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영역은 이미 적극 활용... 창작 영역도 '가장 낮은 곳'부터 침투
표현과 즐거움을 향한 연구로 차세대 '창작 도구' 만들어야

[게임플] "앞으로 내 일자리는 무사할까?"

IT 업계의 대화 자리마다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뉴스에서 연일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을 말하고, 챗GPT의 사용 확대와 악용 사례가 오르내린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제 놀랍지 않다.

그중 가장 불안에 떠는 곳은 게임계다. 게임은 각 분야의 창작이 모여 완성된다. 지금 그림, 글, 영상, 음악, 프로그래밍까지 모든 분야에서 AI의 '작품'이 쏟아진다. 업계 최고급 실력자들을 제외하면 턱 밑까지 추격당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기자 역시 이런 의문에서 안전한 직업이 아니다.

최근 만난 한 게임사 홍보 관계자는 "팀내에서 시험 삼아 AI로 제작해본 보도자료가 몇 초 만에 깔끔하게 나와 소름이 돋았다"면서 "아직은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가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체적으로 인간 파이는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4월 AI 흔적이 무수히 발견되어 논란을 빚은 레이아크 일러스트 중 하나
4월 AI 흔적이 무수히 발견되어 논란을 빚은 레이아크 일러스트 중 하나

특히 중국 게임계는 일러스트레이터 직종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외주 아트를 쓰던 중소형 업체들이 작업 다수를 AI로 대체했고, 저렴한 가격에 리터칭 업무만 구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하기 시작한 것. 한 외신은 남미에서 AI 목소리 사용이 활발해지며 성우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대만 게임사 레이아크도 최근 AI 사용으로 도마에 올랐다. 지난 4월 업데이트부터 AI가 그린 일러스트를 게임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뭉개진 손가락이나 뒤틀린 액세서리처럼 단박에 발견되는 오류가 다수 나타났다. 

"아트 팀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AI로 채운 것 아니냐"는 루머도 돌았고, 이런 추측은 레이아크가 입장문을 통해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러나 한때 아트워크가 강점인 업체였기에, AI 그림에서 흔히 나오는 기본적 오류마저 검수나 리터칭 없이 그대로 내놓는 등의 퀄리티 저하는 여전히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AI 일자리 대체는 가장 약한 지반부터 침투한다는 점이 공포를 더한다. 프리랜서나 소형 업체의 간단 업무 담당 등, 창작 프로세스의 최하 먹이사슬부터 피해를 입는 것. 게임계의 고질적 문제로 떠오른 '양극화'가, AI 발전으로 인해 더욱 극단적인 속도로 심화될 가능성은 높다.

지난 3월 열린 GDC 2023도 사실상 인공지능 기술 경연장이었다
지난 3월 열린 GDC 2023도 사실상 인공지능 기술 경연장이었다

게임사에서 기술 분야는 이미 AI 연구와 사용이 활발하다.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크래프톤 등 국내 게임사들은 오래 전부터 수백 명 단위의 전문 연구진으로 별도의 AI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개발과 운영에서 AI의 도움을 받고 있다. 

부정행위 탐지, 노매너 채팅 적발, 밸런스 조정, 외형 인식 모델링, NPC 행동패턴 설정 등이 대표적으로 AI가 적극 활용되는 작업이다. 특히 엔씨는 야구 하이라이트 영상이나 일기예보 등 업계 바깥에도 AI 제작 콘텐츠를 사업적으로 공급한 바 있다.

다만 기술과 창작 분야는 온도가 다르다. 순수 AI 제작 작품을 게임에 그대로 쓰는 일은 신중한 분위기다. 아직은 고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질 만큼 패턴이 다양하게 발전하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 오랜 기간 구성한 인재 풀을 성급히 해체했다가, 만일 AI 작품들의 발전이 부진할 경우 내부 근간만 무너지게 된다는 이유다.

망설이게 되는 이유 중 저작권 문제도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저작권 등록 자격을 인간의 창의성이 들어간 것에 국한한다. 이 제한이 완화될 가능성은 AI 창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더욱 희박해졌다.

게임에서 AI를 사용한다 해도, 인간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된 위험 요소들이 가까운 시일 내 해결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거기에 AI를 추가해 볼륨을 늘리거나 개발 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에 더욱 기대가 모인다.

AI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와 연출로 호평을 받은 디제이맥스 신곡 'Stay Alive'
AI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와 연출로 호평을 받은 디제이맥스 신곡 'Stay Alive'

AI를 더 저렴한 가격과 시간으로 때우기 위해 쓴다면 발전이 없다. 인간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돕는 도구로서 쓴다면, AI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생성현 AI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반면 그런 AI를 통한 게임 표현법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만한 아이디어는 조금씩 보인다. 촬영 사진을 인식해 그 유저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주거나, 서브 NPC들과의 대화를 더 풍성하게 넣거나, 유저 행동에 어울리는 음악을 감지해주는 등 참신한 표현 수단이 나오고 있다.

AI 자체가 신선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의 신곡 중 하나인 'Stay Alive'는 BGA(백그라운드 애니메이션)를 AI로 제작했다. 역대 시리즈 중 최초다. 하지만 레이아크와 달리 유저들의 항의가 없었고, 오히려 호평이 우세했다.

곡과 영상의 테마가 미래 기술 속 생존의 불안감을 표현하며, 이를 위해 AI 툴만이 줄 수 있는 부자연스럽고 섬뜩한 변화 연출을 활용했기 때문. 그런 취지를 사전 발표 방송에서부터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AI 작품의 긍정적 사례를 만든 것이다.

일자리 중 어느 정도가 AI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게임은 종합예술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수많은 리소스를 조합해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은 앞으로도 인간의 감성과 판단으로 진행될 것이다. 개발사 전체의 예술적 감각, 기획자들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AI도 '게이미피케이션'이 중요해졌다. 어떻게 더욱 많은 즐거움을 줄 것인지, 더 신선한 감동으로 표현해낼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 기술뿐 아니라 예술에 대해서도 전방위적 연구가 필요하다. AI는 분명 창작인들을 침략할 수도 있는 위협 요소다. 하지만 훌륭한 차세대 창작 도구가 될 잠재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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