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 대형 무장 헬리콥터, 의도적으로 공중 전투 유도해
프롬 소프트웨어 특유의 튜토리얼... 악랄함 뒤에 따뜻함 돋보여

[게임플]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 신명기 32장 11절

사자, 혹은 독수리가 혹독한 야생의 삶을 견딜 수 있을지를 시험하기 위해 자식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 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프롬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큰까마귀(Raven)’를 키우기 위해 이들은 시련을 준비했다. 살아남기 위해, 큰까마귀는 날아야 한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최신작 ‘아머드 코어 6: 루비콘의 화염(이하 아머드 코어)’을 주말 사이 짧게나마 즐겼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플레이 시간이 짧았던 것과 부족한 게임 실력으로 상당한 시간을 도입부에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원통할 따름이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 대해 말만 많이 들었을 뿐, 직접 해본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변명처럼 던져본다.

하지만 칸트의 말마따나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다. 그렇게 몇 차례 주인공의 기체가 폭발과 함께 맥 없이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게임의 도입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다분히 고의적으로 배치된 ‘비상(飛上)을 위한 시련’이었다.

◼︎ 날지 못하는 이에게 죽음을, ‘플라잉 군다’가 선사하는 시련

일말의 맥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짧은 시네마틱이 지나면, 간단한 조작 방식에 대한 안내와 함께 게임이 시작된다. 낮은 사양의 PC였지만 상당한 수준의 최적화와 괜찮은 조작감을 자랑했다. W, A, S, D로 이동, 마우스로 조준 및 공격, 스페이스 바와 시프트, 컨트롤 키로 추가 조작. 키세팅 역시 직관적이다.

시작은 좋았다. ‘루비콘 3’에 밀항한 주인공 ‘621’은 쓰러진 AC 기체에서 자신을 대체할 신분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그가 새로운 신분 ‘레이븐’을 얻는 바로 그 시점부터, 본격적인 시련이 찾아온다.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대형 무장 헬리콥터가 주인공을 공격한다. 전방에 배치된 개틀링건과 로켓 발사기, 그리고 양 날개로부터 날아오는 폭격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반대로 주인공이 쓸 수 있는 무기는 오른손의 어썰트 라이플 한 자루, 그리고 오른 어깨의 4연장 미사일 런처, 그리고 왼손의 펄스 블레이드뿐이다.

처음에는 적의 매서운 공격을 곳곳에 배치된 장애물로 숨으면서 상당한 난이도를 실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프롬식 튜토리얼’이구나”하고 감탄하던 사이, 감아서 날아오는 폭격에 휘말려 폭사했다. 곧이어 바로 이어진 두 번째 도전에선 퀵 부스터로 빠르게 폭격을 피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죽었더니, 공중에서 폭격을 피하라는 가이드가 튀어나왔다. 임무를 지시하던 ‘핸들러 월터’도 했던 말이다. 그제야 공략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장애물에 숨어 교전하면 날아오는 폭격에 대처하기도 힘들고, 왼손에 달린 펄스 블레이드는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개틀링건에 맞아 벌집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적 기체에 다가가 일격을 먹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날아야 한다.”

전략을 바꿔 이번엔 활짝 열린 개활지(開豁地)에서 교전을 시작했다. 앞에서 발사되는 로켓은 좌우 퀵 부스트로, 쏟아지는 폭격은 공중 기동으로 피했다. 그렇게 서서히 적에게 다가가 기체의 밑을 잡았고, 위로 빠르게 치솟아 펄스 블레이드 일격을 가했다. 예상을 벗어난 피해량에 취해 무턱대고 날아 들어갔다가 정면에서 발포된 로켓에 맞아 불나방처럼 산화했다.

가능성을 보고 나니, 짧은 시간이나마 새로운 감각이 열린 느낌이었다. 바로 이어진 도전에서 좌우로 날아오는 폭격을 모두 피하고, 스태거 상태에 빠진 적에게 빠르게 치고 들어가 펄스 블레이드를 찔러 넣었을 때의 손맛이 강렬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공격 끝에 내 기체 아닌 것이 폭발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공략을 알고 나니, 전투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이 났다.

◼︎ “환불하지 않은 이들에게 전하는 찬사”, 프롬 소프트웨어의 ‘당근과 채찍’

그동안 프롬 소프트웨어의 작품 속에서 전투는 대부분 지상에서 이뤄졌다. 적들이 아무리 날아다녀도, 유저의 캐릭터는 늘 두 발로 땅을 디딘 채 싸워왔다. 그런데 ‘아머드 코어’ 시리즈는 다르다. 교전의 범위가 창공으로까지 확장됐다.

이번 작품의 도입부는 의도적으로 적을 비행형으로 배치하고, 지상에선 쉬이 피하기 힘든 패턴을 선보이며, 유저에게 굳이 근접 무기를 쥐여준다. 지상에서 펼쳐지던 전투는 잊고, 아머드 코어식 공중전에 익숙해지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폭격은 기존 전투의 때를 벗기는 물줄기다.

이렇듯 의도적으로 도입부에 강한 적을 세우는 것은 비단 아머드 코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저들은 도입부의 헬리콥터를 두고 ‘다크소울 3’의 첫 보스 ‘재의 심판자, 군다’에 빗대어 ‘플라잉 군다’라고 부른다. 이후 ‘엘든 링’에서도 ‘트리 가드’를 통해 오픈 월드의 활용법을 전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것이 프롬 소프트웨어만의 튜토리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이 불친절한 게 아니다. 오히려 도입부를 마친 이들에게는 한 없이 따스하다. 제대로 구현된 튜토리얼과 함께, 주인공의 조종 실력을 칭찬하고 낮은 난도에서 적들을 무찌르는 쾌감을 선사하는 임무 구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도입부의 모든 시련을 극복한 이들에게 허락된 찬사인 셈이다.

게임을 더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게임의 도입부에서 분명히 아머드 코어 시리즈를 처음 입문하는 이들에게 공중 기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설계가 돋보였다. 게임 외부의 가이드가 아니라 내부의 플레이로 그 핵심을 파악하게 만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노련미에 탄성을 내뱉었다. 앞으로 진행될 게임플레이가 더욱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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