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를수록 견고해져' 꾸준한 수련으로 여전히 철권계 정점 군림 중인 무릎 배재민

[게임플] 1990년대만 해도 오락실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였다.

당시 오락실엔 1945, 텐가이와 같은 탄막슈팅게임부터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타임 크라이시스 등의 건슈팅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존재했는데, 그중에서도 철권과 같은 대전격투 게임은 유일하게 다른 사람과 경쟁할 수 있는 게임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혼자서 조용히 스테이지를 격파하고 있다 보면, 옆자리 혹은 건너편에 있는 오락기에 다른 사람이 동전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눌러 ‘HERE COMES A NEW CHALLENGER’라는 문구가 반겨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전격투 게임 특성상 대결의 끝엔 결국 승자와 패자가 결정돼 승자는 끝까지 살아남아 게임을 즐기고, 패자는 자리를 물러나거나 동전을 넣고 리벤지 매치를 신청해 플레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까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다양한 대전격투 게임이 존재했지만, 특히나 철권은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더라도 변함없이 큰 인기를 얻어 오면서 각종 대회를 열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다양한 대회가 개최되던 가운데 2004년 개최됐던 철권5 대회에 출전해 3위라는 기록을 세운 이후 각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 담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보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무릎(Knee)’ 배재민 선수였다.

그는 2007년 처음으로 출전했던 철권6 국제대회에서 손쉽게 우승을 차지하면서 해외에선 ‘테켄 갓’이라고 불리기 시작해 ‘철권계의 페이커’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정상급 존재감을 보여줬다.

특히, 2019년도엔 철권 수행을 위한 파키스탄 원정은 해외 게이머들과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화제가 됐다.

3일 동안 파키스탄 선수들과 대결을 펼친 그는 41전 38승을 달성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전 세계 철권 팬들을 놀라게 했다.

선수 생활 15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무릎은 여전히 선수로서 대회에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 올리거나 개인 방송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 팬들에게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철권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킹오브파이터즈 올스타와 커츠펠 등 다른 격투게임과 서머너즈워: 백년전쟁 등 다른 장르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두각을 나타내 다양한 게임을 섭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긴 선수 생활을 통해 철권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무릎’. 기자도 어렸을 때부터 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방송도 챙겨보는 만큼 직접 만나 철권을 잘하는 비결이나 그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오랫동안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해외 및 국내에서 철권의 신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사실 언제부턴가 국내에선 ‘철권 신’, 해외에선 ‘태켄 갓’이라고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는데, 왜 그렇게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으면서도 솔직히 좀 부담스럽네요. (웃음)

특히, 그런 칭호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경기에서 질 경우 괜히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감을 안겨드리는 부분이 가장 부담돼요.

근데 이러한 부담감 자체는 선수 생활을 하면 무조건 겪는 일이고 e스포츠도 엄연한 스포츠 경기 중 하나이기에 마냥 좋은 이야기만은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악플 때문에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팬분들에게 ‘무조건 좋은 말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축구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팀이나 선수가 못하면 ‘왜 저렇게 하냐’라고 이야기하면서 경기를 봐요. 결국 팬의 입장에선 이것도 경기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기에 선수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봐요.

리그오브레전드의 경우, 메이저 게임이니까 선수들이 저보다 훨씬 많은 비난과 악플을 받아 힘들겠지만, 비주류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저것조차 관심이라고 생각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예전엔 저도 사람들의 비난에 신경을 쓰는 시절이 있었어요. 하지만 게임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나중엔 ‘이 사람들이 내가 경기에서 진 게 안타까워서 이러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 상황에서 수 싸움을 비롯해 많은 심리전을 생각해 못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 경기를 보러 오시는 분들 중에서 제가 가끔씩 콤보를 실수하거나, 공격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해 답답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그분들 모두가 철권을 잘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경기를 보는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선수로서 나이도 좀 있고 철권이 메이저한 게임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서 봐주시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죠.

 

Q. 15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우승하신 횟수와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있다면?

처음으로 데뷔했던 2004년도부터 지금까지 총 67회 정도 우승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터뷰할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물어보면 WCG라고 대답해왔어요.

하지만 최근엔 제가 맨 처음에 철권을 시작한 계기를 제공해줬던 첫 대회인 '2004 메가엔터프라이즈 철권5 전국대회'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 대회에서 제가 처음으로 3위에 입상해 사람들이 환호해주는 걸 경험하면서 입상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거든요.

이를 계기로 제가 철권을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서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 대회가 없었다면 제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네요.

 

Q.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TV에서 ‘아프리카 TV 철권리그 (ATL)’이라는 철권 대회를 공식적으로 개최하면서 철권의 인기가 많이 올라갔다. 언제 가장 체감이 되는지 알고 싶다.

처음에 열렸던 ATL은 1년 시즌이 아닌 단발성 대회로 예전부터 철권을 기억하는 사람들만 대회를 보면서 ‘와 그때 했던 사람들 아직도 있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그래서 대회를 보러 온 시청자들이 예전에 봤던 대회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때 선수들도 아직 하는지 물어보곤 해요.

1년 리그로 바뀐 이후엔 처음부터 시청자폭이 넓지 않았으나 대회를 꾸준히 진행하니까 다른 대회들을 보던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보러와서 여기에 빠져들더라고요.

작년엔 시청자들이 서서히 느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평소 시청자 수도 늘었고, 대회 본 방송 시청자도 옛날보다 많이 늘어난 모습이랑 다른 BJ분들도 철권을 하는 모습을 보면 실감이 나더라고요.

Q.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보면 대부분 빨간색이다. 자신만의 상징인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철권5에서 처음 생겼지만, 당시엔 커스터마이징에 필요한 파이트머니가 게임 한 판에 1,000원 밖에 못 얻어서 모으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모은 파이트머니로 색깔을 바꾸는 것밖에 없어서 처음엔 검은색으로 하고 있다가 갑자기 빨간색으로 다 꾸미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바꿨더니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이후에 한 번 검은색이랑 남색으로 바꿨다가 갑자기 게임이 잘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빨간색으로 바꾸고 하니까 ‘무릎이 빨간색으로 하면 3배 빠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게임이 잘 풀려서 마치 징크스와 같은 느낌으로 계속해서 빨간색을 고수해오고 있어요.

 

Q. 대회를 보고 시작하려는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철권7이 출시된 지 벌써 6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입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항상 방송에서 추천하는 캐릭터가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때마다 저는 여자 캐릭터를 할 거라면 아스카, 리리, 알리사를 권하고, 남자캐릭터는 모두가 아는 폴, 쿠마, 잭-7, 리로이 등 비교적 콤보가 쉽고 익숙해지기 쉬운 캐릭터들을 추천해요.

반대로 풍신류나 스티브, 화랑 같이 운용이 어려운 캐릭터들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특히 풍신류 캐릭터들은 풍신이랑 초풍신을 잘 사용하려면 자신이 계속 사용하면서 감을 잡는 것도 필요하고, 자신에게 맞는 레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최근 대회에서 강세를 보이는 캐릭터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요즘엔 신규 캐릭터인 리디아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생각해요. 국내에선 잘 안 쓰는 캐릭터지만, 현재 해외에선 자주 언급될 정도로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는 캐릭터거든요.

우리나라는 잘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주로 하는 경향이 높아서 예전보다 모든 캐릭터를 다한다는 느낌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이게 게임이 오래되다 보니까 다들 주 캐릭터의 숙련도가 높아져서 그걸 밀고 나가는 모습이 많더라고요.

범용적으로 보면 리로이, 데빌진이 많고 스티브가 하향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이 사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화랑도 은근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Q. 치쿠린의 리디아와의 대결이 인상 깊었다. 다른 리디아 선수들과 어떻게 달랐는가?

그 친구는 확실히 리디아의 장점을 빨리 파악한 것 같아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기술들로만 운용하니까 자신의 기술이 막혀도 본인한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계속 동등한 상황이 되더라고요.

이를 못 참고 내지르면 카운터를 맞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는데, 특히 리디아가 자세를 이행한 다음에 가드 브레이커 기술도 사용할 수 있다 보니 이걸 가지고 심리전을 들어와요. 그래서 주도권이 항상 리디아에게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공격을 들어가더라도 리디아가 맞받아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지금 상황에선 ‘왜 이 캐릭터를 안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점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 철권7의 뜨거운 감자 리디아

Q. 리디아를 상대할 때 주로 노멀 진을 사용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다.

일단 리디아의 공격 대부분을 노멀 진이 대처하기 쉬워요. 그리고 대치 구도가 계속되면 결국 자세 심리전이 중요한데, 상대 생각을 다 찍을 수가 없다 보니 예측하고 막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그나마 변수를 줄 수 있는 게 진이 가지고 있는 패링이라 이거를 활용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패링과 함께 리디아의 공격을 파훼하면서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는 기술 같은 것들 사용하면 리디아를 상대할 때 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망자 선수의 리디아랑 대결할 땐 어차피 제가 패링을 쓰면 상대에겐 공격할 방법이 하단밖에 없으니까 패링을 하는 척하면서 역심리를 걸었죠. 거기다 어차피 하단 데미지가 높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손해보단 이득이 커서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했죠.

 

Q. 최근엔 지파나와 같은 다른 캐릭터로 리디아를 파훼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자피나가 시즌 3 시절엔 탑 티어 캐릭터였는데, 밸런스 패치 조정 이후 다소 약화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자피나를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내지 않을 정도였지만 최근 해외에서 아슬란 애쉬 선수가 자피나로 우승하면서 여전히 좋다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거에요.

저도 그래서 다시 자피나를 잡고 해보는 중이지만, 운영 자체가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사용하려면 아직은 좀 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리로이, 파쿰람과 같이 좋은 성능을 지닌 신규 캐릭터들이 많이 추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철권7로 넘오면서 DLC 캐릭터라는 게 처음 생겼는데, 뭔가 돈을 주고 사는 캐릭터들이 성능을 너무 좋다고 말이 나오고 있어요. 사실 이 부분이 바로 기존 이용자들 사이에서 많이 반발하고 있는 부분이죠.

물론 이걸 좋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존에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하던 사람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성능을 지니고 있거든요. 거기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철권8 개발도 더딘 상황이고, 게임은 계속 돌려야 하니까 DLC 캐릭터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로 인해 안 그래도 게임이 오래돼서 재미도 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강한 캐릭터를 출시하니까 오히려 기존 이용자들의 이탈이 있는 것 같아 신규 캐릭터를 내더라도 기존 이용자들을 생각하고 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까 초보자 추천 캐릭터로 이런 신규 캐릭터를 추천하지 않은 이유는 초보자분들은 어느 정도 하다가 흥미를 잃고 접을 수도 있는 건데 돈을 주고 캐릭터를 사서 즐기기엔 아까워서 였어요.

Q. V4.10 패치노트를 보면 무릎 선수가 언급했던 캐릭터들만 하향 조정이 됐다.

당시 하향된 캐릭터들이 사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거의 TOP5 안에 들어가는 캐릭터들이고 실제로도 그 캐릭터를 쓰는 사람들의 성적이 잘 나왔어요. 이번 밸런스 패치 자체도 되게 늦게 한 편인데, 코로나로 인해 국제 대회가 열리지 않으니까 크게 이슈가 안됐어요.

근데 나중에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서 파쿰람이 우승하고, 줄리도 강한 모습을 보이고 하니까 시간이 지나서 패치되더라고요. 아마 개발사 측도 이용자들의 소리를 다 듣고는 있지만, 언제 패치를 도입할지 시기를 보는 것 같아요.

저도 강하다고 이야기하는 캐릭터를 하면서 ‘결국 언젠가 칼질을 당할 텐데’라는 생각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보고 있어요.

최근 V4.20 밸런스 패치가 진행되면서 한동안 등한시됐던 캐릭터들이 강해져서 주목받고 있죠. 만약에 그 캐릭터를 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사람들에게 이번에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밸런스 패치 이후 제가 추천하는 캐릭터는 리리, 레오, 아머킹 3가지예요.

 

Q. 대회를 보면 트라이발(tri:bal)이나 아빠킹과 같이 오랫동안 봐온 선수들과 대결을 하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둔다. 이미 선수들의 패턴을 파악해서 그런 것인지 궁금하다.

확실히 그런 게 있긴 한 것 같아요. 트라이발 같은 경우엔 선수 시절 초창기부터 만나 처음엔 좀 고전했는데, 많이 하면서 이 사람의 운영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까 좀 대처가 쉬워졌죠.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마냥 이렇게 흘러가는 건 아니에요.

트라이발이 예전에 저한테 “자기가 준비해온 것들을 제가 대처하는 게 재밌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결국 자기도 어떻게 해야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서 내놓으면 저는 그것들을 경험하면서 이런 식으로도 게임을 하는구나 깨달으면서 대처법을 생각하는 구도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죠.

 

Q. 게임에서 패배할 때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자신만의 마인드컨트롤 비법이 있는가?

어렸을 때는 게임을 할 때 계속 지면 너무 분하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지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을 뿐이지 내가 왜 지는지에 대해 생각을 안 했어요.

근데 스무 살 이후에 이 게임을 제대로 파기 시작했을 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졌고,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공략하고 있는가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게임을 지면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결국 내가 못해서 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못해서 졌는지’를 먼저 생각해요.

그걸 생각하고 다음에 다시 붙어서 이기면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하면서 깨닫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이기기 위한 해결법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까 화를 낸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Q. 대회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있다면?

저 같은 경우엔 화랑이 대회에서 사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화랑이 엘리자, 기스, 아쿠마 등 DLC 캐릭터를 만나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생각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또 제가 자주 하는 브라이언도 DLC 캐릭터를 상대하기 너무 어렵더라고요.

물론 이 캐릭터들의 숙련도를 쌓아서 격파해도 되겠지만, 프로로 뛰기 시작하면서 다 잘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브라이언을 연습해서 이기기보단 다른 캐릭터를 연습해서 공략하는 쪽이 시간 대비 효율이 좋다고 판단했어요.

너무 하나의 캐릭터로만 다 하려고 하는 부분에서 생각이 좁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다양하게 펼쳐놓고 게임을 해보려고 했죠. 브라이언은 요즘에 조금씩 꺼내고 있지만 아직은 어렵다고 느꼈어요.

풍신류도 나락이 강력한 건 맞지만 막혔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커서 아무리 우위를 점하고 있어도 한 방에 죽는 일이 많아 조금은 꺼내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Q.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의 차이가 궁금하다.

한국 선수들은 ‘여기서 이걸 질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감하게 할 땐 엄청 과감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는 사람들은 견고하게 해요. 근데 견고하게 하는 사람들도 결국 지를 때는 질러요.

그래서 결국 질러서 잘되면 정답이고 실패해서 패배하면 오답이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어떤 상황이든 엄청 침착하게 플레이해요. 옛날부터 일본에서 게임을 하면 질린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기회를 노리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장기전으로 하면 일본 선수들을 상대하는 게 까다로워요.

저도 옛날에는 일본과 동일하게 내가 공격을 내질러서 발생하는 변수를 만드는 걸 안 좋아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죽기 전에 내질러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 플레이스타일에 맞춰졌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 최고의 라이벌이 누구였다고 생각하는지?

옛날엔 이런 질문을 들으면 항상 누군가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고 선택을 해왔는데, 철권7 월드 투어 당시엔 아슬란 애쉬 선수에게 계속 패배해 라이벌이라고 이야기했죠.

하지만 나중에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다 이기고 나니까 드는 생각이 '나만 잘하면 다 이기겠다'였어요. 그래서 요즘엔 제가 잘하면 다 이긴다고 생각하니까 딱히 라이벌이 누구라고 대답을 못 할 것 같아요.

Q. 지난번에 '전설을 찾습니다' 콘텐츠로 철권 태그 고수를 찾은 적이 있다. 관련 에피소드는 없는가?

이게 사실 90년도 후반에서 2000년도 초반까지 되게 옛날 이야기잖아요? 오락실이 하나씩 없어지면서 아쉬움이 컸어요. 그런데 가끔 시청자분들이 옛날에 오락실을 다녔으면 무릎도 만나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시는 거예요.

시청자분들이 그러니까 저도 옛날에 게임을 했을 때 태그1의 성지에 가봤다면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도 다 만나보고 얼마나 좋았을까 싶으면서 당시 고수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죠.

다만 그때는 제가 굉장히 어리기도 했고, 촌에서 게임을 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옛날부터어떤 종목이나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뭔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옛날에 잘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게임을 했는지 되게 궁금하기도 하고 얘기도 나눠보고자 유튜브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죠.

근데 그분들도 이제 다들 나이가 많으시고 가정이 있거나 그분들만의 일상생활이 있으니까 괜히 유튜브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셔서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결국 저도 그분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찰나에 어떤 분과 연락이 돼서 인터뷰도 한 번 진행하고 이야기도 나눠봤는데, 제가 모르는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거예요.

다음에도 혹시나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인터뷰를 보셨다면 너무 부담가지지 마시고 연락주세요.

 

Q. 철권 외에 WoW만 즐기는 거로 알고 있다. 혹시 염두에 둔 게임이 없는가?

이제는 PC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모바일 게임도 해야 하는 시대여서 킹오파 올스타나 서머너즈워: 백년전쟁 등 이것저것 좀 많이 해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킹오파 올스타의 경우 이전에 철권이랑 콜라보를 하면서 잠깐 출연했는데, 한 번 출연하고 끝날 줄 알았지만 제가 직접 게임을 해보니까 재밌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방송에 꾸준히 나가게 됐어요.

게임을 알면 알수록 얘기할 것도 많아지니까 사람들한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철권이나 WoW만 할 게 아니고 방송을 하는 사람이면 여러 게임을 아는 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Q. 서머너즈워: 백년전쟁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비결이 있었다면?

백년전쟁은 대회전에 연습게임만 잠깐 해본 것뿐이었는데, 게임이 그렇게 막 어렵지 않았어요. 나중에 상대가 스킬을 썼을 때 카운터를 하면 무조건 내가 먼저 사용한다는 개념을 알고 나니까 이것만 잘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제가 또 철권을 꾸준히 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보고 반응하는 게 일상이라서 상대가 스킬을 쓰는 것을 보고 있다가 카운터만 해도 이기니까 시청자들이 알려준 것을 참고해 최적의 덱을 완성하고 연습을 계속했어요.

보통 저처럼 격투게임만 하는 사람보단 종합 게임을 즐기는 인플루언서들을 부르니까 이런 기회가 잘 없어서 이번에 격투게임을 하는 선수들도 이런 게임을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잘 나왔더라고요.

서머너즈워: 백년전쟁 이벤트 대회에서 100명 중 9위로 마무리했다

Q. 만약 주 게임을 다른 게임으로 변경한다면 어떤 게임으로 바꿀 것인지 알고 싶다.

사실 이런 쪽으로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아직 철권을 제외하고 엄청 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임이 안 보이더라고요.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경우엔 시청자나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시작했었는데, 게임이 재밌긴 했지만 나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저랑 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굳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간다면 차라리 제가 그래도 자신 있는 격투게임에서 다른 게임을 찾아서 할 것 같네요. 제 입장에선 격투게임이 다른 장르 게임들보다 이겼을 때 가장 크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장르라고 생각해요.

 

Q. 선수 생활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만 100회 우승까지 달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 제가 우승하지 못했던 대회에서도 한 번씩 우승해보고 싶고, 가장 오랫동안 활동했던 프로게이머로 남아 보고 싶어요.

더 나아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커지면 철권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수 있도록 대중화하는 것에도 동조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Q. 위에서 말한 것들을 해보기 전까진 은퇴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요즘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시청자분들이 가끔 나이 먹었네, 은퇴해라, 늙었네와 같은 말들을 하시는데, 저도 저 자신이 못한다고 느낄 때는 ‘내가 늙었나보다 반응이 옛날 같지 않네’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시청자들도 맞는 말이라고 긍정을 해주세요. 근데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그대로지만 몸이 안 따라줘서 못하거나 먹고 살아야 해서 못하거나 사람들 다 똑같을 거예요.

저도 아직 제 마음은 옛날에 했던 그대로인데, 뭔가 그렇게 합리화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제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들을 이룩하기 전까진 은퇴할 생각이 없어요.

 

Q. 우승하지 못한 대회 중에 ATL 그랜드 파이널이 있다. 패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그때는 압박감이 컸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그전에 치른 ATL 시즌마다 계속 결승전을 갔는데, 항상 패자조로 올라가 리셋을 하고 우승한 적도 있지만 계속 지는거에요. 그래서 그랜드 파이널에서도 리셋을 했을 때 엄청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여기서 또 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잡고 있던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해 플레이가 망가지면서 진 게 아닌가 싶네요.

아쉽게 2위로 마무리했던 2020 ATL 그랜드 파이널

Q. 최근 ATL 시즌을 진행하면서 만나기 싫은 선수와 대진을 이뤄 기권한 후 패자조로 내려간 적이 있다. 이와 관련된 소감을 듣고 싶다.

제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들은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얼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만나니까 너무 게임을 하기 싫은 거에요. 그래서 시청자들도 이해해주겠지라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패자조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막상 기권하니까 시청자분들 중에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저를 응원하려고 왔는데 그냥 기권하는 모습에서 허탈감과 실망감을 느낀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상대를 압도적으로 이겨버리고 올라가는 걸 기대했지 싸우지도 않는 건 생각을 못 했던 거죠.

내가 싫다고 대결을 안 할 수 있지만, 선수 입장에선 팬들을 위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저도 생각해 보니까 좀 안일했던 것 같아서 그다음엔 마인드를 바꾸고 그 선수를 이기니까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Q. 제자 양성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까진 딱히 계획엔 없어요. 제자라는 게 누구를 키우는 거잖아요? 철권을 예전에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알려주는 걸 했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느끼기엔 배웠던 사람들이 고마움을 잘 모르는 것 같았어요.

자기가 잘해서 거기까지 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알려줘봤자 의미가 없고, 결국 나중엔 경쟁 상대일 뿐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같이 활동하는 팀원들한테만 같이 연습하거나 필요한 부분 알려주고 피드백하는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선수 생활 그만둬야 제자 육성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Q. 격투게임 장르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인데, 필수 습관 같은 게 있는지?

격투게임을 하시고 싶은 분들에게 화를 좀 참아야 한다고 말해요. 요즘엔 게임을 지면 모니터나 키보드 부수고 그런 얘기들이 우스갯소리라도 많이 들리잖아요?

물론 지면 엄청 열 받을 수는 있죠. 근데 사람이 굉장히 화가 났을 때 심리가 단순해지거든요. 제가 플레이할 때도 화가 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다 내밀어주니까 저는 그냥 기다렸다가 때리기만 하면 이겨요.

특히나 철권은 심리전 중요한 게임인데 화가 나면 그런게 전혀 이뤄지지 않아서 화를 다스릴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습관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과 게임을 하는 거예요. 높은 실력을 가진 선수한테 부딪히다 보면 깨닫는 게 있겠지 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아무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깨닫기도 전에 져요.

사람들이 랭킹 매칭을 하면서 리벤지 신청을 해야 하는지 많이 물어보세요. 괜히 지고 빼면 쫄아서 리벤지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리벤지를 안 하는게 전혀 비매너 행위가 아니고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만 이기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생각하세요.

간혹 채팅창에 몇 시간 만에 등급 어디 달성했다고 채팅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등급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Q. ROX를 선택한 이유가 일고 싶다.

2017년쯤에 제가 미국에서 열린 EVO 대회에 나갔다가 3위인가 하고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단발성 혹은 월드 투어와 같은 철권 대회 같은 게 많이 생기면서 변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드디어 철권도 e스포츠의 모습을 갖추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를 기점으로 외국에서 선수를 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제가 프로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 ROX 타이거즈가 롤에서 잘나가고 있어서 어느 정도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거기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온 거에요. 그래서 만약 프로생활을 한다면 소통이 쉬운 한국을 선택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하고 ROX를 선택하게 됐어요.

 

Q. 곧 TEN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한 각오를 듣고 싶습니다.

며칠 전 ATL 팀전에서 저희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떨어졌지만, 이후 부산에서 개최되는 TEN 철권7 팀전에선 어떻게든 성적을 내보려고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여기서 좋은 성적을 내놓으면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 부산에 신설된 e스포츠 경기장에 직접 가 팬분들 앞에서 게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우승을 차지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정준혁 기자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열정으로 열심히 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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