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미 망한 게임을 살려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물론 운좋게도 국내에선 외면받았던 게임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했던 역사는 있다. 하지만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받았던 게임이 뼈를 깎아내는 환골탈태를 거듭해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호평을 받는 케이스는 드물다. 그것도 나라별 현지화 전략도 없이 말이다. 그러한 시점으로 봤을 때 요시다 나오키가 재건한 '파이널판타지14'는 궁금한 점이 많이 생기는 게임이다.

두터운 마니아층에게 조차 외면받고 망하기 일보직전이었던 파판14는 현재 새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한 '렐름리본(다시 태어난 왕국)'이라는 부제를 달고 글로벌에서 성공했다. 이런 파판14 부활의 중심엔 스퀘어에닉스 내부의 엄청난 노력과 함께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PD)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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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팬보이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


요시다는 게임업계 22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1993년 허드슨에 입사 한 그는  PC엔진용 '천외마경'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봄버맨' 시리즈의 디자인을 맡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3년 스퀘어에닉스에서 '드래곤퀘스트10'을 개발한 사이토 요스케의 제안으로 2004년 거처를 옮긴 뒤 이 게임의 수석 플래너가 된다. 여기서 나오키는 주로 라이브와 하우징을 담당했다. 이때부터 온라인의 DNA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요시다가 스퀘어에닉스로 거처를 옮긴 가장 큰 이유는 "나는 팬보이다!"라고 자청할 만큼 이미 처음부터 파판과 드퀘의 팬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퀘어에닉스를 들어가기 전부터 파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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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가 수석 플래너를 맡았던 드래곤퀘스트10

그리고 2010년 9월 30일 파판14가 글로벌에 출시됐다. 파판 시리즈에서 파판11에 이어 두 번째 온라인게임으로 스퀘어에닉스는 MMORPG 시장에선 아직도 걸음마 단계였다. 파판14(프로듀서 타나카 히로미치)는 출시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당시만 해도 요시다는 드래곤퀘스트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파판14는 파판11에서 진화한 형태로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성으로 승부하겠다는 포부와 달리 평가는 냉혹했다. 게임 전문 매체들은 파판14를 'MMORPG를 퇴보시킨 시리즈 중 최악의 게임'이라고 혹평했다. 실제로 그래픽 최적화, 전투 시스템, 유저 인터페이스(UI), 퀘스트 등 주요 시스템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등 총체적 부실 덩어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물건'으로 전락했다.  

스퀘어에닉스에겐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파판' 시리즈는 지난 30년간 이어온  '회사의 상징'이자 일본의 '국민게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판14가 회사에 돈을 벌어주지 못해도 브랜드를 망치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파판'의 브랜드는 물론 회사의 이미지 추락은 불보듯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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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최적화가 엉망이었던 구 파이널판타지14

고심하던 스퀘어에닉스는 서비스 2개월이 지난 2010년 12월 파판14의 주요 개발진을 전면 교체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리더 요시다 나오키, 보조 디렉터(파판10과 프론트미션5에 참여했던 타마이 신타로), 게임 기획(파판9, 11을 맡았던 코우모토 노부아키), 프로그래머(파판11과 더지오브켈베로스를 작업한 카스가 히데유키), 이외 전투 기획, 기술 지원, 아티스트, 컨셉 아티스트, UI 및 웹디자이너 등 스퀘어에닉스의 간판급 인물들로 전격 교체했다. 이는 사실상 모든 것을 새로 뜯어고친다는 의미였다. (이후 타나카 히로미치는 겅호온라인의 고문 개발자로 거취를 옮긴다.)

4.jpg시리즈 최악의 게임이 될뻔한 파판14 '산 넘어 산' "갈길은 멀었다"

스퀘어에닉스는 초반엔 어떻게든 현재의 게임의 문제점을 보완해 끌고 갈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재의 파판은 종료만이 답이었다. 주요 개발진이 변경됐음에도 게임은 계속 기울어갔다. 파판14 드림팀의 리더 요시다가 분석한 파판14의 문제점은 전사 차원에서 비상 대응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 마라톤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파판14의 현 세계를 붕괴시키는 스토리를 만들어 종료하고, 새로 시작하기로 한다.


파판14는 2012년 11월 12일 바하무트에 의해 멸망하는 세계가 엔딩 영상을 통해 보여지며 종료된다.


2013년 기존의 파판14는 멸망했고, 새롭게 태어나는 에오르제아를 배경으로 한 '렐름리본'의 오프닝 영상이 최초로 공개되자 유저들은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이 돌아온것 처럼 열광했다. 파판14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과 '드래곤퀘스트'로 명성을 쌓은 요시다 나오키의 브랜드로 만들어진 새로운 파판14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새로 만들어진 파판14는 초코보와 이프리트 등 파판 시리즈를 상징하는 소환수를 복귀시키는 등 기존 시리즈의 전통을 복원하는데 중점을 뒀다. 또 스퀘어에닉스의 최신 엔진인 루미너스 2.0을 탑재해 그래픽 품질을 높였다. 불친절한 게임 진행, 복잡한 이동 동선, 지루한 전투 시스템 등 이전의 파판14가 지녔던 문제점을 해결해 완전히 다른 게임을 만들어 냈다.

파이널판타지14, 렐름리본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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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판타지14 리부트 버전 렐름리본은 2013년 8월 27일 글로벌 서비스가 시작됐다


새로운 파판14는 공식 발표한지 9개월만인 2013년 8월 27일 '파판14:렐름리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기대했던 만큼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비스 1년여의 기간 동안 일본, 북미, 유럽에서 250만명 이상의 유저가 새로운 파판을 즐겼으며, 최고 동시접속자수는 30만명을 넘어섰다.  최악의 게임이라고 평가했던 해외 주요 매체들은 리빌딩에 성공했다고 호평했다.

 "계획과 디자인이 바로 잡혀있을 때 혁신이 이뤄진다"

2014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요시다는 이 같이 말했다. 새롭게 재건한 파판14를 두고 한 얘기다. 그는 늘 비교와 성찰을 거듭했다고 한다. 자신의 게임에 없는 것이 경쟁 게임에 있는지, 콘텐츠가 충분한지, 유저에게 주는 보상이 적절한지, 장기적인 업데이트 일정을 세웠는지 등 성공적인 서비스를 위한 모든 면을 끊임없이 분석한 꼼꼼함이 성공의 키워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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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수차례 방한해 이제는 옆집 아저씨 같이 느껴지는 요시다 나오키 프로듀서


파판14는 '외산 게임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도 서비스가 진행중이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파판14의 국내 점수는 후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파판14는 PC방 순위 20위권 유지) 8비트 게임 시절부터 파판을 즐겼던 '90년대 게임키즈'들에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간결한 게임과 모바일에 길들여진 신세대 유저들은 방대한 맵과 퀘스트를 보는 순간 플레이 할 엄두조차 못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유저 특성인 '전광석화 같은 콘텐츠 소비'에 반해 업데이트가 느린 것도 이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무엇보다 한국 게임시장은 모바일게임의 지배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허들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요시다는 현재 이런 한국 게임의 생태계와 유저의 성향에 대해 무서운 기세로 공부하고 분석하며, 소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스타2015'가 열렸던 올 11월까지 수차례 방한했다. 일본의 개발자 중 요시다 만큼 한국의 유저들과 기자를 많이 찾은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 반드시 파판14를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의지의 방증이다. 그에게 또 다른 도전 과제가 생긴 것. 그래서 그의 앞으로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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