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그리고 한국게임 도전에 이정표가 될 게임

[게임플] 전성기가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는 게임이 있다. 

최근 '엘든링'을 향한 뜻밖의 표절 의혹이 커뮤니티에 퍼졌다. 히든보스 '말레니아'의 디자인이 2010년 출시된 다른 게임과 지나치게 겹친다는 것. 그 대상은 넥슨의 '마비노기 영웅전(마영전)'에 등장하는 보스 '레지나'였다. 

스테이지 화원 배경, 전체적인 외형, 부패에 침식된 날개와 오염을 누적시키는 공격 콘셉트는 충분히 겹칠 수 있다. 그런데 검무를 펼칠 때 모션까지 흡사한 점은 "단순 참조치고 많이 나간 것 아닌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혹자는 전세계적 명성을 얻는 게임사가 12년 전 한국게임에서 래퍼런스를 얻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표절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마영전'이 넥슨에게 어떤 게임인지, 그리고 한국 게임계에 어떤 의미인지는 짚어볼 만한 시점이다.

출시와 동시에 마영전을 플레이했을 때 받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온라인게임에서 한 번도 없었던, 싱글 패키지 액션에서나 종종 겪어본 품질의 쾌감이었다. 

콘솔게임을 잡고 있는 듯한 타격감의 풀3D 액션, 놀라울 만큼 긴박한 보스전은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액션에 따라 반파되거나 부서져 흩날리는 주변 오브젝트처럼 정교하게 상호작용하는 환경 오브젝트도 당시에 훌륭한 요소였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참조한 흔적도 여럿 보였다. 보스 입장부터 처치까지의 연출 기법, 강공격과 약공격으로 연계해나가는 콤보 액션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콘솔 세대가 PS3 중반기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싱글도 아닌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이 정도 퀄리티는 충분히 독보적이라고 할 만했다.

초보 유저의 첫 벽이라고 불리던 놀 치프틴을 돌파하고, 얼음 계곡과 아율른 등 모험 지역을 확장해나가는 초반 과정은 판타지 모험액션 그 자체라고 할 만큼 부드럽고 몰입감이 넘쳤다. 그 과정에서 겪는 시즌1 스토리 역시 국산게임 역사에서 늘 회자될 만큼 짜임새 있는 구성과 역동적인 전개를 자랑했다.

음악도 빠질 수 없다. '믿고 듣는 넥슨게임 OST'라는 말이 정설로 굳어지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마영전 출시 전후였다. 일반 마을과 전투 BGM은 물론, 스토리 결정적인 장면마다 연출의 중심에 휘몰아치는 음악이 있었다.

마영전은 지금도 서비스되고 있다.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쉬고 있던 유저들이 대규모로 몰려들면서 '연어 게임'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운영이나 레이드 문제 등 많은 지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성을 무기로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심지어, 12년이 지난 현재도 캐릭터 모델링이 낡지 않은 게임이다. 비슷한 시기 나온 온라인게임들의 그래픽을 참조하면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의상이나 이너아머 같은 치장 아이템이 정교한 디자인으로 수익모델을 담당하고 있을 정도다.

작년 말 업데이트된 20번째 영웅 '레티'
작년 말 업데이트된 20번째 영웅 '레티'

지금 마영전을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히 엘든링 이슈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는 이 게임의 퀄리티와 게임성을 되새기고 싶다. 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영전의 해외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스타일만 보면 북미나 유럽에서도 통할 법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구권 코어 게이머들에게 콘솔이 아닌 F2P 온라인게임은 관심 밖의 이미지였고, 폭넓은 라이트유저를 유치하기엔 게임이 까다로웠다.

가끔씩 생각한다. 지금 정도 환경이 그때 존재했다면 당시 마영전은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스팀 같은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가 자연스러웠으면, 더 능숙한 현지화 노하우가 있었으면, 혹은 국내 게이머 저변이 더 넓었다면 실적과 개발력 투자의 선순환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넥슨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도전을 재개하고 있다. 단순히 매출을 위한 모바일게임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신작 프로젝트에는 PC와 콘솔 플랫폼도 다수 포함됐고, 실사 액션처럼 다양한 장르도 섞여 있다. 바로 그 마영전을 개발했던 이은석 PD도 3D 백병전 액션게임 '프로젝트 HP'를 담금질 중이다. 

게임이 훌륭하고 재미있다면 성적은 따라온다. 당연한 말이면서도, 오랫동안 게임계가 놓치고 있었던 말이다. 게이머들은 이미 훌륭한 게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길을 찾기 위해 탐색에 나선 넥슨에게, 마영전이 거대한 이정표로 서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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