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이상, 낭만과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화면: 유튜브 '박서림' 채널)
(화면: 유튜브 '박서림' 채널)

[게임플] "MMORPG에 요즘 국경이 어딨습니까. 다 가깝습니다. 각각의 유저라는 건 없어요. 상처 많이 받은 유저들 모두가 행복해야 합니다."

'로스트아크' 유튜버 박서림이 최근 '검은사막'을 즐기면서 남긴 말이다. 관련 영상이 업로드되면서 많은 게이머들의 공감 댓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포토 모드로 천천히 구경하는 유튜버의 곁으로 악기 연주가 가능한 '샤이' 유저가 찾아오고, 로스트아크의 레온하트 테마곡을 연주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다.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속 전망 좋은 곳에서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유저들이 모였다. 제각각 다른 악기를 들고 찾아온 샤이들이 합주를 시작했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풍등을 날리고 폭죽을 쏘았다.

이 중에 몇개월, 몇년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 장면은 오래도록 추억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비단 방송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 검은사막은 '낭만'의 공간이다.  로스트아크가 9월 전까지 마땅한 콘텐츠가 없어 즐길 곳을 찾던 유저들이 파격적인 혜택을 발표한 검은사막을 찾았고,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서버 포화를 이끌어냈다. 

시즌 서버 시작부터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뉴비'들과 이를 도와주는 기존 유저들이 서로 얽히고, 그 뒤에서 GM들이 실시간으로 뉴비 케어에 한창이다. 음악 연주와 단체 환상마 활강, GM 주최 불꽃놀이까지. 고전 온라인 RPG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성이 오픈월드 속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 

GM들이 기록한 지난 주말 불꽃놀이의 흔적
GM들이 기록한 지난 주말 불꽃놀이의 흔적

MMORPG 황금기 시절, 각 게임은 유저들에게 자부심이자 연대감의 대상이었다.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서로 자신의 게임이 낫다며 '키배'가 벌어지는 일도 잦았고, 다른 게임 유저를 비하하기 위한 혐오 자료를 퍼트리기도 했다. 게임 한두 개면 할 것이 가득한 시기였고, 굳이 다른 게임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아름다운 일들로 기억되기도 한다. 유저 사이의 교류는 과거에 더욱 많았다. '마비노기' 모닥불로 대표되는 수다와 연주가 그 상징이었다. 마을 광장에서 서로 이야기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때로는 투닥거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가는 시기가 있었다.

검은사막 환상마 이두아나트 단체 활강에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유저들
검은사막 환상마 이두아나트 단체 활강에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유저들

게임 속 대화가 부담스러워진 것은 언제였을까. MMORPG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편해졌다. 파티 구성과 던전 입장도 자동으로 가능해졌다. 그럴수록 효율이 중요해졌다. 짧은 시간에 최단 루트로 성장해야 했다. 언젠가부터 채팅창은 질문과 거래만 있었다. 분명 예전보다 편해졌지만, 사람과 함께 한다는 느낌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검은사막의 시스템은 다른 게임에 비해 약간 '고전적'이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교역 시스템이 중요해 지역 순간이동이 없고, 인스턴스 던전도 사실상 없다. 그야말로 현실 세계처럼 오픈월드를 돌아다니면서 사냥하고 탐험한다. 

다른 게임 유저가 검은사막에 들어서면 생경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 마우스 커서가 사라졌어요"라는 질문 채팅을 읽고 크게 웃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사소한 점부터 독특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솔로 플레이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대규모 전투도 있고 사람과 마주칠 일도 많다. 그런 낯설음이 새로운 감성을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지금은 부진하지만, 엘가시아 등 '로스트아크'의 낭만도 앞으로 계속 힘이 될 것이다
지금은 부진하지만, 엘가시아 등 '로스트아크'의 낭만도 앞으로 계속 힘이 될 것이다

이런 낭만은 검은사막만 가능할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MMORPG라면,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언제나 가능하다.

게임 하나에 뼈를 묻는 유저도 많다. 하지만 재미있는 업데이트를 찾아다니면서 그때그때 조금씩 즐기는 유저는 더 많다. 지금은 '로난민'들이 떠돌고 있지만, 지난해까지는 로스트아크가 주로 난민을 받는 입장이었다. 

아크라시아 대륙에 처음 입장한 유저들은 별빛등대의 섬이나 베른 남부 등의 스토리를 즐기며 감동적인 연출에 탄성을 내뱉었다. 엘가시아는 당시 아이템 레벨 제한으로 뉴비가 바로 경험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성장해 방대한 서사시의 제1막을 스스로 마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됐다. 

메이플스토리에도 분명 감동은 있다
메이플스토리에도 분명 감동은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최근 '메이플스토리'도 새로 찾아온 유저들이 낭만을 느끼는 공간이있다. 차원의 도서관 콘텐츠는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말을 듣는 메이플에서도 웰메이드 시나리오로 꼽힌다. 또 어떤 스트리머는 셀라스 스토리를 경험하면서 감동에 오열하기도 했다.

요즘 언급되지 않는 게임도 언제든 새 모임의 장이 될 수 있다. 전통의 낭만인 마비노기도 새로운 콘텐츠를 구축하고 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도 좋은 운영으로 최고의 유저 만족도를 얻고 있다. 지난달까지 검은사막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것처럼, 또 어디서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움을 쌓아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55레벨 매화 유저인 기자도 석양 사진 한 장
55레벨 매화 유저인 기자도 석양 사진 한 장

'낭만'은 무엇일까. 거대한 게임을 즐길수록 따라오게 되는 질문이다. 아무리 감동과 웅장함을 우겨넣는다고 해도, 같은 패턴을 반복해서는 낭만을 느끼기 힘들다. 아마, 평소와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색다른 행동과 교류를 느끼는 일련의 과정이 모둔 낭만일 것이다.

세상에 물리적으로 콘텐츠 소모보다 빠른 속도로 콘텐츠를 채워넣을 수 있는 게임은 없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세기말'은 반드시 생긴다. 한편 예전보다 신규나 복귀 유저를 위한 편의 시스템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MMORPG 장르 개발이 어려워졌다고 하지만, 반대로 상생을 향한 길은 열렸다. 

유저들이 게임을 두고 세력다툼을 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진입장벽은 허물어졌고, 언제든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우리는 이권 다툼이 아니라 즐거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게임에 모인다. 

다른 게임의 유저들은 서로 적이 아니다. 서로 근황을 전하고, 가끔 놀러가기도 하고, 부당한 일에 뭉치기도 하는 이웃이다. 아침의 나라 여행은 그 사실을 다시 확신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이상, MMORPG의 낭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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