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세계관 완성 위해 광기에 가깝게 배치한 이야기 파편들
취향 갈릴 요소 있지만, 서브컬처 중 독보적 위치의 디테일과 감성

[게임플] 방대한 우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기본 입자가 필요하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거대 스케일 구축의 첫 단계는 디테일이다.

호요버스가 '붕괴: 스타레일(이하 스타레일)'을 4월 26일 글로벌 출시했다. 자사 대표 IP '붕괴'를 기반으로 한 수집형 RPG다. '붕괴: 3rd'와는 평행우주 관계로, 유저는 주인공 '개척자'가 되어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스타레일'은 붕괴 세계관을 사용했지만 '원신'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전작 원신이 게임계 역사를 다시 쓰는 흥행을 글로벌에서 터트렸기 때문. 그 흥행은 현재진행형이며, 호요버스의 존재감을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역할을 했다.

매출과 유저 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만큼, 스타레일과 '젠레스 존 제로' 등 후속작을 향한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스타레일의 글로벌 사전예약 1천만 돌파는 그 기대치를 반영하는 숫자였다. 게임계와 거대 팬덤의 눈이 은하열차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타레일이 가진 최대 특징은 '턴제 전투'다. 호요버스가 처음 시도하는 시스템이고, 실시간 액션에 비해 비교적 수요층이 적기도 하다. JRPG에서 자주 보이는 파티 속성에 따른 턴제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트렌드에 맞출 것인가도 관심사였다. 

원신 경험 유저라면 "아 그거구나"라고 바로 알게 되는 성장 메뉴들
원신 경험 유저라면 "아 그거구나"라고 바로 알게 되는 성장 메뉴들

원신이 미친 영향은 호요버스 자신들에게도 닿아 있다. 스타레일의 캐릭터 모델링과 전반적 게임 시스템은 원신과 매우 흡사하다. UI/UX 역시 원신을 기반으로 조금씩 개편한 버전을 게임 전체에서 선보이고 있다. 

광추는 무기, 유물은 성유물, 행적은 특성. 망각의 정원은 나선비경. 원신을 플레이해본 유저에게 한 단어 설명만으로 모든 성장 시스템을 이해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성장 콘텐츠와 BM의 기본 틀도 같기 때문에 '붕괴: 3rd'보다 '원신'을 계승했다는 느낌이 더욱 진하다. 그만큼 검증된 구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 호요버스 게임에서 보지 못한 콘텐츠는 시뮬레이션 우주가 있다. 바로 최근 수집형 RPG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로그라이크 덱빌딩 콘텐츠다. 아직 변수가 다양하지 않아 전문 덱빌딩 게임 수준을 기대했다면 몇회차 만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비슷한 장르 게임들의 시도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다. 

원신보다도 부담이 덜해 보이는 과금 구조는 장점이다. 메인 스토리 진행만으로 합류하는 무료 캐릭터가 더 많고, 쓰임새도 더 크다. 주인공 '개척자'를 비롯해 Mar. 7th, 단항, 아스타, 나타샤, 서벌 등 4성 배포 캐릭터만으로 파티를 짜도 난관이 될 부분은 전혀 없다. 

전투는 호요버스 게임 중 이례적으로 오토를 지원한다. 턴제 전투가 오직 수동이었다면 모바일 환경에서 지루함이 컸을 것이다. 오토의 성능이 똑똑하진 않지만, 일일 반복 콘텐츠를 수행하는 목적으로는 충분히 유용하다.

전투가 아직까지 다채로운 것은 아니다. 캐릭터마다 한 턴에 고를 수 있는 커맨드는 일반 공격과 전투 기술, 필살기까지 셋 중 하나다. 이것 역시 원신과 비슷하지만 턴제 선택인 만큼 행동 자유도가 더욱 제약되는 느낌은 든다. 

초기 전투는 '페르소나'나 '영웅전설' 궤적 시리즈 등 유명 JRPG의 장점을 취합하고, 거기서 조금 더 간략화한 형태로 요약된다. 간략화 가운데 속도 개념, 약점 공략, 캐릭터별 속성과 역할군, 전술자원 활용 등 트렌디한 시스템은 갖췄지만 전투 도중 변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턴제 마니아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만하다. 다만 모바일 환경과 대중성을 고려하면 복잡함을 피한 선택이 맞아들어갈 수도 있다. 또 원신 역시 출시 초기는 조합 다양성이 적다는 평가를 받은 만큼, 앞으로 업데이트로 전투 볼륨을 점차 채워나갈 것인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스타레일이 마치 원신 요소 대부분을 차용하고 단순한 턴제 전투를 얹은 평범한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를 계속 진행할수록 다른 답이 나온다. 이 게임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은 수집형 RPG 가운데 아주 희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개척자와 동료들은 여러 행성을 워프로 넘나들고, 세계를 침식시키는 기현상 '스텔라론'을 해결하면서 여행을 계속한다. 우주정거장 헤르타에서 시작해 한파 속 도시 '벨로보그', 동양풍 거대 우주선 '나부' 등 각기 개성적인 문화를 가진 지역에서 핵심 여정이 펼쳐진다. 

쓰레기통 한번 눌러봤다가 별 일을 다 본다
쓰레기통 한번 눌러봤다가 별 일을 다 본다

메인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특히 뇌리에 박히는 것은 맵을 돌아다니며 겪는 서브 스토리와 자투리 문서들이다. 어느 지역을 가도 숨겨진 문서들이 있고, 거대 세계관에 얽힌 이야기부터 그곳을 살아가던 사람이 남긴 작은 편지까지 읽는 맛이 있다. 

서브 퀘스트는 호요버스 전작들보다도 풍성하다. 하나하나가 SF 단편 소설처럼 별개의 뚜렷한 스토리를 가진다. 각 인물마다 밀도 높게 조명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재미도 크다. 감성과 소재만 따지면 아서 클라크나 테드 창 소설의 오마주가 아닐까 싶은 경우가 종종 있다.

헤르타에서 발견하는 기억 거품처럼 사소해 보이는 발견물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숨긴다. 심지어 호텔 옷장을 눌러봤다가 선택지에 따라 웬 콩트 한 편을 감상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밖에 차원을 넘어 갈린 만남, 의식을 옮겨 넣은 기계인형 등 SF나 사이버펑크에서 자주 만나는 딜레마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선택을 해도 지장은 없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지는 재미는 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지장은 없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지는 재미는 있다

가벼운 내용도 있지만 때때로 무거운 가치관 대립과 복잡한 선택지를 만나곤 한다. 온갖 신비로운 이야기가 난립하면서 대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디스코 엘리시움'이 연상되는 감성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선택지별 상호작용 변화가 존재하지 않아 깊이의 차이는 나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들도 월드 속에서 움직이며 세계가 실제로 살아 숨쉬는 감정을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원신처럼 점프나 벽 타기 등의 모험 상호작용은 없지만, 대신 지역별 디테일을 살리는 데 집중한 흔적이 엿보인다. 

수많은 곳들에서 배경과 인물과 이야기가 모여 거대한 은하가 완성되는 구조다. 구성하기가 어렵지만, 지독할 정도 곳곳에 심어둔 디테일로 인해 탐험의 재미는 전작들 이상으로 살아난다. 자칫 마니악할 수도 있는 SF 배경의 서브컬처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무겁고 신비롭게 풀어내고 있다. 

서브컬처 감성에 맞는 캐릭터 디자인과 관계도 놓치지 않는다
서브컬처 감성에 맞는 캐릭터 디자인과 관계도 놓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개선하길 빈다. 튜토리얼이 지나치게 재미가 없다. 

초심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도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 모험과 전투 흐름 역시 단조롭다. 두 시간 정도 플레이를 거치고 나면 스타레일만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최근 모바일 트렌드에서 아주 긴 시간장벽이다. 호요버스라는 이름값이 없었다면 자칫 위험했을 수 있는 단점이다.

또, 스타레일이야말로 대화 로그나 스토리 다시보기가 절실히 필요한 게임이다. 서브 퀘스트에도 기승전결과 복선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은데, 문서 아이템이 없는 텍스트는 다시 읽을 방법이 없다. 

패러디와 오마주도 곳곳에 퍼트려뒀다
패러디와 오마주도 곳곳에 퍼트려뒀다

원신이 취향 차이 없이 두루두루 편하게 진입할 게임이라면, 스타레일은 다소 취향이 갈릴 유형이다. 다만 그 취향이 맞다면 원신 이상으로 빠져들 파괴력을 함께 지녔다. 어쩌면 이미 큰 팬덤을 확보한 호요버스이기에 가능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SF, 텍스트, 턴제. 셋 중 하나 이상을 좋아한다면 진득하게 플레이를 시작해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다시 말하지만, 방대한 스케일은 가장 작은 디테일부터 시작한다. '붕괴: 스타레일'은 분명 그 법칙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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