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러운 용산이 변화하고 있다. 1호선 용산역과 다리로 길게 이어졌던 터미널 상가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초고층 호텔들이 들어섰다. 선인상가를 마주 보고 있는 건널목 앞 유명한 게임 상가는 몇 개만 남아 완전히 생기를 잃었고 이제 회복의 기미는 1%도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용산은 겜돌이의 성지가 아니다. 

90년대 대한민국 겜돌이들의 메카를 꼽으라면 단연 용산이었다. 나진상가를 시작으로 선인상가, 터미널 상가에서 전자랜드에 이르기까지 용산은 한국판 게임산업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내왔다. 

그 시대 게임의 유통은 오프라인에 한정돼 있었고 그만큼 시장의 밀집력은 강력했으며 한때 한국의 아키하바라가 될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고 시장은 급격히 무너졌다 이젠 사골을 끓여도 육수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우려낸 전설 '손님 맞을래요?'의 용팔이 사건과 더불어 2000년 다나와 에누리 등 가격비교 사이트의 등장으로 용산의 몰락은 가속화됐다. 

이때도 용산 상인들은 "일부 악덕 상인들의 문제다." "다나와가 유통시장을 파괴한다."며 변화 없이 '남 탓'만 하다가 끝났다.

필자가 이 켜켜이 묵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 낡아빠진 용산이 망한 이유와 함께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언급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용팔이와 다나와 때문만일까? 하는 문제다. 

98년 플레이스테이션1 당시 모든 게임의 가격은 3천원이었다. 콘솔에 복사 칩을 달아 복사 CD를 돌릴 수 있게 개조하는 비용은 5만원 남짓 됐다. 용산에 있는 모든 업소에선 노래방 책같이 생긴 게임리스트가 있었으며 주문하면 점원이 어디론가 갔다가 복사 게임을 들고 돌아왔다. 이렇게 최신작 명작 가리지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복사 게임은 사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APPLE2 게임 '로드런너'나 '가라데카' 부터 MSX게임 '이스', '알타입', '몽환전사 바리스', '메탈기어 솔리드' 등 8비트 게임들은 디스켓으로 복사해서 판매됐다. 당시 복사비는 디스켓 10장에 5천원 수준이다. 

이렇게 복사된 게임들은 학교에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복사와 복사가 거듭됐다. CD라이터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개인도 콘솔게임을 복사하기 시작했고 플레이스테이션2가 등장했을때는 '하드플스' 개조 즉, 하드디스크에 게임을 불법다운로드 받았다. 이후 PSP 등장 이후엔 '커펌'이라는 직접 개조를 통해 모든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정품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던 시기와 맞물려 사실 국민 소득수준도 높지않았던 당시라 이러한 흐름은 만연했고 죄의식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용산이 아키하바라가 되지 못한건 그 당시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다. 더 나쁜놈과 덜 나쁜놈의 차이만 있을뿐 사실 우린 다 나쁜놈이던 시대의 결과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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