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4'를 둘러싼 격렬 논쟁, 장르 발전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게임플] 잘 만든 핵앤슬래시를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세상에 '장르 마니아'는 많다. 탐구 정신으로 폭넓게 새로운 게임성을 받아들이는 게이머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은 가장 자기 취향에 맞는 한두 장르를 집중적으로 플레이한다. 멀티플레이 슈팅 게임만 수천 시간을 플레이하거나, 시뮬레이션 게임에 평생의 여가 시간을 바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요구를 파악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같은 장르의 마니아끼리는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으리라는 것. 

하지만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취향이 있다. 밖에서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 동일 장르 게임이라도, 내부에서는 두 게임이 너무나 다르다며 우열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마니아들이 있다. 조금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음악에서 힙합 마니아들이 모든 래퍼를 한 마음으로 좋아하진 않는 것과 같다.

블리자드 바깥에서 가장 성공한 디아블로류로 불리는 '패스 오브 엑자일'
블리자드 바깥에서 가장 성공한 디아블로류로 불리는 '패스 오브 엑자일'

핵앤슬래시는 국내에서 열정적인 유저를 다수 보유한 장르다. 시초부터 액션 RPG에서 나뉜 한 갈래다. 과거 단순한 액션게임을 비꼬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디아블로' 시리즈를 계기로 하나의 장르로서 완벽히 녹아들었다. 

'디아블로4'의 출시 예고와 오픈 베타 테스트는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디아블로2' 시절, 한국 게이머에게 블리자드는 비교 대상이 없는 최고의 게임사였다. 수많은 유저가 파밍을 위해 성역에서 밤을 지샜다. 당시 세운 게임 뼈대는 지금까지도 모든 핵앤슬래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아블로2' 이후 수많은 핵앤슬래시 게임이 시장에 나타났다.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패스 오브 엑자일(POE)'부터 시작해 '토치라이트', '히어로 시즈' 등 해외 서비스 게임만 셀 수 없이 많다. 전작에 비해 조금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디아블로3'도 어느덧 11년 전 출시작이다. 국산으로는 과거 '뮤' 시리즈부터 최근 '언디셈버'와 '나이트워커'까지. 게임계 역사에 새로운 핵앤슬러시는 언제나 나타났다.

전작에 비해 폄하되지만, '디아블로3' 라이브 서비스는 블리자드 게임 중 손꼽힌다
전작에 비해 폄하되지만, '디아블로3' 라이브 서비스는 블리자드 게임 중 손꼽힌다

유저층도 겹겹이 쌓였다. '디아블로2' 시절부터 즐겨온 올드 유저들, 3편이나 POE 유입 유저, 변형 핵앤슬래시 게임으로 시작한 유저층, 이제 과거 걸작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어린 세대까지. 액션 스타일, 편의성, 비주얼, 성장 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선호하는 방향이 제각각으로 갈라졌다.

그 결과, 디아블로4가 출시를 앞두고 예고한 엔드 콘텐츠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정복자 보드로 얻는 효과, 오픈월드 MMO를 떠올리게 하는 모험 방식도 평가가 갈린다. 기존과 비슷한 요소들, 새로운 시스템 모두 빠짐없이 토론이 격화됐다.

더욱 극단적으로는 똑같은 특징을 보고도 "이게 바로 그동안 원해온 디아블로"라는 말과 "이게 왜 디아블로냐"는 말이 동시에 들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혹은 전작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전작이 떠올라서 좋다"와 "왜 전작 그대로냐"는 의견이 치열하게 대립하기까지 한다.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핵앤슬래시는 존재할까. 답은 'No'로 정해져 있다. '디아블로2'가 다시 돌아와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특징은 오히려 핵앤슬래시 장르가 그동안 성숙하게 진화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게임을 넘어 어떤 문화장르든 역사가 깊어질수록 무수한 취향이 분화한다. 갈수록 정답은 없다. 결국 어느 정도 선에서 피드백을 제공하되 그 이상은 또 다른 콘텐츠를 찾아가는 현상이 자연스럽다.

'디아블로4'에서 되새길 점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아직 이 게임을 모른다. 베타 테스트에서 본 것은 음식점의 '입간판'과 '메뉴판'에 불과하다. 캠페인 모드 1장은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전채 요리도 나오지 않은 시점이다. 

핵앤슬래시는 스토리 모드가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캠페인 엔딩, 그리고 이후의 파밍 콘텐츠와 성장 시스템까지 직접 체험할 때 메인 메뉴를 즐겼다고 말할 수 있다. 개발진의 입을 통해 종반 콘텐츠가 설명됐지만, 실제로 플레이할 때 어떤 식으로 구동되고 전투에 녹아드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언디셈버조차도 반발을 감수하고 시즌제 전환을 단행했다
언디셈버조차도 반발을 감수하고 시즌제 전환을 단행했다

현세대 핵앤슬래시의 특징은 시즌제 활용이다. 시즌이 변경되면서 또다른 게임이 된다. 그 과정에서 게임의 전체 모습도 더욱 완성된다. 온라인 서비스 체제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출시 뒤에도 어떻게 변해나갈지 모른다는 의미다. 

이것은 두고 봐야 한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블리자드가 지닌 과제다. 최근 게임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자주 보였고, 디아블로4를 향한 시선이 냉정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핵앤슬래시는 기본적으로, 시원하게 적들을 찢어발기고 더욱 강력하게 성장해나가는 게임이다. 그 직관적이면서 간단한 게임 목표가 곧 매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무수한 취향이 분화된다. 간단함 뒤에 숨은 여백을 채워넣는 과정이 거대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피드백 가운데 고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고쳐나가되, 정체성을 확고하게 세우는 '차세대 디아블로'가 완성되길 빈다. 지금의 격렬한 토론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결국 많은 이들이 '디아블로4'를 뜨겁게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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