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갖춰둔 기본기, 유연한 새 비전... 'TJ'의 결과물 증명할 자리

[게임플] 엔씨소프트는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엔씨가 지스타에 돌아온다.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지스타 2015에서 PC 플랫폼 슈팅액션 'MXM' 시연을 선보였고, '블레이드 앤 소울' 대회와 공연으로 관객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MXM은 출시에 이르지 못했다. 엔씨 역시 지스타에서 만날 수 없었다. 

모바일 MMORPG에 집중하면서 서로의 길이 갈렸다. 신작 개발에 집중한 엔씨는 2년 뒤 '리니지M'으로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어 '리니지2M', '리니지W'로 모바일 플랫폼에서 리니지 IP의 절대적 위상을 재확인했다. 

이 시기의 기조는 확실했다. 사업 성과를 통한 기업 가치 재고에 집중하고, 엔씨가 가장 잘 하는 MMORPG에서 타사가 따라올 수 없는 차이를 만들겠다는 것. 김택진 대표가 리니지2M을 두고 "향후 몇 년간 기술적으로 따라올 게임이 없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자신감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엔씨에게 지스타는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 플레이와 시연 제공보다는 게임 완성도와 상품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환경이 달라졌고, 엔씨는 고집보다 유연한 변화를 택했다. 그 분기점은 2021년에 있었다. 

지스타 2015 당시 엔씨소프트 B2C 부스
지스타 2015 당시 엔씨소프트 B2C 부스

2021년은 엔씨의 위기였고, 동시에 엔씨의 위기 탈출을 상징하는 해였다. '트릭스터M'와 '블레이드 앤 소울 2'는 분명 기대 이하 성적을 냈다. 리니지 모바일 시리즈의 공식을 충실히 구현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IP와 괴리감을 일으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엔씨 위기설을 단박에 잠재운 게임이 11월 출시한 리니지W였다. 권역 내 다양한 국가의 유저들이 한 공간에서 전투를 벌이는 '월드와이드' 체계가 주효했다. 한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접속자와 매출이 발생했다. 창립 이래 최대 초기실적이었다.

리니지를 통해 연속으로 판도를 바꿨다. 일반적인 기업이 평범하게 내릴 답안은 '리니지' 집중이었다. 하지만 엔씨의 해답은 달랐다. '리니지'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모바일 MMORPG 장르는 리니지 등 게임성에 알맞는 기존 IP에게 맡긴다. 본래 '더 리니지'를 의미에 담고 개발해오던  'TL'은 PC-콘솔 AAA급 게임으로서 글로벌 시장으로 향한다. 2022년 초 새로운 오픈형 RnD 개발 문화 '엔씽(Ncing)'을 출범했고, 인터랙티브 드라마와 루트슈터 등 도전적 장르의 신작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그렇게 엔씨는 '가본 적 없는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GDC 2023에서 디지털 휴먼으로 등장한 김택진 대표
GDC 2023에서 디지털 휴먼으로 등장한 김택진 대표

신작 정보 공유 문화도 바뀌었다. 더 이상 출시 직전까지 신비주의에 가득했던 엔씨 게임이 아니다. 개발 과정부터 개발자 토크, 현재 버전의 플레이 모습까지 영상으로 투명하게 공개됐다. 유튜브 댓글을 통한 질문에 답변하는 후속 영상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김택진 대표가 제시한 새로운 비전에서 시작됐다. 2022년 3월, 김 대표는 주주총회에서 '소통'과 '글로벌' 키워드를 제시했다. 소통에 기반한 개방형 개발 기조로 글로벌 고객의 요구도 반영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비전은 같은 시기 오픈한 '엔씽'이 제시한 메시지와 같았다.

올해 GDC에 '디지털 휴먼'으로 등장한 김택진 대표의 모습은 이런 함의를 압축하고 있었다. 자사 AI 기술에 아트, 그래픽 등 비주얼 역량을 결합한 가상인간 형태였다. 언리얼엔진5 기반으로 기술력을 총집약해 만드는 콘솔 인터랙티브 어드벤처 '프로젝트M'를 세계에 알리기에 가장 효과적인 연출을 사용했다.

김택진 대표의 비전은, 엄밀히 말하면 변화한 것이 아니다. 기본 가치는 변함이 없었다. AI 기술을 국내 게임계에서 누구보다 빨리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다. 글로벌 기업의 필수 조건이 된 ESG경영도 가장 먼저 준비했다. 유연한 개발 환경 변화는 미래 트렌드를 미리 내다보고 다져놓은 기본기 덕분에 가능했다.

2022년 신입사원 온보딩 프로세스 일환으로 'TJ와의 대화'를 진행한 김택진 대표
2022년 신입사원 온보딩 프로세스 일환으로 'TJ와의 대화'를 진행한 김택진 대표

김택진 대표의 발언이 달라졌다. 그리고 엔씨의 개발 환경과 기조가 진화했다. 업계의 주목이 이어졌다. 이제는 일반 게이머들에게 변화의 결과물을 증명할 차례다.

엔씨의 새로운 스토리텔링은 지스타 2023부터 시작한다. 예전 엔씨였다면 지스타에 출품할 두세 작품을 미리 예측하기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장르로 공개된 신작이 워낙 많아 무엇을 대표로 내놓을지부터 짐작하기 어렵다.

난투액션 게임 '배틀크러쉬', MMORTS 장르로 개발되는 '프로젝트G', 수집형 RPG '블레이드 앤 소울 S', 캐주얼 퍼즐 '퍼즈업 아미토이', 여기에 '프로젝트M'과 AAA급 루트슈터 'LLL' 등. MMORPG에 집중하던 게임사가 그밖의 모든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그중 일부 게임의 플레이 시연, 최신 정보 및 트레일러 공개만으로 이미 자리는 꽉 찬다.

스마트폰 시장 초중기까지, 엔씨의 모바일게임 성적은 미약했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바깥에서 "엔씨는 PC 플랫폼이나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조소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등장한 '리니지M'은 엔씨의 기업 가치를 바꿨고, 업계의 주류 장르를 바꿨다.

이번 목표는 글로벌 시장에 통하는 게임 개발이다. 아직은 증명된 것이 없지만, 엔씨는 비슷한 환경에서 증명해낸 이력이 있다. 엔씨가 또다시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을까. 올해 지스타는 그 단서를 확인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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