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이야기의 힘, 그러나 짧았던 전성기...
창세기전 스위치 리메이크와 모바일, 매력은 살리고 단점은 재구성하길

[게임플] 90년대와 00년대의 경계, 그 시절 한국 게이머들이 한 번쯤 스쳐갔을 이름이 있다.

첫 만남은 1996년이었다.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로 사 달라고 졸라서 받은 패키지에는 '창세기전'이라는 이름이 써져 있었다. 게이머 인생에서 처음으로 손에 넣은 실물 패키지였다. 그리고 다음 해 '창세기전2'까지, 당시 한국 게임에 없었던 스케일과 스토리가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당시 개발사 소프트맥스는 손노리와 함께 1990년대 한국 게임계를 양분했다. 창세기전 IP가 중심에 있었다. 특히 창세기전2는 전작 분량을 포함한 합본으로 등장해 안타리아 대륙의 거대한 서사시를 완성했고, 예상 밖의 반전과 수많은 군상극을 이끌어내며 이후 다져나갈 전설의 기반이 됐다.

창세기전2와 외전들은 마니아들을 쌓아나가는 과정이었다. '서풍의 광시곡'은 거대 전쟁을 탈피해 개인 시점의 복수극을 그린 RPG였다. 두 번째 외전 '템페스트'는 육성 시뮬과 RPG를 조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모두 게임성 면에서 취향은 갈렸지만, 세계관의 징검다리 역할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꼽히는 명대사
'창세기전 외전: 서풍의 광시곡'에서 꼽히는 명대사

초창기에 기존 국내 게이머들의 지지를 얻었다면, '창세기전3'은 훨씬 가벼운 유저층에게도 창세기전을 알리는 촉매였다. 총력을 기울에 개발에 집중한 만큼 시리즈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높았고, 연출 발전과 방대한 더빙 추가로 스토리 접근성이 크게 늘었다. 

역시 인기의 기반은 캐릭터와 서사였다. 살라딘, 크리스티앙, 세라자드 등 지금까지 IP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 시기 등장했다. 3개 에피소드로 시작해 이들이 서로 엇갈리면서 갈등과 연합, 때로 로맨스를 만들어내며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스토리텔링만으로 해볼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팬덤과 2차 창작이 크게 유행한 계기이기도 했다. 2000년경은 그럴 만한 게임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던 시기다. 여기서 게임을 즐기지 않던 계층 중 일분까지 웰메이드 캐릭터와 스토리에 빠져들었고, 지금 기준 미약하지만 문화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만들어내는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에 2000년 출시된 '창세기전3 파트2'가 세계관의 끝과 순환을 고하는 이야기로 완결되면서, 팬덤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주사위의 잔영' 등 온라인 게임으로도 콘텐츠가 파생되어 영향력은 길게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창세기전 IP 활용과 순수 재미로 큰 인기를 끌었던 '주사위의 잔영'
창세기전 IP 활용과 순수 재미로 큰 인기를 끌었던 '주사위의 잔영'

하지만 창세기전은 예상보다 빠르게 힘을 잃었다. 소프트맥스의 몰락이 생각보다 빨랐다. 2004년 시작된 '마그나카르타' 시리즈가 막대한 개발비에 비해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고질병이었던 버그와 게임 자체 재미의 부실함이 창세기전 IP를 벗어나자 치명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한국에서 패키지 게임이 저물고 온라인의 시대가 왔으며, 시장이 살아 있던 일본 등 해외에서는 혹평을 받았다. '포 리프' 같은 인기 소셜 플랫폼도 있었지만 결국 BM 창출에 실패했다.

황혼기 온라인 게임으로 등장한 '창세기전4'는 특히 잊혀진 역사로 남았다. 비주얼, 재미, 스토리 등 모든 면에서 예전 역량이 아니었다. 모바일 게임 '이너월드'와 그밖에 다양한 시도가 연달아 실패하면서, 소프트맥스는 결국 2016년 경영권을 매각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창세기전 파트2' 대미를 장식하는 말이자, 팬들이 가장 오래 인용해온 말이다. 창세기전의 부활을 꿈꾸는 유저는 아직도 많다. 전성기 시절 젊은 게이머들에게 임팩트가 매우 컸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 빛나지 못했기 때문에 미련은 더욱 남을 것이다.

올해 12월 출시될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가장 결정적인 기회다. 라인게임즈가 모든 IP 권한을 이어받으면서 리메이크 계획을 발표했고,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으로 창세기전2 기반 게임을 만든다는 정보가 나왔다. 이후 개발 지연으로 기다림이 길어졌지만, 마침내 출시가 확정되면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초창기 개발 발표 당시, 장기적으로 창세기전3 리메이크도 계획 중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현재도 계획이 동일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회색의 잔영'이 기대치를 충족할 경우 가능성은 커진다.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창세기전 시리즈의 전투 시스템과 밸런스는 하나같이 어설펐다. 그럼에도 사랑을 받은 이유는 명확했다. 시대를 앞서간 캐릭터 디자인, 그 캐릭터들이 얽혀 만들어내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서사가 있었기 때문. 당시 수많은 10대와 20대 유저들이 '덕질'과 연결하기 충분한 조건이었다. 

결국 전투 시스템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현재 감성에서 무난한 SRPG 장르로 게임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낡지 않은 이야기들이 합쳐서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창세기전의 부활을 의미한다.

라인게임즈는 '창세기전 모바일: 아수라 프로젝트'를 통해 모바일에서도 IP 계승을 꿈꾸고 있다. 출시 일정은 4분기, 닌텐도 스위치 리메이크작과 비슷한 시기다. 검증된 이야기로 승부하는 동시에 새로운 스토리를 함께 다룬다. 

그동안 여러 부활 시도가 있었다. 이번 창세기전은 다를까. 부디 다르길 바라는 염원이 커지고 있다. 올해 12월은 창세기전 귀환의 마지막 기회이자, 가장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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