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닌 첫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임플] 기획자라면 누구나 '같이 일하고 싶은 기획자',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기획자',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기획자' 등 "자신은 어떤 기획자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음 속으로 거듭하고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한다.

NDC2021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함정에 빠진 기획자'라는 주제로 발표를 준비한 넥슨코리아 이민우 기획자는 지금까지 업무를 진행하면서 안타깝게도 좋은 점보다는 아쉬웠던 점들이 먼저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이 앞서 언급한 목표들을 갖게 만들었고 그 노력이 무엇을 가져다 줬으며 무엇을 부족하게 만들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나무위키'를 통해 많은 정보를 빠르고 편하게 얻는다. 현업 기획자들도 이곳을 업무 자료 참고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민우 기획자는 문득 나무위키에서는 게임 기획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검색 결과 '되어서는 안 되는 기획자 유형'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곳에는 과거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기획자는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획자라면 발견한 단점을 고치고싶어하기에 그도 이 부분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즉,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기획자 꿈나무들이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이번 발표를 준비한 것이다.

기획자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더 흥미로운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잡는다. 

론칭 이후 지표가 좋지 않다면 성장 구간을 다시 설계하거나 콘텐츠 순환 구조를 다시 만들어 본다거나 혹은 캐릭터의 성능을 전면 개편하는 작업도 시도한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부분을 개편해도 수십 명, 수천 만 원 상승한 결과로는 하향세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민구 기획자는 유저도, 지표도, 피드백도 없는 이른바 '3無' 게임의 기획자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기획에 대한 피드백을 전해줄 이용자들이 없어도 기획과 업무 수행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팀원들이 있어 '구조 설계'와 '일정 조율'에 집중하게 된다.

재미, 매출, 흥미, 설계와 같이 게임 이용자들과 마주하는 플레이 관련 업무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일정, 작업량, 의견 조율과 같이 일하는 팀원에 대해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기획하는 좋은 기획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반드시 필요하거나 효과가 큰 구현이 아니라면 현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작업자의 희망과 취향을 반영해 게임에 구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당연히 게임 자체에서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커뮤니티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는 상반됐다. 협업자의 의욕을 고취시킬 뿐만 아니라, 웃으며 일할 여지가 많아졌고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이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워 이직해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오더에 맞는 기획, 결정된 사항 준수, 작업자의 환경 고려, 동료들의 의견 적극 반영에 초점을 맞췄다.

신입 때 유일하게 했던 장점이니 이 부분을 잘 살려보자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조조전의 예전 감성을 살려주기 위해 개발, 아트, 기획적으로 재활용 가능한 것은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했다.

그는 좋은 의견의 합이 좋은 기획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작업 중에 고려할 수 있다고 오만했고 그렇게 탄생한 '무극' 모드는 처참한 평가를 받게 됐다.

각 요소들을 따지고 보면 여러 의견들을 모두 반영한 노력이 담겨져 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그야말로 실패한 기획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좋은 의견의 합이 좋은 기획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획 목적이 콘텐츠 생산이 아닌 의견 반영으로 전락한 것을 깨달았다.

같이 일하기 좋은 기획자, 말을 잘 듣는 기획자라고 좋은 결과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인간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부분이 절실하게 드러난 부분이었다.

이후 그에겐 '재미있는 것을 만들자'와 같은 추상적이면서도 러프한 지령이 떨어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획이었으나, 이때도 '좋은 기획자'라는 병이 재발했다.

주문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고 의견을 메인 기준으로 삼아 기획을 쌓아간 그는 결국 초기 기획과 완전히 상반된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역시 결과는 실패다. 콘텐츠를 개발할 때 '어떤 콘셉트가 재미있겠다'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

모든 유저가 참여하는 월드 단위의 콘텐츠, 삼국지 역사 속 전투를 보스전으로 만든다는 것, 보스전에 맞는 새로운 전투 시스템을 만드는 것, 스펙 외에 트리거와 공략의 재미가 담긴 전투 등 모두 '재밌겠다', '괜찮네'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졌지만 거듭된 반복 속에서 방향성이 어긋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콘텐츠를 재미있게 만드려면 디테일, 치밀한 밸런싱, 유저가 예측 가능한 시스템, 쉬운 접근성, 변수 대응의 유연함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구현'이라는 달콤한 단어에만 전념했던 이민우 기획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자기 고찰이 늦어져 아쉬웠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는 온갖 요소를 넣는 방향은 방향성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정해진 방향성 아래에 피드백은 정확하게 전달하자는 교훈을 확실하게 얻었다.

방금 상황에서의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은 '현재 구조라면 정규 콘텐츠인데도 열리고 닫히는 시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고 보스 토벌의 변수가 많이 생겨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규화에 맞춰 튜닝하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피드백을 전했어야 했다.

어느 회사든 상급자는 신경 쓰는 부분이 더 광범위한 만큼 콘텐츠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구하려면 더 명확한 현상을 제시해야 한다.

하급자라고 상급자가 모든 것을 나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 모든 말을 귀담아 듣자는 생각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민우 기획자는 오더와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순간 기획자도, 문서 작성자도 아닌 사람이 된 과거의 자신을 반성했다.

그가 "기획자라면 스스로가 결과를 명확하게 그리면서 기획해야 하고 문서 작성자라면 원작자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모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콘텐츠가 아니라 게임 전체를 관찰해라'라는 피드백을 받은 이민우 기획자. 물론,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기획해 나아가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캐릭터에게 큰 칼을 쥐어 주세요', '이 캐릭터는 한 방이 무식하게 센 힘 캐릭터로 만들려고 하니까 큰 칼을 쥐어주면 느낌이 살아날 거라 생각합니다' 분명 같은 오더지만 후자는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할 확률이 적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다.

그는 '선을 넘자'를 강조했다. 갈등을 꺼리는 자신과 같은 기획자들에겐 너무나 꺼려지는 일이겠지만, 선을 넘어야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고 아무런 갈등 없이 기획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과 동료에 잘 맞추는 기획자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조직을 찾는 주니어 기획자도 무척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이민우 기획자의 발표는 사실 게임 기획자 뿐만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혹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다.

해외 기업 '구글'에서는 상급자, 하급자 구분 없이 서로에게 수시로 사소한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강화한다. 해당 질문을 정확히 풀어내 답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창의성을 키워나가기 위함이다.

수차례 언급되지만 기획자라면 자신의 뜻을 믿고 이를 밀어부치는 역량도 중요하다. 현재 게임 기획자를 위해 노력하는 게임업계 꿈나무들은 이민우 기획자의 발표 내용을 다시금 되새겨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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