 같은 환경은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자체 엔진 게임은 이직할 때 매력적인 경력이 되기 어렵다. 9할 이상의 게임업체가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 주류 엔진에 기대고 있다.

아트와 같이 엔진이 상관 없는 직군도 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개발 직군이 엔진에 따라 경력과 노하우가 완전히 달라진다. 모델링, 배경, 이펙트, 프로그래밍, 그밖의 게임 디자인 분야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마비노기에 뼈를 묻겠다는 애정이 있어야 능력 좋은 인재가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다.

유저 입장에서는 그래픽이 시작점이다. 그 뒤로 모든 분야에서 게임 경험 수준이 조금씩 오를 것이다. 예전 개발에서 불가능했던 수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작업 자유도가 크게 넓어지며, 작업물 교환과 적용이 편해지기 때문에 속도 역시 오른다. 업데이트의 질과 양에서 모두 극적인 향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더 높은 품질에서 서버 렉이나 최적화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마비노기의 상징 중 하나인 캐릭터와 의상 커스터마이징도 이전과 비교 불가능할 만큼 향상된다.

그 일환 중 하나가 64비트 클라이언트였다. 작년에 유저와 업계가 주목한 대작업이었다. 게임이 겉보기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를 계속할수록 로딩과 렉에서 좋아진 체감이 크게 든다. 보안, 튕김 방지 등 모든 환경도 개선됐다. 

마비노기는 오랜 기간 캐릭터 손가락이 서로 붙어 있었다. 지난해 이것을 뗄 수 있게 개량하는 작업만 해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유저가 다른 게임들에 있는 당연한 것들을 추가하길 요구해도, 19년 전 구형 엔진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이 많다. 민경훈 디렉터도 인터뷰에서 이런 고충과 미안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엔진은 클라이언트보다 더 거대한 기반이다. 지금까지 당연한 듯 감수하고 있던 불편사항이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물론 작업에 따라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해결하는 방법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질 것이다.

■ "회사에 무슨 이득이 된다고 이런 걸 하세요?"

전조는 있었다. 올해 초부터 업계에서는 마비노기 관련 업무에 언리얼엔진 경력 조건이 포함되는 채용 소식이 종종 들렸다. 

이제 그 이유가 풀렸으나, 당시는 "마비노기 신작 프로젝트 아니냐" 정도의 추측에만 머물렀다. 그만큼 엔진 교체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고, 넥슨의 결단이 파격적이었다는 의미다. 사업적 계산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마비노기가 지금 새 얼굴로 탈바꿈한다고 해서 비약적으로 수익이 올라갈 게임은 아니다. 반면 엔진 교체를 위해서는 게임을 사실상 다시 만들 정도의 투자가 든다. 지금 게임은 게임대로 운영하고, 그 리소스로 신작 프로젝트 개발이 낫지 않느냐는 제안도 가능하다.

판타지 파티에서 민경훈 디렉터는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어렵다는 것은 엔진 교체를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신작 프로젝트에 버금갈 정도의 수고가 들어간다. 하지만 마비노기를 앞으로 20년 이상 더 끌고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결단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장 계산기를 두드리면 손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먼 곳을 바라봤기에 가능했다.

마비노기라는 이름의 다른 게임을 만든다고 해서, 전작 유저가 모두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세계가 좋아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고치는 일은 곧 마비노기라는 이름의 아이콘을 지키는 일이다.

언리얼 엔진 마비노기를 빨리 만나기는 어렵다. 적어도 2년은 넘게 걸릴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을 기다릴 유저들의 감정은 달라질 것이다. 게임 역시 현실 사회처럼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느냐가 만족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IP를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IP를 즐기는 팬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뜻한다. 운영 측의 의례적 멘트로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실제 게임 사업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다. 마비노기의 엔진 교체에서, 미래에 더욱 큰 행복을 주기 위한 개발진들의 결심이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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