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하고 힘 없는 호라드림... 찾을 수 없는 천상의 계시
이제 남은 자녀들 중 성역을 구할 자는 누구인가?

[게임플] 이번 디아블로 4 이야기는 어느 때보다 가장 무겁고 침울한 이유가 있다. 바로 하나의 반복되는 이야기인 '침묵과 부재'라는 플롯 때문이다.

이번 디아블로 4에는 중요한 네 가지 관계가 있다. 첫 번째는 처음 등장하는 네이렐과 로라스, 2막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도난과 그의 아들 요린 그리고 이나리우스와 천상 그와 대치되는 릴리트와 메피스토의 관계다.

지금까지 성역을 지키는 역할을 자처한 호라드림과 기사단, 그의 후원자인 천상의 천사는 무능력하거나 부재한다. 일례로 캠페인 중 네이렐은 끝없이 로라스에게 질문하지만, 그는 ‘잘 모르겠다’와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 아래 내용은 '디아블로 4' 스토리 관련 대형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이렐은 디아블로 3에서 레아와 비슷한 역할로 호라드림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다. 로라스와 네이렐의 관계는 케인과 레아의 관계와 같다. 특히 초반부 네이렐의 어머니 베나드의 죽음 이후 로라스는 아버지의 위치를 자처하며 그녀를 지키려 한다.

이런 관계의 형태는 로라스의 친구이자 한때 호라드림이었던 새로운 인물 도난과 그의 아들 요린에게서도 반복된다. 요린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성역을 지키는 기사단이 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세 명이 오리라' 시네마틱에서 릴리트를 부활시키는 인물 엘리아스에 의해 머리에 악마의 영혼석이 박히게 된다. 도난은 자기 자녀가 악마로 변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무능력한 아버지와 그에 희생되는 자녀’라는 플롯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시작을 함께한 플롯이다. 해골 왕 레오릭은 한때 현명한 왕이었지만 메피스토에 의해 타락하고 두 아들을 모두 잃는다. 그 유명한 아이단 왕자는 디아블로가 되며 최후를 맞이했다.

데커드 케인은 죽었고 티리엘은 보이지 않는다. 로라스 나르는 함께 방황하고 있다. 호라드림의 나침반 티리엘이 없기에 그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천상의 천사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악마의 간교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랑자만이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초반부 방랑자를 도와주는 늑대는 메피스토의 분신으로 막이 종료될 때까지 자신의 딸 릴리트를 막기 위해 방랑자를 교란한다. 릴리트는 자신의 아버지 메피스토의 힘을 흡수하고 천상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다.  

오랜 과거, 천사와 악마가 성역에서 죄악의 전쟁을 치를 때 ‘울디시안’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성역을 구했다. 울디시안은 본디 평범한 농부였으나 릴리트가 변장한 ‘릴리아’라는 여인에 의해 자신의 잠재력을 알게 된다.

네팔렘의 힘을 모두 깨우친 그는 성역을 위협하는 이나리우스와 디아블로를 모두 물리치고 죄악의 전쟁을 종결시켰다. 하지만 그 힘으로 성역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였고 성역은 존속될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성역의 실질적 아버지라고 볼 수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외전 소설 '죄악의 전쟁'에서 울디시안은 “우리의 삶은 우리가 다스려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천부의 권리이다!”라고 말한다.

이후 티리엘은 울디시안의 희생에 감명받아 인간 스스로 자신과 성역을 지킬 수 있을 거라 판단한다. 앙기리스 의회에서 인류의 존속에 표를 던진 티리엘은 성역에 호라드림을 창설했다. 

디아블로 4에는 지금껏 성역을 지탱해온 이런 울디시안의 의지, 즉 실질적 아버지의 유산이 모두 사라졌다. 그 사실은 릴리트의 대사 “죄악은 타고난 권리다”에서 알 수 있다. 티리엘의 부재와 호라드림의 무력감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나리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지옥에 나타나 릴리트와 악마들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허무하게 릴리트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천상으로의 복귀를 간청하며 울부짖지만, 천상은 침묵하며 부재한다.

릴리트는 증오의 대성당으로 진군한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려 하지만 방랑자에 의해 저지당한다. 방랑자는 릴리트를 처치하고 산화하는 꽃잎을 바라본다. 이때 방랑자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메피스토의 계략은 이미 방랑자와 그의 동료 네이렐에게 닿았다. 네이렐은 메피스토의 영혼석을 들고 도망쳤고 로라스는 무능력하게 이를 뒤늦게 알아챈다.

이런 성역의 위기에 대답하고 있는 인물이 마땅히 없는 상황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방랑자는 홀연히 성역의 어딘가로 떠나게 될 뿐이다.

확장팩에서 이어질 이야기의 진행 방향이 어디로 흐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디아블로의 풀리지 않은 성역과 등장하지 않은 인물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이제 성역의 부모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남은 자녀들이 다시 스스로 위기에서 일어설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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