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티' 엄상현과 '라바' 김태훈, 조롱 받는 선수에서 슈퍼스타가 되기까지

[게임플] 모두가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이변이 일어났다.

3월 19일, 프레딧 브리온이 LCK의 '감동 드라마'에 한 페이지를 추가했다. 브리온 블레이드 재창단 이후 최초, 전신을 다 포함해도 2015년 나진 e엠파이어 시절 이후 최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낸 것이다.

시즌 시작 전, 대부분의 전문가와 팬들의 예상 플레이오프 명단에 프레딧 브리온의 이름은 없었다. 오히려 "꼴지를 면할 것이냐"가 주요 과제였다. 다른 프렌차이즈 팀들이 전력 보강 총력전을 벌이는 사이 이름값과 평가가 떨어지는 선수들로 라인업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1라운드 초반은 예상대로 하위권이었다. 하지만 심상치 않았다. 우승후보로 꼽힌 T1, 젠지, 담원 기아를 연이어 만나 비록 졌지만 날카로운 경기 내용을 보여줬기 때문. 그리고 리그가 진행될수록 점차 승수를 쌓으면서 차근차근 순위를 올려나갔다.

그렇게 2라운드 중반 5위까지 뛰어오르면서 플레이오프의 꿈이 실현되려는 찰나, 거대 변수가 발생했다. 감독 이하 선수단 전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된 것. 세트득실 하나 차이로 결정될 수도 있는 접전 속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살상가상으로, 젠지와의 대결을 앞두고 챌린저스 팀원들조차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엔트리 구성 불가로 기권패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경우의 수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할 경우 자력 진출이 불가능해지는 수준까지 왔다. 게다가 마지막 상대는 또다른 강팀 담원 기아였다. 

하지만 여기서 프레딧 프리온은 기적을 써냈다. 코로나19에서 막 복귀한 팀원들은 LCK 최고의 정글러를 상대로 밀리지 않았고, 오히려 2세트에서 정글 싸움을 압도했다. 한타가 벌어질 때마다 한끗 싸움을 이겨내는 놀라운 집중력도 돋보였다.

결과는 2:0 승리, LCK 마지막 주에 벌어진 대이변이었다. 6년차 고참들이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 끈기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팀의 중심에는 정글러 '엄티' 엄상현과 미드라이너 '라바' 김태훈이 있다. 이 둘은 닮은 점이 많다. 1999년생이며, 2017년 LCK에 데뷔한 동갑이자 동기다. 무엇보다 밀접한 공통점은 긴 시간 암흑기를 버티고 또 버텨왔다는 것이다.

엄티의 첫 팀은 진에어 그린윙스였다. 화려한 컨트롤과 슈퍼플레이로 주목을 받는 신인이었지만, 부족한 경험과 지나친 공격성으로 게임을 그르치는 일도 잦았다. 게다가 당시 진에어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팀 부진의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다.

진에어를 나와 2019년 KT에 스코어의 서브 정글러로 이적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즌은 KT의 대표 암흑기로 불린다. 팀은 스프링 스플릿에서 승강전까지 떨어졌다. 종종 출전한 경기에서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엄티는 진에어로 돌아가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1년간 뛰었다. 

이때 경험이 약이 됐을까. 엄티의 플레이는 점차 원숙해지기 시작했다. 2021년 프레딧 브리온에 입단한 뒤 라바와 함께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을 맡았다. '엄사령관', '제네럴 엄' 등의 별명이 말해주듯 정신적 지주이자 경기의 핵심을 담당하는 인물이 됐다. 세리머니와 훌륭한 언변, 친절한 팬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라바는 화려함보다는 무난하다는 인식이 굳혀진 선수였다. T1 연습생을 거친 뒤 락스(현 한화생명 e스포츠)에서 데뷔했고, 첫 해에 큰 활약이 없었지만 2018년 LCK에서 통하는 미드라이너라는 평가를 받으며 안정감을 뽐냈다.

그러나 다시 시련은 찾아왔다. 2019년 상위권 미드에게 크게 밀리는 모습으로 인해 주전 경쟁에서도 점차 밀려났고, 팀 역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다음 해에는 팀 엔트리가 꼬이면서 원딜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고생까지 겪어야 했다. 

엄티와 같이, 2021년 프레딧 브리온 입단은 분위기를 급전환시킨 계기였다. 전년 롤드컵 우승팀 담원을 상대로 하드캐리하며 2:0 압승을 이끄는 이변을 만들어내자, '롤킹'이라는 별명이 붙는 등 팬들의 스타로 일약 떠올랐다. 평소에는 안정적이지만, 중요한 순간 화려하게 빛나는 선수로 이미지가 바뀐 계기였다.

올해 역시 라바는 프레딧 브리온의 드라마에서 핵심을 담당했다. 라인전과 한타에서 모두 상위권 실력을 보였고, 미드 부문 올프로 선정 논쟁에도 합류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저 그런 선수'로 기억되던 두 6년차 선수가, 돌풍의 플레이오프 팀을 이끄는 중추로 떠오른 것이다.

다른 팀원들의 스토리도 하나같이 버릴 것이 없다. 작년 한화생명에서 아쉬운 퍼포먼스로 조롱의 밈이 붙기도 했던 '모건' 박루한, LCK 합류부터 어려운 팀 사정을 이끌어야 했던 바텀듀오 '헤나' 박증환과 '딜라이트' 유환중, 대형 영입 없이 능력 증명이 가능하겠느냐는 말을 듣던 최우범 감독까지. 

23일, 프레딧 브리온은 담원 기아를 다시 만난다. 그들이 더 높은 단계로 오를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플레이오프 2라운드 이상의 파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첫 관문부터 꿈이 꺾일 수도 있다. 그만큼 프로 세계는 매 순간 시험의 장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프레딧 브리온은 누구나 꿈꾸던 이야기를 실현시켰고, 이미 자신들의 이름을 모두에게 각인시켰다. 앞으로 어떤 성적을 내더라도 그것은 곧 스토리가 된다. 우리는 그 뒷이야기를 꿈의 연장선이라고 부른다. 

6년 동안 성적을 내지 못했어도, 하위권을 맴돌았어도, 모두가 탈락 후보라고 불러도, 그것을 이겨내고 뒤집을 때 감동은 나온다. 승부의 세계에서 그 누구라도 가능성은 있다. 그것이 우리가 스포츠를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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