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비포 더 던'으로 많은 관심 받아... 스팀 출시 위해 '르모어' 이름 채택
가급적 피해야 하는 힘든 전투, 어두운 분위기와 어려운 난이도 어우러져

[게임플] 르모어의 사람들에게 구원은 허울 좋은 이상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종말 앞에서 고작 몇 시간, 또는 며칠을 숨이 붙은 채로 이어가는 것이 이들에게 허락된 전부다.

블랙앵커 스튜디오가 개발한 ‘르모어: 인페스티드 킹덤(이하 르모어)’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국내에서는 ‘비포 더 던’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2020년 부산 인디커넥트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던 게임은 스팀 글로벌 출시를 위해 르모어라는 이름을 택했다.

게임의 시연 기회를 얻어 데모 버전을 체험했다. 난이도는 기본 난이도인 ‘고통’ 난이도로 게임을 진행했다. 돌아보니 이해가 되는 이름이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고통을 야기하는 게임이었다.

때는 중세 시대, 르모어라는 왕국에 느닷없는 재앙이 닥쳤다. 균열이 열리면서 하늘은 빛을 잃었고, 흉측한 외형의 괴물들이 나타나 왕국의 사람들을 학살했다. 살아남은 이들을 규합하고, 아직 썩지 않은 식량과 자원을 모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앙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문 뒤엔 무엇이 숨어있을지 결코 알 수 없다.
문 뒤엔 무엇이 숨어있을지 결코 알 수 없다.

게임은 SRPG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어진 턴 동안 맵을 수색해 자원을 모으고,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화면엔 전장의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캐릭터의 주변 밖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여기서 하나 주의해야 하는 점이 있다. 전투가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르모어의 전투는 치명적이다. 어느 양산형 게임의 광고처럼 차근차근 적들을 무찌르며 성장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스테이지마다 많은 수의 적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싸우기 좋게 산개해 있지 않다. 자원을 얻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군집한 적들을 만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적의 시야 범위 안에 캐릭터가 들어가거나, 공격을 받으면 적은 크게 포효해 동료를 모은다. 자기 턴도 아닌데 적들은 우르르 몰려와 캐릭터를 둘러싸고 붙잡는다. 붙잡힌 캐릭터는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사투가 벌어지는데, 우리의 캐릭터는 한없이 현실적인 존재다. 무기엔 내구도가 있어 끊임없이 싸울 수도 없고, 둘러싸인 적들에게 몇 대만 맞아도 빈사 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한 명의 동료라도 죽으면 스테이지에서 패배한다.

그렇기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 닫힌 문 너머에 있을 적들을 경계해야 하고, 적을 발견했을 땐 시야 방향을 확인해 최대한 교전을 피해야 한다. 게임을 하다 보면 전장의 안개 너머에서 다가오는 적들에 공포감을 느끼고, 적의 턴엔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기도하게 된다.

방패로 반격하는 스킬을 가진 '윌리엄' 뒤에 지원 공격이 가능한 '에드윈'을 배치하면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방패로 반격하는 스킬을 가진 '윌리엄' 뒤에 지원 공격이 가능한 '에드윈'을 배치하면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만약 피할 수 없는 교전이라면,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맵에 배치된 벽과 장애물을 통해 전략적으로 싸우고, 캐릭터의 특성과 장비도 활용해야 한다. 무기엔 사용가능한 스킬 두 개가 배정되어 있고, 성장을 통해 캐릭터가 배울 수 있는 스킬도 있다. 아군의 빈사 상태를 해제하는 붕대와 낙오된 동료를 당겨올 수 있는 갈고리 같은 소비 아이템도 있지만 그 수가 제한적이다.

고된 임무를 마치면 안식처로 돌아온다. 스테이지에서 모은 식량과 자원으로 끼니를 때우고 장비를 정비할 수도 있다. 식사는 체력을 회복시키고, 특정한 음식은 유용한 효과를 부여한다. 대장장이에게선 장비를 강화하고, 내구도를 수리할 수 있다. 전투로 쌓인 경험치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도 있다.

안식처에선 캐릭터 간의 잔잔한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안식처에선 캐릭터 간의 잔잔한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정비를 마친 이들은 다시 생존을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번 데모에선 세 번째 스테이지까지 진행했는데, 마지막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또 기도했다. 실수하고, 운이 안 먹히면 어김없이 화면엔 붉은 글씨가 차올랐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불합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SRPG는 이렇게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매력인 장르다. 운이 작용하지만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부분일 뿐, 중요한 것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래서 고통스럽게 어려운 구간을 이겨냈을 때의 성취감은 값졌다.

다만 게임 전반적으로 페이스가 느린 부분은 아쉬웠다. 적에게 발각됐을 때 적들이 몰려오는 데 적들이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오는 걸 지켜봐야 한다. 무서운 건 적들에게 발각되는 순간이지, 이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아니다. 이런 구간은 빨리 넘길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해 보였다.

게임 도중 실수로 인해 도저히 승산이 없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는데, 이때 게임을 다시 진행하는 방법은 캐릭터가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캐릭터가 죽어야만 스테이지가 끝나는 구조는 아쉽다. 선택의 무게를 주는 방향성은 이해가 되지만,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시도할 기회도 필요하다.

죽었다...!
악! 이건 정말 아프다! 죽었다...

비포 더 던으로 국내에 공개됐을 때도 깊이 있는 전략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었는데, 그런 평가가 아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어두운 분위기와 상당한 난이도가 잘 어우러졌고, 신중히 전략을 구상해 임무에 도전하는 과정은 잘 만들어진 퍼즐을 맞춰가는 인상을 줬다. ‘파이어 엠블렘’ 같은 SRPG 장르나 ‘다키스트 던전’ 같은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정식 출시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르모어는 2023년 하반기 스팀을 통해 글로벌 얼리 엑세스로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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