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을 넘어, 게임계 전체의 '운영 메타'를 바꾸다

[게임플] "살다살다 게임 디렉터 사임을 보면서 눈물이 날 줄은 몰랐다"

지난 금요일 저녁, 지인과 대화하면서 들은 말이다. 한 사람만의 의견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눈물을 보였다. 분명 지극히 드물었다. 쫓겨나듯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아쉬움과 응원을 받으며 작별하는 디렉터는.

금강선 디렉터가 자리에서 물러난다. '로스트아크'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완성하고, 부활시키고, 이끌어나간 인물이다. 지금 로스트아크는 한국 대표 MMORPG로 국내 최다 접속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진출로 스팀 역대 동접자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재직 내내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로스트아크 시즌1은 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초기 열풍이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콘텐츠에 대한 불만은 가득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잊혀져가는 흔한 게임의 흐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즌2 이후 게임은 달라졌다. 게임의 근본 체계가 완전히 다시 설계됐고, 유저들이 원하는 개선이 속속들이 반영됐다. 이어진 군단장 레이드는 재미와 퀄리티에서 독보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그 시점부터 기적적인 반등은 시작됐다. 

게임 개선을 위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조건이 있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금강선은 이 분야에서 최장점을 가진 디렉터였다. 실수를 판단하면 "우리의 설계 미스"라고 공언하고 수정을 실시했다. 그리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게임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발표 전달법과 이미지 등 수많은 분야에서 '로아온 벤치마킹'이 시작됐다
발표 전달법과 이미지 등 수많은 분야에서 '로아온 벤치마킹'이 시작됐다

게임업계에서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금강선 디렉터는 '소통의 메타'를 바꾼 인물이다. 유저 의견을 듣는 법,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에서 한 차원 다른 세련됨을 가지고 있었다. 

쇼케이스에서 반년 이상의 업데이트 로드맵을 체계적인 이미지로 한 눈에 표시하거나, 발표 도중에 채팅을 직접 읽으면서 대화하거나, "이 부분엔 돈을 너무 쓰지 말아달라"거나 "폐사 구간"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등 가감 없이 솔직한 발언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기 쇼케이스 '로아온'의 대흥행을 이끌었다.

발표 구성의 기승전결도 교과서적이었다. 지난 로아온 윈터에서 '재투자'에 관한 복선을 미리 깔아둔 뒤 "매출의 17%를 포기하는 변화"를 깜짝 공개하며 놀라움을 이끌어낸 사례가 대표적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유저의 감성이나 공감을 건드리는 발언에서도 애정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이 종합예술인 만큼, 감성 또한 중요한 재료였다. 

운영을 이렇게 해도, 아니,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업계 전체에 각인시켰다. 그것은 운영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로아온 열풍 시점부터 경쟁 게임들의 간담회도 조금씩 달라졌다. 오랜 기간 실시간 온라인 간담회를 생각도 하지 않던 곳들조차 쌍방향 소통을 내세우며 방송을 켜기 시작했다. 소통의 화법, 게임 개선 방향을 향한 연구도 물밑에서 진행됐다. 

당장 수익이 크지만 단점도 큰 과금모델이 있다면, 과감히 손을 대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게임사에게도 이득일 때가 있다. 사실, 많은 게임 디렉터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지 경영진에게 그런 변화를 납득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로스트아크 성공 이후, 게임 운영에서 경영진이 아닌 라이브팀 디렉터에게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아직 완벽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실무진이 주도하는 패치 방향과 BM 조정도 점차 자리잡고 있다. 로스트아크의 변화는 게임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로스트아크 흥행이 금강선 디렉터 한 사람만의 공은 아니다. 구형 언리얼엔진3을 가지고 업계 최고급의 아트워크와 연출을 뽑아내는 개발진, 그밖의 콘텐츠에서 수많은 상상력을 담아낸 인재들이 만들어낸 성공이다. 자사 핵심 게임의 결정권을 디렉터에게 최대한 위임한 스마일게이트의 결단도 기반에 있다. 

하지만 그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화음으로 만들어낸 지휘자도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아무리 좋은 인력과 기술이 있어도 게임에서 체계적으로 녹여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유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포착하고, 가장 듣고 싶은 답변을 제공하는 능력은 디렉터의 능력과 정성이 있어야 가능했다. 

금강선 디렉터는 '파이널판타지14'의 요시다 나오키 디렉터를 롤모델로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모델의 계승은 성공했고, 또 다른 표본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는 '골드 리버' 디렉터를 '로스트아크의 요시다'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국내에서 금강선을 롤모델로 한 수많은 신입 기획자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금강선이 10년 전부터 꿈꿔온 엘가시아의 모습은 최근 게임으로 구현됐다. 로스트아크 첫 막의 종료이자 본격적인 전개의 시작이다. 디렉터가 작별 인사에서 언급한 'Sweet Dreams, My Dear'의 마지막 가사를 다시 인용하고 싶다. 부디, 게임계도 내일 더 예쁜 꿈을 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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