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그오, 우마무스메, 원신... 하나로 모이는 공통점
게임을 하는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다

[게임플] 막강한 팬덤을 보유한 서브컬처 게임은 공통점이 있다. 

서브컬처 게임 전성기다. 한때 '오타쿠'들의 전유물이자 비주류 문화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이제는 유저 수와 매출 모두에서 주류 수준으로 올랐다. 글로벌 확장성 역시 높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그 어떤 곳보다 퀄리티 발전이 빠르게 진행된 게임이기도 하다.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서브컬처 게임은 크게 셋으로 압축된다. 장수 IP '페이트' 시리즈의 대표작 '페이트/그랜드 오더(페그오)', 사이게임즈의 육성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그리고 중국의 호요버스에서 개발한 '원신'이다. 

평균 매출과 접속자에서 이 '3대 게임'은 명확하게 궤를 달리 한다. 퀄리티부터 역대 최고 평가를 받는 뒤의 두 게임은 그렇다 쳐도, '페그오'까지 여전히 최상위를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은 '스토리텔링'에 모인다.

'페이트/그랜드 오더'
'페이트/그랜드 오더'

'페그오'는 출시 시점부터 퀄리티나 게임성에서는 뚜렷한 경쟁력이 없었다. 하지만 IP가 가진 압도적인 질과 양의 스토리가 무기였다. 이 무기는 게임 운영 과정에서 더욱 갈고닦은 필살기로 재탄생했다.  

타입문의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낸 나스 키노코가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20년 역사의 페이트 시리즈 세계관을 게임에 묶어 방대한 볼륨이 탄생했다. 2018년까지의 스토리 텍스트만 해도 소설책 40권 분량을 뛰어넘는 규모다. 

분량뿐 아니라 스토리 완성도와 호소력에서도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속에 캐릭터의 매력을 전달하는 기술도 탁월하다. 굳이 성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도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캐릭터를 얻기 위해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매출은 캐릭터가 견인하지만, 그 캐릭터에 생명을 넣는 기법이 곧 스토리텔링이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을 울렸다

'우마무스메'는 2022년에도 일본 시장 매출에서 2년 연속 1위를 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 접속자 역시 서브컬처 게임 중 가장 많다. 퀄리티와 육성의 재미도 주효했지만,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비결은 실존 경주마들의 생애를 캐릭터와 시나리오로 만들어낸 해석력이 꼽힌다.

캐릭터 장식 하나마다 의미를 담을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쳤고, 스포츠 감성의 소재들을 감동적이면서도 매우 건전한 표현으로 연출해내 상상 이상으로 대중적인 IP를 만들어냈다. 역으로 원본마들의 행적과 경주마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갖는 현상도 늘어났다.

막연하게 경주마 소재 게임이라고 인식한 경우 한국 흥행에 의문을 가지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결과는 새로운 실화 기반 스토리에 많은 팬들이 웃고 우는 흥행으로 나타났다. 잘 만든 스포츠 드라마의 감성은 국가를 불문하고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내러티브 역량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원신'
내러티브 역량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원신'

'원신'은 조금 다른 과정을 거쳤다. 출시 초기 주목을 받은 지점은 이야기보다 퀄리티와 전투 시스템의 재미, 캐릭터 디자인 등이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 자체는 무난한 편이었고, 지역에 따라 혹평을 받는 스토리도 존재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센스 있는 연출력으로 이야기를 포장하고, 캐릭터 매력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능하다. 최근 수메르 지역에 접어들어서는 스토리 줄기부터 치밀한 구성을 보여주면서 뚜렷한 발전의 흔적도 남겼다. 

원신은 모든 스토리에서 스킵이 불가능하다. 강제로 대사를 읽게 만드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유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눈을 붙잡아야 했다. 이를 위한 스토리텔링은 성공적이었다. 수집형이지만 사실상 싱글 오픈월드 게임에 가까워 언제든 자신이 내킬 때 스토리를 즐겨도 무방하다는 장점도 있다. 

'블루 아카이브'는 광기에 가까운 서브 스토리와 훌륭한 메인 스토리를 가졌다
'블루 아카이브'는 광기에 가까운 서브 스토리와 훌륭한 메인 스토리를 가졌다

국내에서 게임 스토리 및 내러티브를 담당하는 인재는 오랜 시간 육성되지 못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린 이후, 국내 게임계에서 시나리오 전문 인력은 오랜 기간 천시받았다. 스토리의 질이 기업 매출과 연결된다는 체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획 파트에서 겸사겸사 캐릭터 설정과 대사도 담당하는 조직이 대부분이었다. 구색 맞추기와 같은 스토리 추가로 인해 천편일률적인 설정과 스토리가 난무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게임은 기본 스토리뿐 아니라 연출 노하우도 중요한데, 그런 역량을 쌓을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토양에서, 블루 아카이브는 서브컬처 게임의 필수 요소를 먼저 캐치하고 국내에 해답을 보여준 게임이었다. PD 아래 핵심 개발진들이 관련 감성에 깊은 이해를 가졌고, 전문 시나리오 팀을 구성해 유쾌한 세계관 속 진지한 메인스토리를 풀어나갔다. 그 결과 쟁쟁한 IP들이 경쟁하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팬덤을 보유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니케'가 캐릭터 노출이 전부라면, 전 세계에서 이 정도 파급력은 없었을 것이다
'니케'가 캐릭터 노출이 전부라면, 전 세계에서 이 정도 파급력은 없었을 것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 역시 마찬가지다. 출시 전 캐릭터와 '엉덩이' 등의 노출이 이슈가 됐지만, 유저를 장기적으로 잡아두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스토리가 꼽힌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절망감을 촘촘하게 전개하면서도 적절한 웃음으로 완급조절을 해나가는 스토리는, 해외 유저들에게도 게임을 지속하는 최대 이유로 언급되고 있다.

2023년에도 서브컬처 속 이야기를 강조한 신작들이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신작 '에버소울' 출시가 임박했으며, 일본에서는 유명 게임 시나리오 작가 마에다 준의 신작 '헤븐 번즈 레드'가 기대를 모은다. 

스토리텔링은 보통 게임을 하게 되는 이유가 아니다. 하지만 게임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가 된다. 게임의 즐거움과 감동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올해 서브컬처 신작들 역시 새로운 경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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