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유저에게도 노출될 만큼 커져버린 불법 대리게임 시장
업체 단독은 기술적, 물리적 한계... 처벌법은 벌금 수백만 원 '솜방망이'
게임사 시스템 개선, 정책 강화, 유저 인식과 협조 '3박자' 어우러져야

[게임플] "도전과 낭만으로 남아야 할 콘텐츠가 하나의 상처로 남고 말았다."

최근 불거진 이벤트의 대리게임 적발 사건을 보며 한 유저가 남긴 댓글이다. 국내 게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조직적 대리게임 문제가 결국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첫 사건은 '로스트아크'에서 나왔다. 신규 최상위 콘텐츠인 '카멘' 레이드 TOP10 클리어 공격대에 특별한 기념 아이템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큰 화제를 모은 가운데, 순위권에 든 공대원 상당수가 대리를 맡겨 레이드를 클리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금강선 디렉터는 철저한 조사와 최대 수위의 조치를 선언했고, 그 결과 TOP10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대리 유저가 포함되어 있던 6개 공대는 클리어 기록 전체가 제거됐다. 그리고 개인 단위 대리 소규모 작업장 단속, 향후 강력한 지속 제재를 약속했다. "타인에게 계정을 위탁하는 행위를 삼가 달라"는 경고도 되풀이했다.

대리게임은 게임에서 늘 논란이 되어온 주제다. 누군가 대리시험을 쳐서 실력 이상의 합격점을 받는다면, 반대쪽 누군가는 부당하게 떨어져야 한다. 이는 게임은 물론 스포츠와 사회에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카멘 레이드 TOP10은 산악회의 4위가 '막차'가 되었다
카멘 레이드 TOP10은 산악회의 4위가 '막차'가 되었다

■ 안일하게 넘어간 사이, 너무 커져버린 대리 작업장 조직

동시에 지나치게 오래 방관해온 일이기도 하다. 특정 게임에 따라서는 인플루언서조차 계정을 타인과 함께 키우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정도다. 

경쟁 시스템이 없고 다른 유저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큰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가곤 했다. 카멘 레이드에서 대리 문제가 크게 불거진 것도 클리어 최상위권에 영구 보상을 수여하는 순위제가 처음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10여년 전까지는 경쟁 게임조차 프로급 유저가 대리 의뢰를 같이 수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서양 지역이 오히려 대리게임에 대한 인식이나 처벌은 너그러운 편인데도, 대리게임 수요나 조직적 대리 제공 규모는 한국과 중국 지역에서 크게 잡힌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열망과 효율을 따지는 성향이 유독 강한 문화적 차이가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지난 5월, 한 스트리머가 게임 도중 만난 팀원의 음성 대화에 무심코 참여했다가 대리 업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 사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대리 게임을 뛰어주고 있다는 것, 일정 금액을 받고 특수한 방송을 저격해 고의로 패배하는 등 충격적인 대화가 지금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져 있다.

우연히 만난 대화방에 이런 업자들이 출몰할 정도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큰 규모의 거래가 오갈 것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사설 도박과 토토 불법광고 근처에는 대부분 대리게임 광고 배너도 함께 붙는다. 특히 경쟁 게임의 대리는 건전한 이용자들의 경험마저 뷸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해악이 크다.

처벌법 시행 후 5년간 대리게임 적발 건수 (자료: 김승수 의원실)
처벌법 시행 후 5년간 대리게임 적발 건수 (자료: 김승수 의원실)

■ 게임사 노력은 필수 조건... 그러나, '충분 조건'은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게임사의 적극적인 적발과 조사다. 업체 노력이 시작되지 않으면 대리 해결의 전제가 마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개 업체의 의지만으로는 이미 음지에서 조직화된 사업을 잡을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불법 도박과 토토 사이트도 이미 근절됐을 것이다.

게임사 입장에서 대리게임 적발 난이도를 익명의 관계자에게 물었다. 대답은 "잡기는 쉬우나, 다 잡을 수는 없다"였다. IP 접속 시간과 장소, IP별 승률 및 플레이 패턴을 비교하면 대리 여부 대부분을 판별 가능하다. 그러나 수많은 유저 사이에서 의심 신고 없이 하나하나 대리 여부를 검사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기 있는 경쟁 게임들은 일일 접속자만 10만 명이 넘는다. 그중 '트롤'과 부적절한 언어 적발, 불법 프로그램 방어만 해도 작업량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카멘 레이드의 경우 최상위 순위를 기록한 수십 명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했기 때문에 금세 조치됐지만, 수십만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경쟁하는 게임은 비교 불가능한 작업량이 들어간다.

인공지능(AI)을 통해 대량으로 접속자를 분석하는 솔루션도 연구 중이나, 아직 모호한 부분까지 잡아내기 어려우며 무고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준이라 실제 활용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가장 어려움을 겪을 곳은 소규모 개발사의 무료로 플레이 가능한 경쟁 게임이다. 게임을 잘 만들어서 많은 유저를 유치해도, 높은 수익률로 단박에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이상 끝없이 계정을 만들어 시도하는 대리 게임을 막기 어렵다. 대리 게임을 해결하는 일도 빈익빈 부익부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대 징역이지만, 지금까지 징역은 한 건도 없었다
최대 징역이지만, 지금까지 징역은 한 건도 없었다

■ 1억 원 벌고 '벌금 500만원'... 대리 조직은 잃을 것이 없다

단순히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음지로 숨어드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해외의 경우 감지가 불가능한 메신저 프로그램을 따로 쓰고, 의뢰금은 가상화폐를 통해 거래하기도 한다. 여기에 딥웹까지 사용할 경우 사실상 추적은 불가능하다. 인터넷 세계는 좁으면서도 무한히 넓다.

다행히 2019년 대리게임 처벌법이 발의되면서 적발과 징벌은 가능해졌다. 사업자가 승인하지 않은 방법으로 타인의 계정 점수와 성과를 대신 획득하는 용역을 알선하거나 제공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이달 게임위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적발된 대리게임은 약 1만 건, 불법 프로그램 사용은 2만 6천여 건이다. 전문 대리 조직이 발견돼도 법적으로 아예 손을 댈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해 상황이 한결 나아진 셈이다.

그러나 처벌이 유명무실하다는 점이 문제다. 수사 의뢰까지 발전한 사례는 1만여 건 중 92건에 불과했고, 실제 처벌까지 이어진 몇몇 판례마저도 최대 벌금 500만 원에 불과했다. 징역은 한 건도 없다. 광고 및 사이드 사전 차단 정도의 행정조치가 그나마 집행 가능한 최선의 수다. 

1억 넘는 수익을 올렸는데 수익 몰수 없이 벌금 500만 원이 끝이라면, 대리 업체 입장에서 전혀 리스크가 없다. 처벌을 받은 뒤 다른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해 또 수익을 내면 그만이다. 관계자는 "법적 단속과 조치 수위를 강화하고, 대리 제공자뿐 아니라 구매자까지 부담을 느낄 수 있어야 대리 사업이 조금이나마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게임사, 정책, 그리고 게이머들의 적극 협조가 모두 이루어져야

종합적으로, 대리 게임을 최대한 근절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필수다. 첫째는 게임사의 노력, 둘째는 수사 및 처벌 정책 강화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유저 인식 개선이다.

대리게임을 받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나뉜다. 보통 떠오르는 이유는 높은 티어에서 제공하는 치장 아이템 보상을 얻기 위해서다. 여기에 단순히 주변에 실력을 자랑하기 위한 허영심으로, 논쟁에서 자기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높은 점수를 얻으려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실제 실력과 관계 없이 계급장과 같이 인식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리게임을 없애기 위해 그런 분위기도 함께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조직적 대리 사업이 유독 아시아권에서 성행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모든 공급은 수요가 있을 때 발생한다. 업체 이상 차원에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생각할 만하다. 누구나 도덕적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꾸준한 효과가 있다.

게임 안팎에서 적극적인 신고도 요구된다. 모든 유저 전수조사는 매우 어렵지만, 의심 대상이 특정될 경우 조사 후 대리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쉬운 편이기 때문이다. 신고로 적발되어 계정이 삭제당할 위험이 높다고 인식되면 구매자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신고 활성화를 위한 게임사들의 설계도 필요하다. 리플레이 정보 등 다양한 기능으로 신고를 더욱 쉽게 만들어야 하고, 신고 적중률이 높은 유저를 위한 피드백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리 의심 유저를 더욱 쉽게 감지하는 솔루션 개발에 힘을 모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대리 게임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과시욕이 존재하는 이상, 매력적 보상이 존재하는 이상 반드시 거래는 생긴다. 하지만 게임사, 정책, 유저 차원에서 합심할 수 있다면 그 규모를 줄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실력과 노력에 걸맞는 정당한 보상'이라는 가치가 모든 게임에서 온전히 지켜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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