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이미 가장 작은 일상에 있었다

[게임플] 걸음을 옮기자, 길가에 꽃이 피어난다. 걷다가 마주친 모종을 키우면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긴다. 산책을 반복할수록 다양한 꽃의 색깔이 지나간 길을 물들이고 있다.

11월 2일 출시한 '피크민 블룸'은 요란하게 등장한 게임이 아니다. 게임이라고 부르기에 단순한 감도 있다. 증강현실(VR) 산책 앱에 가깝다. 걸어다니면서 피크민을 친구로 만들어가고, 꽃잎을 수확해 꽃을 심어나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국내에 덜 알려졌을 뿐, 생각보다 유서 깊은 시리즈다. 닌텐도는 2001년부터 피크민 시리즈를 꾸준히 출시하면서 자사 플랫폼의 대표 힐링게임으로 만들어왔다. 이어서 나이언틱과의 협업을 통해 모바일 증강현실로 재탄생시킨 것이 피크민 블룸이다. 

'포켓몬고' 이후 증강현실 게임이 모바일 대세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대표 개발사는 나이언틱이었다. '인그레스'로 가능성을 증명한 뒤 포켓몬 IP로 전세계에 문화 충격을 선사했고, 나이언틱을 포함해 수많은 개발사가 증강현실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금 증강현실을 향한 온도는 예전만큼 높지 않다. 사업적 관점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가상현실이나 블록체인 등 신사업 모델로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갔고, 메타버스 역시 유저간 경제활동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포켓몬고 이후 이렇다 할 글로벌 흥행작이 나오지 않은 것도 평가 저하의 요인이다.

하지만, 증강현실이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대중 일상에 자리잡는 현상은 충분히 감지되고 있다. 사업 이전에 문화적으로 새롭게 나타난 형태다. 오히려 매우 친숙해졌기 때문에 별다른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증강현실은 수집형 게임에서 더 나아가 일상 관리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매일 운동 시간과 걸음 수를 체크하고, 바깥에 보상을 설치하고 획득할 수 있게 하는 앱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뷰티 시장에서는 실제 유저의 피부톤에 접목시켜 증강현실로 신제품을 테스트해주는 앱이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는 게임계에서 꾸준히 연구하던 게이미피케이션과 연결된다. 일상 곳곳에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보상 체제를 마련하는 것. 이는 관리를 넘어 변화의 흐름을 띠고 있다. 평소에 사용하는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연결되는 것도 가상현실에 비해 결정적인 강점이다.

증강현실에 익숙해진 일상이 상상 이상의 잠재력을 가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피크민 블룸은 이미 출시 초창기에 전세계 다운로드 100만회를 넘었고, 그밖의 증강현실 신작들의 평균 인기 순위도 조용히 오르고 있다. 

닌텐도가 증강현실 확장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도 비단 포켓몬고 때문만은 아니다. 당장의 매출보다 플랫폼 가치를 장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오 카트 라이브: 홈 서킷'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현실의 배치물 이용해 증강현실 서킷으로 만들고, RC카에 카메라를 달아 그 속에서 조작하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비록 스위치 기기와 RC카를 최소 두 대 이상 소유해야 대결이 가능하다는 치명적 단점으로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증강현실 기술 활용과 게임성의 발전 여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증강현실의 '게임성'은 포켓몬고 이후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시도로 미루어볼 때, 새로운 게임 시스템이 증강현실에 벼락처럼 나타날 힘은 언제든 갖고 있다. 그 시점은 게임을 넘어 대중들의 일상이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메타버스는 이미 존재하던 개념에 이름을 붙인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온라인게임 초기부터 비슷한 시도가 있었고, 오늘날 메타버스는 이미 가장 작은 지점부터 스며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어느새 증강현실과 접목되어 있다. 우리의 평범한 걸음이 꽃을 넘어 더욱 깊은 상호작용으로 새로워질 시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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