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가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선 감독의 능력을 인정하고 대우가 필요해"

[게임플]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조제 무리뉴' 해외 축구 팬들 중에 이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각종 스포츠에서 감독은 실력에 따라 선수들 못지 않게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팀 성적에 큰 비중을 차지해 감독에 따라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팀이 부활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팀이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e스포츠에서도 감독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각 팀은 성적 반등 혹은 최상위권 유지를 위해 실력이 좋은 감독을 찾아나서고 있다.

해외 리그를 포함한 모든 e스포츠 팀들의 감독은 크게 선수들의 식단, 스케줄을 주로 관리하는 감독과 선수들에게 전술 및 포지션을 제시하는 감독으로 구분된다.

과거에는 전자 스타일의 감독이 많았고 사실 지금도 존재한다. 이들은 소속 팀 선수들의 기량에 성적을 맡기고 본인은 선수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관리하면서 연습 상황과 성적을 사무국에 전달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심부름꾼'이다. 스포츠계에서 '감독'이라는 호칭은 이들이 짊어지기엔 너무 무겁고 고귀한 영역이다.

최근 각종 e스포츠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의 감독들을 보면 확연히 다르다. LCK 서머 시즌 1위를 달리는 DRX '김대호' 감독이 대표적이다.

김대호 감독은 매번 직접 선수들에게 세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거로 유명하다. 경기를 승리한 경우에도 경기력이 좋지 않은 선수들에겐 질책을 쏟아내고 개선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대호 감독의 피드백 방식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지만, 그가 맡은 팀과 선수들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해 감독으로써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감독의 능력 중 하나인 선수를 바라보는 눈썰미도 남다르다. 그리핀 시절 그는 쵸비, 바이퍼, 리헨즈라는 새로운 선수들을 기용했고, 그들은 세계 최고의 미드 라이너와 바텀 듀오라고 평가됐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DRX에서도 그의 눈썰미는 정확했다. 징계로 인해 이미 대회에서 증명된 선수들을 놓친 김대호 감독은 DRX의 2군, 3군 소속이었던 '표식'과 '케리아' 선수를 1군으로 기용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고 스프링 시즌에서 경험치를 얻은 '표식', '케리아', '도란' 선수는 현재 팀 내 에이스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그리핀 사건의 중심인 '카나비' 선수는 LPL '징동 게이밍'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김대호 감독도 이루지 못한 리그 우승도 차지했다.

즉, 김대호 감독은 LoL의 경기를 5인이 아닌, 6인 플레이 게임으로 바라보고 선수들에겐 자신의 전략을 그대로 수행하는 마치 '아바타'와 같은 역할만 요구해 컨트롤과 플레이에만 집중시키는 것이다.

감독의 전략이 상대에게 통하지 않을 때는 선수들의 피지컬에 따라 달려있다. 힘든 상황 속에서 번쩍이는 선수들의 슈퍼 플레이가 전술의 약점을 보완하고 이것을 많이 이뤄내는 선수는 가치와 등급이 상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배할 경우 책임은 감독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스포츠 감독들의 역할이며, 만약 감독이 이것을 무서워하고 회피한다면 개인과 팀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은 패배로 인해 자존심이 무너지는 건 동일하겠지만, 패배 원인에 대한 부담감은 다소 줄어들어 다음 게임을 준비할 때 멘탈 회복 시간이 단축된다는 이점이 생긴다.

감독의 중요성은 최근 '샌드박스 게이밍'을 봐도 알 수 있다. 샌드박스 게이밍은 이번 시즌 LCK 최초로 '야마토 캐논(야콥 멥디)'이라는 외국인 감독을 기용해 큰 화제를 모았다.

문제는 코로나19가 복병이었다. '야마토 캐논' 감독은 지난달 18일 한국에 입국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2주간 격리 기간을 가져야 하는 바람에 선수들과 화상 통화 프로그램으로 전술을 공유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감독의 피드백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던 샌드박스 게이밍 선수들은 프로 선수의 기본도 갖추지 못했다는 혹평이 쏟아질 정도로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고, 이로 인해 현재 0승 5패를 기록해 최하위에 위치한 상태다.

지난 7월 2일 샌드박스 게이밍에게 낭보가 들려왔다. '야마토 캐논' 감독의 격리가 해제되면서 드디어 LCK 최초 외국인 감독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LCK 팬들 사이에서도 과연 다음 경기에서 '야마토 캐논' 감독의 직접적인 지휘로 샌드박스 게이밍이 그토록 원하는 1승을 챙기고 꾸준하게 반등할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는 e스포츠가 아닌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럽 대표 축그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의 유명 구단인 '바이에른 뮌헨'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 시즌 초 '니코 코바치' 감독과 헤어지고 임시 감독을 맡긴 '한스 플리크'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시켰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에는 '토마스 뮐러'라는 선수가 있었다. 토마스 뮐러는 과거 독일 월드컵 우승과 바이에른 뮌헨 트레블 기록의 주역으로 활약한 유명 선수 중 하나였지만, 니코 코바치 감독 체제에선 제 기량을 펼칠 수 없어 이적설까지 나왔던 바 있다.

당시 코바치 감독은 토마스 뮐러를 두고 "소방수 역할이 필요하면 그는 분명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토마스 뮐러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 자리를 황급히 자리를 떠났을 정도였다.

토마스 뮐러의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팀 성적도 주춤하기 시작했다. 결국 바이에른 뮌헨은 '니코 코바치'를 경질했고, 그의 지휘봉을 물려받은 '한스 플리크' 감독은 토마스 뮐러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토마스 뮐러에세 득점에 주력하는 역할 대신,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겼다. 그간 벤치에서만 경기를 멍하니 바라봤던 토마스 뮐러도 오랜만에 경기장을 밟은 덕분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선택은 축구 역사에 남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토마스 뮐러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에서 남다른 기량을 보여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고 주춤했던 팀의 분위기는 활기를 되찾았다.

여기에 핵심 공격수인 '레반도프스키'의 공격력도 한층 강화돼 토마스 뮐러는 리그 역사상 최다 어시스트 기록, 레반도프스키는 현재 유럽 5대리그 득점왕을 달리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토마스 뮐러는 34R 경기를 마친 후 "지난 가을은 우리 팀에게도, 나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다"며 "나는 '자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많은 사람은 아마 이런 감정을 '자랑스러움'이라고 표현할 거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렇듯 스포츠에서 감독은 팀 전체를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며, e스포츠 팬들도 감독의 중요성을 인지해 점점 그들의 능력과 실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추세다.

이에 따라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지식이 전혀 없으면서 과거의 인맥으로 자리를 꿰찬 감독이나 구단주들은 자연스럽게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코치가 있는데, 감독이 왜 중요하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코치는 감독의 지휘를 보좌하는 역할이지, 감독의 지휘를 대신 수행하는 역할이 아니기에 명백하게 구분해야 한다.

결국 모든 경기를 지휘하면서 선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역할은 감독이고, 그만큼 감독은 자신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제대로 통솔하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것이다.

팀 내 감독의 비중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확실한 대우를 해주는 것은 e스포츠가 또 하나의 스포츠로 확실히 인정받고 자리를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 위해 e스포츠 시장도 다른 스포츠처럼 감독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체계가 활성화된다면 e스포츠 시장 발전 속도에 가속도가 붙을 거라 생각한다. 

이번 2020 LCK 서머 시즌에서도 경기가 끝난 후 POG를 받은 선수들만 인터뷰하는 것이 아닌, 감독들의 인터뷰도 함께 진행했다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는 단순히 인맥으로 기용되는 허수아비와 같은 감독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감독들이 많이 기용돼 '감독 vs 감독'의 전술 싸움이 메인으로 펼쳐지는 e스포츠의 세련된 모습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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