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팬들의 기대,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게임플] 익숙해질 때마다, 색다르게 두려운 세계가 끊임 없이 튀어나온다.

호러 액션은 많은 곳들이 만들어왔지만, 박수를 받을 만큼 잘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게임이다. 공포와 액션을 동시에 전달하는 일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죽을 듯 무섭더라도, 괴물의 패턴과 액션 방식에 적응이 되면 하품하면서 적을 학살하는 게임이 흔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액션 난이도를 높이면 불합리하게 어려워질 위험이 있다.  

그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절한 게임이 2008년 '데드 스페이스' 첫 타이틀이었다. SF 세계관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괴물과의 처절한 사투, 그 가운데 숨막히는 긴장감과 시원한 액션을 전부 놓지 않았다.

크래프톤 신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글렌 스코필드를 중심으로 당시 개발자들이 모여 개발한 정신적 계승작이다. 영상과 플레이 시연부터 데드 스페이스의 진화는 느껴졌다. 당시 팬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어떻게 발전한 공포를 선사할 것이냐, 그 점이 숙제이자 기대 요소였다.

밤을 새워 플레이하고, 게임의 결말을 봤다. 기대하고 원했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 MVP : 사운드 

그래픽도 AAA급 게임에 걸맞지만,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압도적 무기는 사운드다. 반드시 준비 가능한 최고의 음향 장비를 세팅하고 플레이하길 권한다. 

마치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모여 '가장 무서운 소리를 만드는 방법'을 주제로 뜨거운 연구를 거친 뒤에 모든 정수를 모아 만들어낸 기법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소리는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유저와 함께 한다. 그리고, 소리의 소재는 매번 다르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것은 이런 사운드가 화음을 이룬다는 것이다. 음산하게 요동치는 BGM부터 시작해 현재 지역 환경에 맞춘 기계음, 멀거나 가까운 괴물의 소리, 바닥이나 천장에서 사르락대는 마찰음 등. 마치 음악처럼 음향이 어우러지면서 아드레날린 분비를 유도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운드를 통한 긴장감 전달은 절정에 이른다.

괴물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산발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들려온다. 그저 소리만 듣고 출현을 유추하기도 어렵다. 그중 어떤 것은 페이크고, 또 어떤 것은 진짜로 모퉁이 바로 뒤에 있는 적이다. 심지어 방향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접근하거나 빠져나가는 소리도 있다. 공포에 약한 유저라면 괴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견디기 힘들지 모른다. 

피곤할 정도로 사운드가 몰아치는 것도 아니다. 마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듯, 쉴 만한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리가 빠져나가는 연출도 감탄이 나온다. 자판기 AI의 목소리처럼 귀를 다른 곳에서 쉬게 만드는 설계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 부족함 없는 비주얼과 움직임

레벨 디자인도 공포에 익숙해지지 않게끔 다채롭게 형성됐다. 제이콥은 감옥을 나온 뒤 교도소 탈출을 위해 여러 지역을 돌파하게 된다. 그 지역별로 진행 구조와 공포 유발 장치가 다르다. 즉, 익숙해질 만하면 새롭게 무서워진다.  

사전 시연에서 환풍구를 기어다니는 구조가 많아 혹시 '환풍구 프로토콜'이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는데, 리뷰 플레이를 거치자 단지 그 지역의 특색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떤 구간은 바닥에 안개가 자욱해 발 밑의 공포를 구현했고, 또 다른 곳은 절대적 어둠에서 오염된 벽을 짚고 나아가야 하는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지역간 이동 구조는 촘촘하게 엮인다. 선형적 구성이기 때문에 동선과 배치는 굉장히 중요했고, 그 숙제는 순조롭게 해결했다. 맵 통과를 위한 퍼즐 등 탐험 요소는 촘촘하면서도 절대 복잡하지 않다.

UI도 만족스럽다. 데드 스페이스에서 발전한 버전인데, 그때보다도 화면에 보이는 정보가 거의 없어 실제감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정교한 물리 엔진이 더해졌다. 단점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상호작용 버튼도 굉장히 작은 편이라 가끔 놓치고 지나갈 수 있다는 정도다.

또 하나의 장점은 적의 움직임이다. 가끔씩 소름이 돋을 만큼 똑똑하다. 괴물 종류에 따라서는 기습 공격이 빗나가면 몇초 뒤 다시 멀리 빠지면서 다음 기습을 노리는데, 공격 루트 설정이 굉장히 합리적이라 적절하게 화가 나게 만든다. 

모든 괴물은 인식 범위와 상황에 맞는 지능으로 행동한다. 앞이 막히면 우회해서 장애물을 넘어오고, 심지어 뒤로 돌면서 협공을 펼치기까지 한다. 중반부터는 촉수 변이로 강화되기까지 하니 쉽지 않은 싸움의 연속이다. 결국 유저의 지능적 플레이도 함께 요구된다. 

■ 전투, GRP 상호작용으로 도약한 '호러액션 자유도'

초중반은 쇠파이프와 권총 한 자루만으로 충분히 적을 물리치고 헤쳐나갈 수 있다. 괴물들에게 촉수 변이가 나타나는 시점부터는 다르다. 몸에서 튀어나온 촉수를 발견하면 거기부터 조준해 사격해야 한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헤드샷으로 끝내는 개념이 아니다.

일단 들이대고 컨트롤로 해결하는 싸움은, 게임 후반부에서 적 여럿을 만나면 높은 확률로 죽는다. 동시다발적으로 촉수 변이를 준비하기 시작하면 한 번에 처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물 종류에 따라 공격 방식이 달라, 자칫하면 탱커와 딜러 파티에 두들겨맞는 던전 보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적 특성을 파악하고 좌우 회피나 막기 가운데 하나를 빠르게 선택하고, 근접 공격과 사격 콤보를 섞어서 괴물을 하나씩 빠르게 녹이는 쪽이 편하다. 물론 촉수 조준사격은 필수다.

그리고, 중력 그립(GRP) 활용은 전투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그만큼 중요하다. 액션 자유도, 쾌적한 탐험, 플레이 난이도까지 GRP 숙련도에 따라 갈린다. 괴물을 포함한 게임 속 수많은 오브젝트를 움켜쥐고 던져버리며 서로 충돌시킬 수 있다.

적을 들어서 분쇄기에 던져 갈아버리거나, 난간 밖으로 추락시키거나, 가시 벽에 꼬챙이로 만들거나, 근처 가스통을 들어 던져 광역으로 터트리는 등 수많은 활용법이 존재한다. 아마 게임 끝까지 발견하지 못한 플레이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게 될까?" 싶은 GRP 사용은 대부분 실제로 가능했다. 상호작용할 만한 환경을 미리 살펴보고 다양한 자유도로 전투를 풀어나갈 수 있다. 전투뿐 아니라 숨겨진 길을 찾고 상자를 부숴서 아이템을 얻는 용도로도 소중하게 쓰인다. 

중후반부터 얻는 샷건도 비록 탄약 확보는 팍팍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큰 도움이 된다. 또 중간 거점마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손에 더 맞는 방향으로 전투력을 늘리는 재미도 있다. 기자의 경우 GRP 사용에 맛들리면서 충전 속도와 던지는 힘을 먼저 강화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날려버리는 플레이를 즐겼다. 

진정으로 '생존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컨트롤이 서툴더라도 머리를 잘 쓰면 전투는  쉬워진다. 하지만 긴장감이 없을 만큼 쉬워지는 일은 없다. 초중후반 언제든 한 순간 당황하거나 판단을 실수하면 상하좌우로 협공당해 새로운 데스 신을 수집하곤 했다. 정확하게 중간 난이도에 어울리는 밸런스 구성이다. 

데드 스페이스가 보여준 전투 법칙도 비슷했지만, 액션의 풍성함에서 차원이 달라졌다. 핵심 이유는 명확하다. 당시에 비해 주변 환경 상호작용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 처절하고 묵직한 내러티브, 장르의 한계도 조금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스포일러를 피해서 언급하기 어렵지만, 데드 스페이스 시절보다는 분명 한 단계씩 진화했다. 스토리의 밀도와 복선 회수, 컷신의 연출이나 등장 빈도, 인물들 완성도 등 모든 분야에서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내러티브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는 개발진의 말은 게임 몰입도에서 드러난다. 실제 액션과 스토리 컷신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지극히 부드럽게 연결된다. 게임 화면에서 실제 환경과 분리된 UI는 단 하나도 표시되지 않는다. 핵심 인물들과의 마주침과 갈등, 뜻밖의 전개, 절정을 향헤 치닫는 이야기가 거슬리지 않게 이어져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단, 장르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내러티브의 한계도 있다. 이야기가 궁금해질 만하면 어떤 이유에서든 제이콥은 다시 혼자 남는다. 또 다음 대화를 듣기 위해 새로운 끔찍한 공간을 탐험하고 괴물을 쓰러뜨려야 한다. 

물론 그 구간들 자체는 재미있게 설계됐다. 어쩔 수 없는 패턴 반복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대사 전개를 과하게 늘리거나 동료와의 단체 행동이 많았다면 호러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긴장감이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이 장르에서 깊은 이야기를 전달할 때 색다른 기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드는 계기가 됐다.

■ 호러 액션의 '미래'를 다시 열다

PS5판 기준 큰 버그는 발견하지 못했다. 살짝 화면이 깨진 듯한 순간이 두어 번 있었고, 인물별로 대사 불륨이 가끔씩 들쑥날쑥하게 들리는 정도. 그리고 더빙과 자막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다만 사전 리뷰 버전에서 발견된 오류고 데이원 패치에서 개선됐을 가능성도 있다. 

플레이 타임은 약 12시간이었다. 다른 호러 게임들과 비슷하며, 공포를 즐기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경험의 밀도는 가히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튀어나와 놀래키는 '점프 스케어' 연출도 존재하지만, 절대 과하게 쓰진 않는다.

AAA급 게임의 시점에서 별 5개 중 4개 정도는 줄 만한 게임이다. 만일 호러 액션 장르만 기준으로 한다면 만점도 아깝지 않다. 플레이 가능한 유저가 한정되고 액션 시스템 이해 단계가 까다롭다는 단점도 있지만, 장르적 환경 내에서 최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한때 호러 액션의 미래가 있을까 걱정한 적도 있다. 게임 스타일이 한정되어 있었고, 확장성도 높지 않았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역시 새로운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반을 닦은 데드 스페이스의 문법에서, 더욱 압도적인 퀄리티와 정교한 디테일을 들고 돌아왔다. 그 결과, 유저에게 주는 경험은 예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진화했다.

호러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망설이지 않고 플레이해도 될 게임이다. 호러 게임을 플레이해본 적 없더라도, 이 속에 구현한 광기 어린 세계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분명, 차세대에 이름을 남길 호러 액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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