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운과 변수, 그러나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게임플] 올해도 KBO 시즌이 개막했다. 팬들의 감정이 함께 요동치는 시기다.

야구는 10개 구단이 참여해 10개 구단 팬들이 슬퍼지는 스포츠다. 빨리 경기를 보고 싶어 개막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도, 불과 개막 며칠 뒤 "왜 이 팀은 아직도 해체하지 않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비속어와 함께 표현하는 것이 일상이다. 짜릿한 승리의 기억도 많지만, 패배에서 얻는 분노가 더 오래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야구를 쉽게 놓지 못한다. WBC 부진에도 11년 만에 전 구장이 매진되는 개막전을 치렀다. 수많은 인기 스포츠 가운데서도, 일단 재미를 붙이면 가장 관심을 끊기 어려운 종목으로 꼽힌다. 

야구 개막을 피부로 느끼는 계층은 또 있다. 바로 게이머들이다. 야구 게임들은 3월 말과 4월 초 일제히 대형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컴투스와 넷마블, 그리고 매니지먼트 장르의 엔씨소프트가 경쟁을 펼친다. 이곳 역시 하나의 치열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야구를 즐기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구장에 매번 찾아가 치킨을 먹으며 응원가를 부르거나, 할 일을 따로 하면서 틀어둔 인터넷 중계를 곁눈으로 보는 팬도 있다. 야구를 보진 않지만 야구 게임은 꾸준히 즐기는 부류도 있고,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모든 경기 결과와 내용을 살펴보는 진성 '마니아'들도 있다.

다만 야구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실시간' 스포츠와 다른 야구만의 특성에서 나온다. 야구는 스포츠인 동시에, 비디오 게임과 비슷한 결을 그리는 확률과 통계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양팀은 한 경기에 아홉 번의 공격 턴을 가지며, 아웃이 3회 쌓이면 한 턴이 끝난다. 여기에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턴제 승부다. 페어 타구로 인플레이 상황이 나왔을 때, 혹은 주자에 견제구를 던질 때처럼 특정 순간에만 리얼타임 승부가 적용된다. 

턴제 대전 게임은 모두 어느 정도의 운이 첨가된다. 타율이 3할만 넘으면 좋은 타격이라고 평가된다. 이정후처럼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타석의 절반 이상은 아웃이다. 반면, 약한 타자의 상징인 2할 타율도 10회 중 2회 정도는 결정적인 안타를 쳐줄 확률이 있다는 의미다. 

어떤 의미에선 가장 야구와 닮은 게임
어떤 의미에선 가장 야구와 닮은 게임

비디오 게임들도 대전할 때 실력이 중요하지만, 턴제를 기반으로 할 때는 역시 운 비중이 커진다. 시간을 다투지 않으므로 실력만으로 승부를 정하면 변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운이 존재하되, '확률을 올리는 선택'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실력의 기준이 된다. 

'하스스톤' 같은 카드 대전게임이 대표적이다. 카드 드로우, 생성, 효과, 대상 등 모든 방면에서 무작위가 가득해 '운빨 게임'이라는 자조가 유저 사이에서 흔히 나온다. 하지만 결국 많은 판을 거듭할수록 상위 유저, 우승 선수는 실력으로 결정된다. 

50%로 나뉘는 운이라도, 플레이를 통해 55%나 그 이상으로 올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RPG들도 스킬 하나가 치명타로 터지느냐 아니냐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은 강한 스펙이나 실력을 가진 유저가 더욱 많이 이길 수밖에 없다. 

게임과 야구와 야구게임을 모두 잡는 희귀한 사례
게임과 야구와 야구게임을 모두 잡는 희귀한 사례

야구 역시 순수하게 운 때문에 이기거나 지는 게임도 분명 존재한다. 노아웃 만루에서 타석에 선 리그 최강 타자가 완벽하게 때린 공이, 3루수 글러브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삼중살을 당하며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반면 실력이 낮은 타자가 겨우 갖다 댄 타구가 절묘한 곳에 떨어지면서 끝내기 안타가 되기도 한다. 

야구는 무한한 변수로 가득하다. KBO에서 아무리 역대 최고 강팀이라도 리그 승률 7할이 되지 않고, 아무리 약팀이라도 보통은 승률 3할을 넘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약팀이 최강팀에게 승리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실력에 따른 결과물은 정확하게 나온다. 144경기라는 거대한 표본이 더해지면서 점차 강팀은 위로, 약팀은 아래로 나뉘게 된다. 확률이 중요한 게임은 결국 '표본'으로 정리된다.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인 이유도 그 미세한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다. 세이버매트릭스에 각종 수학적 분석을 적용하고, 최적의 로테이션과 타순을 찾아낸다. 그렇게 팀의 승리 확률을 3% 내외만 올릴 수 있다면, 약팀이 강팀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최후에 웃는 것은 결국 실력이라는 것. 단, 오늘 당장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야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일 것이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는 이유도 이런 변수에서 나오는 강렬한 희로애락 때문이다.

야구 게임들이 이벤트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즌이다
야구 게임들이 이벤트에 총력을 기울이는 시즌이다

야구 게임의 화제성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유저 인구와 성적은 아직도 탄탄하다. 컴투스는 올해 야구 게임만으로 글로벌 매출 1,500억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오기도 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살아남은 장르다. 어떤 기기에서도 정교한 방향 조작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선수 운영과 편성, 어느 쪽에 공을 던지고 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중요하다. 조작 간편화가 중요한 시대에 최적이다. 대전, 육성, 방치형, 매니지먼트까지 가볍게 즐기기 위한 게임 장르도 분화된다. 

야구에 한번 빠져들었다면, 게임과 미디어에서 야구는 항상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재미와 변수를 느낄 수 있다. 야구가 '인생'에 비유되는 이유가 이런 변수에서 나오는 강렬한 희로애락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에도 매일 셀 수도 없는 변수가 스쳐 지나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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