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선 과정을, 가장 투명하고 알기 쉽게... 변화 방향도 긍정 반응
현대 게임 트렌드에 맞는 도전과 소통 돋보여

[게임플] 개발 중인 게임이 유저를 대하는 최선의 자세를 발견했다.

게이머의 시각에서, 수많은 개발 프로세스가 어떻게 합쳐져 게임으로 완성되는지 알기는 어렵다. 깊은 이야기를 들어도 워낙 복잡해 지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플레이 의견이 잘 반영되고, 출시 시점까지 기대감을 얻을 수 있느냐였다.  

최근 국내 게임사에서 "될까?" 싶은 도전이 많이 나온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중 하나다. PC-콘솔 차세대 루트슈터는 해외 대형 게임사들이 큰 노하우를 가진 분야다. 번지의 '데스티니 가디언즈'와 같은 AAA급 슈터와 경쟁해 살아남을 자신이 있어야 했다. 

넥슨게임즈는 지난해 10월, 퍼스트 디센던트의 첫 베타 테스트를 실시했다. 장점과 지적할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이 비슷했다. 언리얼 엔진 5를 이용한 그래픽과 모델링 및 스킬 이펙트는 장르 중 최고라고 할 만했다. 다만 모션, 사격감, 최적화 등 디테일 문제에서 많은 개선 건의가 나왔다. 

지난 3월, 홈페이지 개발자 노트에 첫 번째 글이 올라왔다. 몇 개월 동안 신규 콘텐츠 개발과 개선 작업을 병행한 과정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꺼낸 목표는 완성도였다. 최적화와 조작감, 총기 사운드를 우선 과제로 잡고 개발 과정을 공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우선 목표는 정확하게 잡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도 문제 인식과 해결 방향은 다른 문제였다. 얼마나 올바르게 개선될지, 유저들과 투명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런데 이후 나오기 시작한 개발자 노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 개발자 노트 하나가 사실상 컨퍼런스 요약본

4월에 올라온 첫 번째 노트에서 공개된 개선 과정은 단 한 가지, 애니메이션팀의 점프 모션뿐이었다. 그런데 내용은 한 가지라고 폄하하기에 너무나 방대했다.

2022년 상반기 '만세 점프' 모습부터 되새긴 후, 여기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모션을 바꿔나갔는지를 하나씩 짚어나갔다. 베타 테스트에서 받은 모션 주요 피드백을 리스트업하고, '방귀 점프'라고 불렸던 2단 점프 자세부터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거쳤다.

측면 점프 형태로 2단 점프를 표현하고, 총기의 교체, 사격, 재장전을 위해 상하체 분리로 구현하던 모션을 어색하지 않게 다듬어야 했다. 상체 작동을 조금만 바꿔도 캐릭터의 조준, 사격, 무기 교체, 재장전, 스킬, 그래플링 훅, 피격 등 모든 동작에 영향을 준다. 단순히 "점프 동작을 바꾼다"로 해결되지 않는 작업이었다.

개발팀은 여기서 자연스러운 신체 움직임과 각도를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어떤 도식 메커니즘을 통해 완성 수준에 다다랐는지를 하나씩 모두 설명해나갔다. 8방향 이동 조작에 맞춰 모든 방향에 대응하는 모션을 애니메이터들이 수작업으로 진행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점프 개선 과정을 표현한 도식
점프 개선 과정을 표현한 도식

■ 어렵고 복잡한 개발이지만, 유저가 '고객'으로서 쉽게 알 수 있도록

개발자 노트는 5월, 그리고 7월에도 이어졌다. 두 번째는 루트슈터 게임의 핵심인 총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적 사살 시간(TTK) 기준을 새로 잡고, 총기별 특징과 밸런스를 잡아나간 과정이 한 눈에 표현됐다.

노트의 구성도 완성된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었다. 초기 의도와 함께 거기서 나온 문제점을 먼저 짚고, 그 다음 어떤 식으로 개선을 결정했는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방향성은 세부적인 개선 과정, 그리고 최종 결과물로 이어졌다. 특히 총기별 TTK와 사거리 기준 재설정으로 '산탄총 만능'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은 모두가 반가움을 표할 만했다.

세 번째는 룬 시스템 개선 내용이었다. SF 세계관에서 이질적이었던 '룬'을 '모듈'로 바꿨고, 필터와 정렬 등 UI 개선과 모듈 옵션 및 개조 다양화를 수많은 GIF 화면으로 보여줬다. 특히 비약적으로 발전한 모듈 정렬-세팅 장면은 다음 플레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게임을 기다려온 유저들이 보내는 긍정적 반응도 눈에 띈다. 첫 테스트에서 실망스러운 점이 있을 경우, 크게 바뀐 체감이 없다면 다음 플레이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최대 약점들을 개편한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다운로드 버튼을 누를 동기가 생긴 것이다.

가장 큰 미덕은 '쉬운 설명'이었다. 개발 변화 과정을 정말로 디테일하게 설명하려면 '통역'이 한 번 필요하다. 프로그래밍은 말할 것도 없고 엔진, 모델링, 애니메이션, 모션 등 분야는 온갖 전문 용어가 난무한다. 

퍼스트 디센던트 개발자 노트는 철저하게 유저 입장에서 편리하도록 했다. GIF 파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포'-'애프터'를 구분하고, 현재 완성되어가는 점프와 착지 모션을 '움짤화'시켜 표현했다. 이미지만으로도 모션 개선의 모든 과정을 한 눈에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유저를 고객으로서 대하며 최선을 다하는 설명회였다.

■ 정보 과잉의 시대, 개발 과정 정보도 최대한 교환해야 한다

국내 게임계 전체에도 의미가 있다. 한때는 테스트와 출시 전까지 정보를 최대한 숨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명분은 여러 가지였다. 보안과 문제도 있었고, 타사가 개발 노하우를 흡수할 우려도 있었다. 게임의 일부 특징은 숨겨두는 것이 사업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도 존재했다.

하지만 환경은 달라졌다. 지금은 모든 정보가 열린 곳에서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신비주의'는 의심만 낳는다. 개발 노하우 역시 모두 열린 곳에서 공유하는 시대다. 

최대한 모든 상황을 전하고, 유저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먼저 빨아들여 반영하는 게임이 높은 수준으로 완성된다. 최근 출시해 전 세계의 극찬을 받는 '발더스 게이트 3'도 3년에 달하는 얼리액세스로 유저 실시간 피드백을 받으며 볼륨을 채운 끝에 탄생한 사례다.

유저 입장에서도 개발 과정은 깊게 공유될수록 좋다. 대형 게임은 개발 기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자신들이 게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만큼 애착도 생긴다. 자연스럽게 그 게임의 탄생과 발전을 함께 따라가는 '팔로워'가 된다. 이것은 곧 팬덤이 탄탄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퍼스트 디센던트가 좋은 피드백을 공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게임이 나올 확률은 높일 수 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개발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유저와 공감대를 높이기도 한다. 이들이 쌓아나가는 개발 소통 기법은, 앞으로 글로벌 시장을 향하려는 게임들에게도 좋은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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