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공포' 배려 사례 국내 게임계에 희귀... 유저 접근성 한 걸음 전진하다

[게임플] 기자는 거미공포증이다.

어린 시절 썩 유쾌하지 못한 사건을 겪었고, 그뒤로 거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반사적으로 몸이 굳는다. 다른 벌레나 곤충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유독 거미에만 문제가 생기는 전형적 공포증이다. 강한 증상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임 그래픽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축복할 일이지만 때때로 불행이었다. 게임 속 거미의 모습은 현실을 뛰어넘는 현실감을 보여줄 정도로 세밀해졌다. 

한창 재미있게 즐기던 게임을 오직 거미 때문에 그만둬야 했던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블레이드 앤 소울'이나 '마비노기 영웅전'이 그랬다. '마비노기'나 '디아블로3' 정도는 참을 만했지만, 거미가 무더기로 등장하면 정신이 힘들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체 거미가 뭐가 사랑스럽다고 게임마다 줄창 등장하는가. 주변 개발자들에게 종종 물어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절지동물은 폴리곤이 거의 안 들어가요, 개발 일정 그나마 편하게 해주는 효자 몬스터예요".

그런 사정이 있다면 불만을 가지기도 힘들었다. 게임 시작 전부터 스포일러를 감수하고라도 거미 등장 여부를 확인하고, 해결 가능한 옵션이 없다면 플레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 게임에서 거미를 바꿔주는 옵션을 본 기억은 나지 않았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그랬다.

■ "국내에서 이런 패치를 해주는 곳이 있다고?"

6월 25일, 마비노기 판타스틱 데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업데이트 발표에서 미처 다 언급하기도 어려울 만큼 수많은 편의성 개선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거미가 싫은 유저를 위한 패치도 보였다.

업데이트 후 트레보에게 말을 걸면 '아로마 베어'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을 사용할 경우 게임 속 거미 몬스터가 귀여운 테디베어로 보이게 되는 것. 이 옵션은 유저가 원하는 대로 끄고 켤 수 있다. 

마비노기가 지금 기준에서 뛰어난 그래픽을 가진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거미 그래픽은 기묘하게 디테일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알비 던전에서 보스인 거대 거미 외에도 일반 구간에서 바글바글하게 등장하는 거미들은 공포증이 없는 유저들도 간혹 징그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비노기는 긴 역사를 가졌고, 유저층이 폭넓은 게임이다. 단순히 벌레를 무서워 하는 경우를 포함해 당장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혐오증을 가진 유저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게임 경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결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힐링을 선사한다는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

'스카이림'에서 거미를 곰으로 바꿔준 모드, 이것 없었으면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스카이림'에서 거미를 곰으로 바꿔준 모드, 이것 없었으면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 한국 게임계의 '접근성'이 더욱 전진하기를

서구권에서 인기를 끈 게임들은 거미 그래픽을 지우거나 다른 동물로 바꿔주는 유저 제작 모드를 흔히 찾을 수 있었다. 그런 배려가 없었다면,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이나 '드래곤 에이지' 같은 명작들의 엔딩을 영영 보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는 온라인 게임이 중심인 만큼 유저 모드를 지원하는 경우부터 보기 어렵다. 매일이 바쁜 업데이트 일정에서 소수 유저를 위한 배려를 요구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넥슨과 마비노기는 그런 뜻밖의 일을 해냈다.

누군가는 "그깟 거미가 뭐가 무섭다고 그러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증은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수 있다. 특히 거미공포증은 세계에서 9명 중 한 명 꼴로 가지고 있어 가장 흔한 포비아 증상 중 하나로 꼽힌다.

기자는 증상이 약한 편이지만, 심한 경우는 여덟 다리의 형태만 봐도 발작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사람들은 게임 내용을 전부 미리 알지 않는 이상 최신 게임들에 손을 대기도 어려울 것이다. 거미는 게임마다 매우 자주 등장하는 몬스터다.

게이머를 향한 접근성 배려가 과제로 떠오른 시대다. 마비노기의 이번 아로마 베어는 국내 게임계의 유저 접근성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올 여름, 오랜만에 마비노기 로그인 버튼을 누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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