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술 발전 따라, 더욱 극한으로 치닫는 몰입

[게임플] "왜 돈 주고 공포를 느껴요?"

공포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이 종종 듣곤 하는 말이다. 공포는 분명 부정적 감정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는 영상, 만화, 게임 등 모든 문화 콘텐츠에서 인기 소재다. 

왜 일부러 공포를 찾게 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생존의 극한 위협에서 인간에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주 이유로 꼽는다. 동공이 확장되고 심박이 날뛰는 등의 격렬한 감각이 쾌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 스카이 다이빙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포 미디어 중에서도 게임은 독하기로 악명이 높다. 공포영화는 정 보기 어려우면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가면 된다. 만화도 후다닥 책장을 넘기면 그만이다. 반면 게임은 손을 놔두면 그 장면이 영영 끝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직접 움직여 공포를 해결해야 한다. 

게임의 이런 특징 때문에 스트리밍 콘텐츠도 수요가 높다. 공포게임을 절대 플레이 못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방송만큼은 꼭 챙겨보는 경우가 있다. 공포는 즐기고 싶지만 직접 조작까지는 너무 두렵거나 난이도가 어려운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공포게임은 지금도 한창이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매번 올해의 게임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글로벌 주류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데드 스페이스'의 아버지 글렌 스코필드가 정신적 계승작인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12월 출시하면서 시리즈의 회생을 예고하고 있다. 

공포게임은 까다롭다. 역설적으로,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어렵다는 말은 곧 젋은 잠재력을 가졌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공포 중에서 압도적 대세를 차지하는 장르는 서바이벌 호러다. 한정된 무기, 혹은 아예 무기 없이 두려운 존재들 사이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게임을 말한다. 하지만 공포게임 속에서 생존은 지나치게 넓은 개념이었다. 생존을 게임성으로 소화하는 방식은 세부적으로 끝도 없이 분화해갔다.

'유저에게 어떻게 새로운 무서움을 줄 것인가'라는 고민은 공포게임에서 늘 있었다. 인간은 언제나 적응하기 마련이다. 똑같은 방식의 연출을 반복할수록 공포감은 무뎌진다. 초창기 바이오 하자드에서 좀비를 보고 자지러지던 사람도, 몇십 시간을 플레이하면 웃으면서 샷건을 들고 좀비를 학살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공포게임의 한계를 바꾼 대표적 사례가 2010년 출시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였다. 주인공은 아무런 무기도, 호신 수단도 가질 수 없었다. 미지의 존재에게서 끊임없이 도망쳐야 했고, 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심리적인 공포 연출이 유저를 죄여왔다. 

'오직 도망쳐야만 하는, 붙잡히는 순간 죽는 게임'. 그것은 이전 게임들과 차원이 다른 공포감을 가져왔다. 플레이에 아무리 익숙해져도 주인공이 공포보다 강해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멘탈'이라는 요소도 유저를 끊임없이 벼랑 끝으로 내밀었다. 발상의 전환은 공포게임의 무한한 가능성을 불러올 수 있었다.

기술 발전에 따라 공포를 조성할 수 있는 방식도 늘었다. 2014년작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은 주인공이 에일리언을 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같은 공식을 가진다. 하지만 참신한 시스템이 추가되면서 화제를 끌었다. 에일리언이 게임 속에서 점차 '학습'을 한 것이다.

유저가 에일리언 앞에서 특정 회피 수단을 사용하면, 에일리언은 그에 맞춰 진화한다. 유저가 환풍구 위주로 도망다니다 걸리기 시작하면 에일리언도 환풍구를 중심으로 쫓아다닌다. 락커에 계속 숨으면 기기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버린다. 심지어 화염방사기를 자주 맞으면 그에 대응해 불 내성이 생기기까지 한다. 

이미 성공했던 생존 수단이 다음 번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 활로가 점차 목을 죄여온다는 압박감은 유저의 공포감을 새로운 방식으로 늘렸다. 상호작용에 실패 확률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생존 가능성은 줄어든다. 생존 위협을 효과적으로 공포로 승화시킨 사례다. 

플랫폼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도 공포는 급격히 진화한다. 가상현실(VR) 시대에 접목된 공포는 게임을 넘어 진지한 위협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지간한 공포를 웃으면서 즐기는 사람이라도, VR 공포게임은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준다. 

미래에 가상현실 속으로 완전히 의식이 들어갈 수 있는 플랫폼이 개발된다면, 공포게임은 양날의 검이 될 것이다. 최고의 몰입 콘텐츠로 떠오를 수도 있고, 지나치게 현실 공포라 기피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한번쯤 겪어보고 싶은 경험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공포 콘텐츠는 뒤로 밀려난 적이 없다. 옛날 구전으로 내려오던 설화와 민담 가운데서도 무서운 요괴나 귀신 이야기는 단골 소재였다.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괴담은 호러 무비가 됐고, 게임을 통해 공포는 더욱 피부로 와닿고 있다.

공포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상호작용의 범주가 인간 본연의 생존과 맞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은 그 상호작용을 더욱 자유자재로 몰입하도록 이끌고 있다. 게임에서 느끼는 공포는 이미 하나의 익스트림 스포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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