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와 레이드, 왜 하시나요?" 오랜만에 돌아온 대답

[게임플] MMORPG를 왜 시작했을까.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레이드'를 달렸을까. 오랫동안 그 대답을 잊고 지낸 시기가 있었다. 

국내 수많은 게이머가 주목했던 '로스트아크' 카멘 레이드의 4관 최초 클리어가 지난 주말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로아사랑단(로사단)'. 캡틴잭, 뜨뜨뜨뜨, 태경, 후니, 김뚜띠, 쁘허, 은가비, 방토라까지 인터넷 방송인 8명이 모인 공격대가 로스트아크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퍼클' 경쟁을 위해 방송까지 포기할 만큼 처절한 열정을 보였고, 모두가 소식을 궁금해하던 23일 오후 9시경 모든 유저에게 큼지막한 메시지가 떴다. '어둠군단장 카멘, 전 서버 최초 클리어'. 모두가 놀라는 동시에 환호하고 축하했다. 카멘 업데이트 11일차였다. 

한 축제의 클라이막스와 같았다. 홈페이지 명예의 전당에 캐릭터 모습과 닉네임이 새겨졌다. 금강선 디렉터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도전'이 너무나 빛났던 시간이었다"며 퍼클 공대 캐릭터들의 특징을 딴 이모티콘 제작 계획을 밝혔다.

카멘은 모든 면에서 역사에 남을 레이드였다. 비교 대상이 몇 없을 만큼 강렬한 연출, 여기에 전례가 없을 만큼 악랄한 난이도가 함께 했다. 결국 일주일 내 클리어를 걸고 벌어진 1차 내기는 유저들이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게임 내 최정예 공대들은 모든 것을 걸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수만 명, 십만여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기다렸다. 카멘 퍼스트 클리어 순간, 그 스토리를 따라온 모두가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홈페이지에 박제된 '카멘 The 1st', 로아사랑단 공대 멤버들
홈페이지에 박제된 '카멘 The 1st', 로아사랑단 공대 멤버들

■ 밤 늦게 입 틀어막고 울부짖은 짜릿함을 느껴본 게이머라면 

레이드는 MMORPG의 꽃으로 불린다. 과거 '에버퀘스트'에서 처음 용어가 탄생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를 계기로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단어가 됐다. 이제는 더 나아가 여러 명이 힘을 합쳐 강력한 무언가에 도전할 때 레이드라는 용어를 흔히 쓰기도 한다. 

편의성이나 가이드 UI가 부족했던 과거 레이드는 지옥과 같았다. 수십 시간을 들이대고도 실패해 공대가 깨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단체 레이드에 빠져들었다. 엄청난 보상을 얻는 것이 아니라도, 어려운 만큼 성취감은 컸다.

개인적 경험에서 가장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 레이드는 과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왕이었다. 한 상위권 공대에 용병으로 영입되어 참여했고, 절대 뚫리지 않던 마지막 페이즈에 좌절하기도 하며 낮부터 밤새도록 공략을 펼쳤다. 

마침내 새벽 5시쯤 공략의 끝을 알리는 리치왕 체력 10% 이벤트가 발생하는 순간, 모두와 함께 울부짖으며 환호하던 기억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에 생생하다. MMORPG를 즐겨본 유저라면 누구나 인생 레이드 하나쯤은 기억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또다른 도전을 꿈꾸곤 한다. 

"어디 한 번 붙어보죠" 라고 카멘 레이드 난이도에 자신감을 보였던 금강선 디렉터
"어디 한 번 붙어보죠" 라고 카멘 레이드 난이도에 자신감을 보였던 금강선 디렉터

"레이드는 쉽게, 성장은 편하고 빠르게"

언젠가부터 MMORPG에서 성장 속도가 우선이 되고, 쉽고 편한 성장이 미덕처럼 자리잡았다. 물론 편의성은 시대의 흐름에서 좋아져야 했다. 하지만 길고 어려운 콘텐츠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모바일 플랫폼이 경쟁 상대가 되면서, PC 온라인게임도 콘텐츠 무게를 줄여야 했다. MMORPG 역시 황혼기가 왔다고 할 만큼 차기 세대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레이드의 참맛을 되새기게 하는 게임은 이제 장수 게임을 제외하면 몇 남지 않았다. 

로스트아크는 그 속에서 낭만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게임이었다. 군단장 레이드는 항상 난이도와 퀄리티에서 모두 앞서나갔다. 그만큼 개발 과정부터 뼈를 깎아야 했다. 그중에서도 카멘은 최강의 군단장으로서 "절망적인 난이도"를 예고해왔다. 

만들기 힘들어도, 플레이하기 힘들어도 어려우면서 웅장해야 했다.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다. 감성을 계속 건드릴 수 있어야 팬들이 유지된다. 그 가운데 MMORPG의 낭만은 모두가 모여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장대하게 완성하는 것이 카멘 레이드의 과제였다.

■ 레이드 - 게이머의 실력, 열정, 노력,  팀워크가 모인 융합체 

카멘 레이드는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순수 피지컬 패턴이 중심이었다. 기본 입장 조건만 갖춘다면, 더 이상 스펙을 올려야 돌파 가능한 곳은 없었다. 공대원 모두가 얼마나 잘 피하느냐, 얼마나 민첩하게 반응하고 판단하느냐가 숙제였다. 

이것은 한편으로 과금으로 스펙을 올릴 수 있는 부분유료화 MMORPG의 한계 깨기에 도전한 것이기도 했다. 최상위 콘텐츠에서도 유저 실력보다 과금 수준이 결과를 가르는 현상이 당연해진 시대다. 하지만 카멘은 순수 실력과 노력 승부였다. 

이 때문에 십만 명 넘는 사람들이 마치 e스포츠처럼 긴장감을 가지고 각 공대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었다. 로사단 외에도 산악회, 망령회, 우레 공대 등 유명 방송 공격대에 모여 도전 하나하나에 숨을 죽이고, 마침내 한 관문 돌파에 성공했을 때 한 방송에 모인 수만 명이 터트리는 환호는 장관이었다. 스트리밍 시대에서 생길 수 있는 또다른 추억이었다.

일주일 동안 4관문이 무너지지 않을 때는 정말 어둠군단에 가입하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4관문이 무너지지 않을 때는 정말 어둠군단에 가입하고 싶었다

카멘 레이드가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어려운 레이드가 유행을 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 어려우면 부작용도 분명 있고, 앞으로도 많은 유저가 레이드를 경험하려면 쉬운 레이드가 기반에 있어야 한다. 

로스트아크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금강선 디렉터는 "직접 게임하는 유저 입장에서, 카멘을 기점으로 난이도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면 게임의 미래가 마냥 밝진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난이도 설정에 진지한 고민을 더할 것을 예고했다.

카멘 레이드 같은 콘텐츠는 이례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귀한 도전을 통해 수많은 유저가 잊고 있었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MMORPG를 사랑해온 이유를 환기해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27일 현재, 카멘 레이드를 클리어한 3개 공대 중 스트리머 공대는 2곳이다. 영상으로 남긴 그들의 클리어 순간은 공통점이 있다. 울고 있었다. 

누군가는 뭘 게임하다가 울기까지 하느냐며 조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흘 이상 걸린 저 여정을 함께 지켜본 이들이라면,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반드시 저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많은 동료와 하나가 되어 압도적인 적을 공략하는 것, 모든 것을 바쳐 도전한 끝에 끝끝내 이뤄내는 것은 말로 풀어낼 수 없는 감정을 불러온다. 그 감정이 바로 우리가 MMORPG를 끊임 없이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멈추지 않고 싸워 결국 낭만을 이뤄낸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도 공략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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