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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도덕성 '약 인가 독 인가'플레이의 목적이 자극만으로 귀결되는 게임은 '포르노'와 같다.
차정석 기자 | 승인 2017.12.11 00:06

16세기 경, 당시 스페인 문학계를 주름잡던 유행이 하나 있었다. 소위 ‘피카레스크’라 불리는 새로운 장르소설이었다. 피카레스크는 쉽게 말해 작품 속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악당 내지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가진 문학작품을 일컫는 말이었다.

때문에 스페인어로 ‘악당(Pícaro)’이란 말에서 유래하게 된 것이다. 최초의 피카레스크 작품은 작자미상의 소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로 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악독한 주인공의 생애, 즉 캐릭터가 겪는 연속된 사건을 다루며 여러 독립적 플롯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구조로 돼 있다.
  
이후의 피카레스크 소설들도 이러한 구성을 많이 차용했고, 덕분에 지금의 피카레스크란 용어는 독립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모아 어떤 계통을 세운 구성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바탕이 근간이 되어 영화와 게임으로 전이됐다.

영화 <킬 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속에는 애초에 정의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피카레스크, 즉 악한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들 은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 그리고 <킬 빌> 등이 대표적인 영화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쪽에서는 <코드 기아스>가 대표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피카레스크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이 결코 적지 않다. 우리 모두가 떠올릴 만한 첫 번째 작품은 역시 GTA가 그것이다.

초창기 GTA는 탑뷰 시점을 가지고서 아기자기한 그래픽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약간 매니악한 성향의 게임이었다. 이러던 것이 3D 그래픽을 차용하면서 현실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피카레스크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GTA 초창기 시리즈. 시점은 이 상태로 고정이었고, 캐릭터들은 당연히 머리 위만 보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 게임의 자유도는 높은 편이 아니다. 다른 NPC와의 상호작용 대부분은 범죄로만 이루어지며, 이 범죄 행위도 경찰 및 군대를 쳐부수는 것이 주가 된다.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지 않고는 다음 컨텐츠를 이용하는 데에 제약이 생긴다. ‘디비니티 : 오리지널 신’과 같은 작품에서는 NPC를 죽여 스토리가 바뀌기도 하지만, GTA에는 그런 요소는 없다시피하다.

이러함에도 GTA 시리즈가 높은 자유도를 가졌다 평가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피카레스크'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기술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직접 몸을 담그고 있는 세계의 모습을 게임 속에 모사해내고, 동시에 NPC들의 AI 수준을 높여 현실성을 부각시켰다.

GTA 4편에 이르러서는 모든 캐릭터에게 감정이 부여되었고, 지나가는 NPC들은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주인공이 개입하지 않아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 성공했다. 이렇게 구축된 현실의 모사 안에서, 현실에서는 절대 해선 안 될 범죄를 게이머가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유도를 가졌다 평가받는 이유는 '피카레스크'이기 때문이다.

자유롭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에서 금기로 정해진 어떤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GTA 시리즈는 유난히 정치적 공박(攻駁)을 많이 당하기도 했다.

앞서 폭력성으로 둘째 가라면 서운할 격투게임 <모탈컴뱃>은 지난 1993년 12월 9일 미국 정치인 ‘제프 리버먼’ 상원 의원에 의해 거센 공박을 받았다. 이 게임의 정체성인 '페이탈리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의회가 게임 때문에 발칵 뒤집어 진 첫 사례다.

이후 모탈컴뱃은 국내 뉴스까지 등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뉴스로 등장하며 이 게임을 잘 몰랐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뉴스를 보고 관심을 끌게된 보기드문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터넷도 없었고, 게임에 대한 정보는 오직 잡지로만 접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뉴스는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주는 신선한 창 역할을 하며 용산과 청계천이 들썩였다.  

시버 게임스라는 유럽 회사에서 PC 플랫폼으로 제작된 ‘루시우스’란 제목의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말 그대로 악마적이다. 1966년 6월 6일, 미국의 어느 대저택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루시우스란 이름을 갖게 된 소년은 6이란 악마의 숫자가 네 번이나 들어간 날에 태어났지만 그럭저럭 별 문제없이 자란다.

그렇게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아 6의 숫자가 그의 생 다섯 번을 채우고, 생일파티를 하고 잠든 밤에 자신이 루시우스의 진짜 아버지라 말하는 악마 루시퍼가 나타난다. 루시퍼는 루시우스에게 초능력을 줌과 동시에 부모를 비롯한 저택의 모든 이들을 죽이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6살 소년 루시우스는 연쇄살인을 시작한다.

냉정히 말해 잘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다. 그래픽 및 최적화도 뛰어나다 보기는 어렵다. 자유도도 없어 살인의 방식은 오직 하나고, 그 하나의 방식을 찾아내어 실행해야 한다. 이 방식을 위하여 힌트를 찾아 상당히 넓은 대저택 내를 이리저리 배회해야 하는데, 힌트 수가 많지도 않은지라 그리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제공하지도 않는다.
  
결국 이 게임이 화제가 된 것은 “여섯 살 소년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가족들까지 살해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저택의 메이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의 사업 동료, 저택의 인부와 집사, 정원사를 지나 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에 조사하러 온 경찰까지 모조리 루시우스의 손에 죽는다. 그러나 주인공이 왜 이렇게 잔악한지에 대한 배경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잔인하고 소름끼칠 뿐이다.

영화나 게임 모두 시나리오의 연결점 없이 목적성만 띄며 진행되는 '포르노' 성 콘텐츠는 인간의 내면 속 욕망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콘텐츠들은 더욱 명확하고 철저하게 분리시켜 구분해야 된다. 

이 문화 콘텐츠들은 세기의 명작도 배출을 하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안될 희대의 쓰레기도 심심치 않게 배설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과정은 그 의도 부터 배경, 시놉시스까지 투명하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오래된 문화 콘텐츠 이기 때문에 지켜보는 평론가들도 넘쳐난다.

반면 게임의 경우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집단이 타 문화 콘텐츠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 게다가 평론가의 다수가 게임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어서 객관성을 담보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게임은 제작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GTA 시리즈의 개발자 라즐로 존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 게임들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부모인데 당신의 자녀에게 우리 게임을 사준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최악의 부모다.”(Our games are not designed for young peopled. If you're a parent and buy one of our games for your child you're a terrible parent.)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임도 제작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향해가기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픽과 게임의 장르, 방식은 물론이고 소재와 이야기에 이르러서도 말이다. 단순히 자극적이고자 하는 게임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례를 빈번하게 봐왔다.  

차정석 기자  cjs@game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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