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대중 사이의 온도차는 생각보다 크다

허큘리스(Hercules) 그래픽카드가 장착된 PC로 SIMCGA를 실행해서 게임을 즐기던 '아재' 게이머들은 새삼 최근 게임들이 지원하는 해상도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1024x768의 해상도가 고해상도로 평가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는 일상화된 FHD(1920x1080, 1080p)은 물론 QHD(2560x1440, 1440p)을 넘어 UHD(3840x2160, 2160p / 이하 4K)는 놀라울 따름이다. 

해상도는 더욱 향상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더욱 발전된 그래픽으로 게임을 기대하는 이들은 늘 게임의 해상도에 높은 관심을 보이기 마련. 일부 게임이 가변 해상도를 지원하거나, 1080p에 미치지 못 하는 해상도를 지원한다면 이에 대해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것이 요즘 게이머들이다.

이런 실정을 생각하면 4K 해상도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4K 해상도를 지원하는 게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PS4 프로나 Xbox One X 같은 비디오게임기들도 이런 '초고해상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만 바라본다면 4K 해상도가 금방이라도 열릴 것만 같다. 유저들은 더욱 높은 선명도를 원하며 기업들은 이런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제 '4K 바닥에서 얻을 수익'에 대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PS4 프로, Xbox One X 같은 기기들은 기업들의 수지타산 계산이 끝났기에 출시될 수 있던 기기들이다.

방송, 미디어 쪽에서도 4K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도 4K 대중화에 긍정적인 측면이다. TV 제조사들이 UHD TV를 연이어 출시하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덕에 대중들이 '4K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영화 쪽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4K 해상도 자체가 영화 쪽에서 '4K-DCI'(4096x2160)라는 이름으로 먼저 보급된 해상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K 게이밍 시대의 보급은 한참 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4K 기대론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4K 게이밍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4K 게이밍을 즐기기 위한 PC를 만들기 위해서는 CPU, 메인보드, VGA, 메모리에 '최소' 120만 원 이상이 필요하며, 넉넉한 사양을 갖추려면 이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 그나마도 기타 부품들과 OS 구입 비용은 제외한 가격이다. 여기에 4K 지원 모니터 구매비용까지 생각하면 가격은 더욱 높아진다.

PS4 프로나 Xbox One X의 경우는 이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4K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역시 모니터 비용까지 합하면 약 100만 원 가량의 비용이 필요하다. 가격면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

4K 해상도를 지원하려면 대단히 많은 양의 그래픽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널리 이용되는 해상도인 1080p 해상도와 비교했을 때 4K 해상도는 이보다 4배 더 많은 연산 능력을 요구한다. 현 시점의 그래픽 수준에서도 4K 해상도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녹녹치 않은데, 게임 내 질감, 광원 표현, 테셀레이션 등이 더욱 강화된다면 FHD 해상도에서조차 그래픽카드에 걸리는 부하가 만만치 않아진다. 

실제로 4K 해상도보다 FHD 해상도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스팀 통계에 따르면 4K 해상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래픽카드인 GTX 1080Ti를 사용하는 유저는 전체 스팀 유저 중 0.38%에 그치는 걸로 나타났다. 사양을 조금 낮춰 GTX 1080 이용자까지 합하더라도 전체 유저의 1%에 미치지 못 한다. 4K 해상도를 염두에 두는 유저가 생각보다 매우 적다는 의미다. 

게임 개발사들은 이런 다수의 유저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택할 것이 자명하다. 때문에 '고해상도 지원'보다는 '보급된 해상도 내에서의 그래픽 상승'을 꾀할 여지가 크다. 

애초에 1983년에 HD 해상도에 대한 표준 규격이 정해졌는데, 이는 34년 전의 규격으로도 여전히 다수의 이들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맞물려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수년 전부터 마니아 층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FHD 해상도에 만족을 표하고 있다는 점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더욱 선명한 화질에 대한 니즈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기존 제품으로도 다들 만족하고 있으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4K 게이밍 보급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 중에는 이를 한때 게임 시장에서 화두가 됐던 모션센서, VR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 모두 '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 받았으나,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 하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 한 것들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4K 게이밍이 보급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나마 모든 조건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게임 그래픽 품질 발전이 거의 없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일이다"라며, "게임 시장에 4K 콘텐츠에 가장 적극적인 시장이긴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4K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4K 게이밍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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