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F1 레이싱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으로 꼽히는 대회가 바로 월드컵이다. 축구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든 구기 종목들 중 세계적으로 보급률이 가장 높은 것이 축구이며, 선수들의 이적료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고, 공식 국제경기인 A매치도 활발하게 치러진다. 이러한 인기를 토대로 축구의 게임화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었다.

세계 최초의 축구게임은 1973년에 만들어졌다. 제목부터 단순한 ‘Soccer’라는 소프트였다. 70년대 게임인 만큼 현재의 축구 게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을 골대에 넣으면 점수를 얻는다는 기초적인 규칙 외에는 구현해낸 요소가 없다시피 했다. 이 게임의 의의는 스포츠의 개념을 게임으로 구현하려 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축구 게임은 크게 두 가지의 방향으로 갈라진다. 콘솔을 바탕으로 한 게임들은 축구의 액션성, 아케이드성에 주목했다. 아케이드란 장르를 정의한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많은 동전을 넣고 즐길 수 있도록 게임 내용을 짧고 강렬하며 속도감 있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락실에서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축구는 어떤 스포츠보다도 역동적이고 경기 진행이 빠른 구기종목이다. 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발로 공을 다루기 때문이다. 게임계가 이 액션성에 주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열혈고교 축구

아케이드를 추구하는 경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1990년부터 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 등으로 출시된 테크노스재팬의 ‘열혈고교 축구편’ 시리즈였다. 이 게임은 경기 중 격투 기술로 상대를 넘어뜨리고, 다양하고도 화려한 필살 슛을 선보이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이러한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게임이 소위 ‘시가 축구’로 불리는 ‘테크모 월드컵 98’이다. ‘테크모 월드컵 98’은 당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3D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함과 동시에 그를 바탕으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슈퍼 스루패스와 시저스(이 스킬이 바로 사기다)를 함께 갖춘 콜롬비아가 최고 인기팀이 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지만, 축구의 아케이드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명작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테크모 월드컵 98

콘솔 시장에서의 축구 게임이 아케이드성에 집중하는 형태로 발전했다면, PC에서는 이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늘날 ‘풋볼 매니저’로 대표되는 축구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 장르가 시작된 것이다. 

최초의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은 1988년 출시된 ‘4 사커 시뮬레이터(4 Soccer Simulators)’다. 이 게임은 게임 내 선수 조작이 불가능했고, 대신 포메이션 설정과 선수 영입 등 전술적인 분야에 대한 조작을 강화하여 게이머들에게 어필했다.

이 게임 시스템을 계승한 것이 바로 풋볼 매니저의 전신 격 시리즈인 ‘챔피언십 매니저’ 시리즈이다. 첫 작품 ‘챔피언십 매니저 92’에서는 선수로 뛰는 마라도나와 아직 유망주 티를 벗지 못한 지네딘 지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케이드 축구 게임의 목적이 매 경기마다의 승리 혹은 한 대회의 우승이라면, 시뮬레이션 축구 게임의 승리는 자신이 맡은 구단의 번영과 안녕이었다. 구단 재정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하여 코칭스태프를 꾸리고, 입맛에 맞는 선수를 가려 영입 및 방출을 반복해 자신의 팀을 만들고, 훈련방침과 전술적 지침을 정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감독으로서 재량을 발휘해 자신이 속한 구단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시뮬레이션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이 된 풋볼 매니저 시리즈는 특별히 정해진 엔딩도 없어 끝없이 나아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수많은 게임 폐인을 양성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영국에서는 이혼사유로 꼽히기도 했으며, 남성잡지 GQ는 ‘20대에 해서는 안 될 것’ 2위에 풋볼 매니저를 올려놓았다. 참고로 1위는 마약이었다.

지금껏 살펴본 과거의 사례처럼, 최근에도 축구 게임의 판도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아케이드성을 강조한 게임들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도태되기 시작했다.

PC와 콘솔의 발전은 한 경기 한 경기를 다루는 축구 게임에서도 리얼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액추어 사커’ 시리즈, ‘킥 오프’ 시리즈 등 많은 게임들이 있었지만 최선두에서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위닝 일레븐’ 시리즈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콘솔을 등에 업고 기판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구의 경기 흐름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해내고자 한 위닝 일레븐 시리즈는 팬들의 거대한 호응을 얻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전세계적 흥행에 크게 일조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PC 쪽에는 ‘FIFA 시리즈’가 있었다. ‘FIFA 시리즈’는 2002 월드컵 버전에서 스타 선수들이 불꽃 슛을 쏘도록 할 정도로 여전히 아케이드성을 강조하고 있었으나, 그 흐름이 리얼을 표방한 ‘위닝 일레븐’에 밀리는 모양새가 나타났다. 결국 FIFA 시리즈도 위닝 일레븐을 따라 리얼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FIFA 시리즈는 자신들이 가진 장점인 방대한 유통망과 세계적인 리그들과의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보다 사실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닝 일레븐을 맹추격했고, 현재에도 두 게임은 매 신작마다 비교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축구 매니지먼트 게임에서는 풋볼 매니저가 초강세를 보이며 독주를 벌이는 가운데, 새로운 영역의 축구 게임이 나타났다. 바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축구 게임이었다.

‘FIFA 온라인’으로 대표되는 이 게임은 다시금 아케이드의 요소를 적극 드러내며 게이머들을 사로잡았다. 시뮬레이션의 모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유저들이 서로 선수를 사고파는 이적시장을 만들어 원하는 선수들로 자신만의 팀을 꾸리는 매니지먼트 적 요소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훈련 대신 선수를 강화하여 능력치를 증가시키는 부분은 기존 온라인 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강화 시스템과 닮았다. 이 역시 넓게 보면 리얼에서 멀어진, 아케이드에 가까운 형태다. 전술적인 부분에서는 4-1-1-4, 2-3-2-3, 5-3-2 등 실제 축구에서는 5, 60년대에 쓰였던 포메이션이 애용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답게 유저 간의 활발한 경쟁을 유도하고자 아케이드적 요소를 적극 도입한 결과, 리얼에서는 한 걸음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프리스타일 풋볼은 2014년 8월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외에도 4 : 4 길거리 축구를 표방한 프리스타일 풋볼 시리즈 등, 축구게임의 다변화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철저한 리얼을 표방하는 게임들이 시대의 흐름을 쥐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하드웨어적 한계는 계속해서 극복되고 있으며, 그래픽의 향상이 곧 현실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시간이 흐르며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게임 장르가 크게 발전한 데에는 기술의 발전이 큰 몫을 했다. 여기에 유저들의 정보력 향상도 한 몫 했다. 이제 전 세계 유명 리그의 경기를 얼마든지 안방에서 보는 것이 가능해졌으니까. 보다 정밀하고도 정확한 데이터를 갖추는 것이 다른 게임들과의 대결에서 승산을 높이는 일이 되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만한 슈퍼 플레이는 실제 유명 선수들의 꿈이자 게임 속 캐릭터를 조종하는 유저들의 꿈이 되었다. 아케이드와 시뮬레이션 사이에서, 적어도 축구 게임은 시뮬레이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케이드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저작권자 © 게임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