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아크'에 이어 '메이플스토리'... 그 남자가 게임을 지휘하는 법

[게임플] "게임음악만의 최고 예술성은, 지극히 개인의 경험을 투영한다는 거죠"

'안두현', 2022년 게이머들에게 갑자기 날아와 각인된 이름입니다. 게임 개발자도 게임계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오케스트라 지휘자입니다. 

차이콥스키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10여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지휘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82년생 젊은 나이지만 벌써부터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더욱 친숙하게 알리기 위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한 활동 역시 쉬지 않고 있죠.

지난 6월, 로스트아크 콘서트 '디어 프렌즈'는 그가 처음 실연한 게임음악 공연입니다. 레이드 보스 패턴도 한 수 접을 만큼 격렬하고 열정적인 지휘를 선보이면서 '지휘군단장'과 같은 별명이 붙으며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안두현 지휘자가 다음으로 뛰어든 게임 세계는 '메이플스토리'입니다. 순서는 늦었지만, 사실 작년부터 참여가 계획되어 있던 공연입니다. 7월 시작된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는 무려 전국 투어 공연으로 유저들을 찾아왔습니다. 부산과 서울 공연을 마쳤고, 10월부터 투어를 재개할 계획입니다.

"한 가지 게임의 음악을 반드시 지휘할 수 있다면?"이라는 물음에 주저 없이 "언차티드"라고 답하는 진성 콘솔 게이머, 안두현 지휘자와의 대화는 그 내용 자체로 게임과 예술의 만남이었습니다.

안두현 지휘자
안두현 지휘자

 

"게임 같은 미디어 파생 음악이야말로,

현대에 가장 잘 맞는 음악 아닐까요"

Q. 숨가빴던 전국 투어가 한 파트를 끝냈네요. 당분간 휴식기인가요?

정신없이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계속 새로운 음악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8월 한 달은 가능한한 일정을 잡지 않고 좀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Q. 떠오르는 스타 지휘자로서 수많은 일정과 공연 의뢰가 들어올 텐데, 그중 연이어 게임음악 공연에 참여한 계기가 있을까요?

예전부터 영화음악과 같은 다양한 장르 음악 지휘를 해왔는데, 그 경험이 저에게 요청이 들어온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워낙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바쁜 와중에 게임을 거의 못하는 중이었는데, 마치 게임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습니다.


Q. 게임음악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처음인 곡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만큼 공연으로 완성하는 일은 어려워 보입니다. 어떤가요?

게임음악은 무궁무진한 세계입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죠. 게임 스토리나 맵, 배경에 따라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표출할 수 있고요. 다만 말씀하신 대로, 게임음악 중에서는 오케스트라로 연주된 적이 없는 미디(MIDI) 음악이 많아요.

그런 음악들을 공연장에서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높은 집중이 필요합니다. 게임에서 듣던 음악과 실제 소리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간극을 게임유저들이 최소한으로 느끼고 라이브의 장점을 느끼게 하는 과정이 어렵죠.

또 장르가 다른 음악들의 연주가 연달아 펼쳐지는 상황에서, 각 곡마다 색깔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부분이 기존 다른 공연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로스트아크와 메이플스토리, 두 게임의 음악을 경험하고 지휘하는 과정에서 클래식과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클래식은 작곡가의 의식을 근거로 해서 소리로 모든 것을 말하죠. 반면 게임음악은 게임이라는 근원을 토대로 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배경과 스토리, 맵 등 다양한 요인에서 음악이 파생되거든요. 이 점이 가장 큰 차이 같습니다.

당연히 음악을 다루는 방식도 차이가 생깁니다. 게임음악은 음악의 의도를 파악할 때 훨씬 직관적이거든요. 게임 같은 미디어를 통해 파생된 음악이야말로 어쩌면 현대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이 아닐까 합니다.

 

"케이준 소스로 페퍼로니 피자를 만들어낸 방법?

'템포' 변화를 유심히 들어보세요"

Q. 많은 게이머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첫 계기는 역시 로스트아크 콘서트겠죠. 열정적인 지휘로 많은 화제가 됐고, '지휘군단장'이라는 별명과 여러 '짤방'이 탄생하기도 했는데요.

감사한 마음이 가장 컸죠.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클래식 지휘자가 이런 식으로 주목받는 경우가 흔하지 않거든요. 길에서도 알아봐주시고 다가오는 분들이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게임음악에 더욱 진심이 되어 멋진 연주를 해내야겠다는 동기를 얻었습니다.


Q. 아까 '다양한 장르' 이야기가 나왔는데, 메이플스토리가 정확한 예시 같아요. 지역별로 수많은 테마의 곡이 있고 분위기도 제각각이잖아요.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은데요. 특히 표현이 어려웠던 곡이 있었나요?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이지 않은 곡들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게임음악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음악일 때 가장 좋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이걸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작업은, 케이준 소스로 페퍼로니 피자를 만들라고 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Q. 그럼 이렇게 맛있는 페퍼로니 피자를 만들어낸 비결은?

템포의 변화입니다. 어떻게 해도 원곡의 느낌을 살릴 수 없다면,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템포를 다르게 가져가는 거죠.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면 어색한 느낌을 없앨 수 있습니다. 게임 속 템포에 익숙했던 유저분들이 이런 관점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듣는다면 더욱 즐거운 공연이 될 거예요.

Q. 메이플스토리는 곡이 많다 보니 공연 세트리스트도 굉장한데요. 개인적으로 애정이 생긴 곡을 꼽을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도 '일리야드 무어(Illiyard Moor)'가 애착이 가네요. 발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 힐링으로 다가왔습니다. 힘을 빼고 신나게 가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인생의 행복과 닮아 있기도 하거든요. 피아노 연주가 너무나 중요한 음악이었는데, 피아니스트로 참여한 심수현 연주자님이 정말 열심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Q. 메이플스토리 투어의 여러 호평 가운데서도 '꿈의 도시 레헬른' 에서 춤추는 듯한 지휘가 대단했다는 후기가 많더라고요. 지휘 문외한의 시각에서는 그런 퍼포먼스를 어떤 방식으로 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영감을 어디서 받는지도요.

러시아에서 공부를 했는데, 여기가 굉장히 감정에 솔직한 국가거든요. 저 역시도 본능적으로 음악의 감정선을 다이나믹하게 끌고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게임음악 자체가 그런 동작에 맞는 음악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고요.

지휘는 단순히 멋지게 지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작 속에 템포, 악상, 흐름이 다 있어요. 그냥 제 퍼포먼스 개념으로 한다면 오케스트라 단원 전체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의 방향을 잃기 때문이죠.

그것들은 모두 진심으로 음악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나온 동작들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단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감정에 취해 혼자 무아지경에 빠지는 지휘는 지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타일대로 진심으로 지휘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음악,

다른 어떤 음악보다 인간의 감정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죠"

Q.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클래식 음악계가 보수적이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많았습니다.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요?

이쪽도 많이 변하고 있어요. 요즘은 또 장르를 불문하고 오케스트라를 위해 계속 작곡이 이루어지는 추세라 클래식 음악가들이 어디서든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적일 경우는 음악을 가볍게 여기고 진지함이 없는 모습을 볼 때고, 음악에 진심이라면 지금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은 많이 열려 있는 편입니다.


Q. 인스타그램이나 각종 SNS에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노력을 많이 하시는데, 게임 팬들이 새로 들어오면서 달라졌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평소에 클래식을 알리려고 노력했을 때보다도, 게임음악을 통해서 오케스트라와 클래식에 관심이 생긴 분들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역발상의 전달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반해 클래식에 관심을 붙이는 이 현상이 정말 기쁘더라고요.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이 직접 그려 선물한 팬아트 (사진: 안두현 지휘자 인스타그램)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이 직접 그려 선물한 팬아트 (사진: 안두현 지휘자 인스타그램)

Q. 로스트아크 콘서트 뒤에 게임음악이 종합예술 범주에 들어섰다는 소감도 남기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처럼 다른 미디어 속 음악과 다르게 게임음악만이 가진 예술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영화음악과 공통점, 차이점을 비교해보면 편할 것 같아요. 우선 비슷한 점은 음악이 주체가 아니라 작품 자체가 주체라는 것입니다. 배경과 스토리 같은 요소 말이죠. 다만 게임은 유저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라는 점이 영화와 다릅니다. 

영화음악보다도 듣는 '자신'의 경험과 의식이 더 깊게 투영되는 것이 게임음악이죠. 그래서 감동이나 전율이 더 크지 않을까 하네요. 다른 음악보다도 인간의 감정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인간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예술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 자체에 매력을 느낀 유저들도 많아 보이는데요. 이런 콘서트를 처음 접한 '뉴비'에게 추천할 만한 클래식 입문곡이나 공연이 있다면?

클래식 음악이 너무 방대해서 하나를 딱 고르기는 힘들고요. 일단 듣기 편하고 쉬운 클래식음악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어려운 교향곡이나 오페라부터 시작하면 금방 포기할 수 있거든요. ‘클래식명곡’, ‘듣기 좋은 클래식’ 같은 단어로 유튜브를 검색해도 좋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게이머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공연에 와서 평가하는 100명의 관객보다 나의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한 명의 관객이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고요.

그 누구보다 진심을 보인 게임공연의 관객들을 보았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어떤 관객보다 훌륭한 관객들입니다. 저와 아르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행복해하신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게임음악 시장이 더 활성화되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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