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T1' 완벽한 오브젝트 관리와 한타 운영으로 굳건하게 사수한 LCK 최고봉

[게임플] 코로나19 사태가 심각 단계로 격상하는 상황에서도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는 e스포츠의 장점을 이용해 꾸준하게 이어온 2020 LCK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우승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T1.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면서 결승전에 오른 젠지를 3대0으로 물리치면서 시즌 초반에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선수 영입 퀄리티에 대한 우려를 종식시키고 당당하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T1은 LCK 3회 연속 우승, 총 9회 우승이라는 그 어느 팀도 넘볼 수 없는 타이틀을 얻어냈다. T1의 이러한 행보와 함께 했던 페이커 선수는 이번 결승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내 미드 라이너의 최고임을 증명해냈다.

아울러, 페이커 이상으로 잘해준 선수는 새롭게 T1으로 영입된 커즈와 칸나였다. 특히, 칸나 선수는 연습생에서 처음으로 LCK를 출전했음에도 한국에서 내노라하는 탑 라이너들을 모두 물리치고 로얄로더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시즌이었다.

"젠지가 무력하게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자들도 여러 의견을 제시하면서 토론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밴픽이었다. 젠지는 1경기부터 커즈를 저격하면서 정글 챔피언 3밴을 진행했다.

이미 결승 무대에 익숙했던 클리드 선수가 커즈 선수를 압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사실 이전 DRX 전부터 기세가 등등했던 커즈였고, 현재 메타상 쓸만한 정글 챔피언이 많은 상황에서 굳이 정글에 밴카드를 모두 소비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의아함이 들었다.

이로써 젠지는 아지르와 렉사이를 통해 미드 라인, 정글에서 초중반 압박을 강하게 넣고, 탑 라인과 바텀 라인은 다소 시간이 지나야 그 진가가 발휘되는 조합을 선택했다.

T1의 경우 반대로 미드 라인과 정글에서 다소 성장이 필요한 코르키와 그레이브즈를 선택하고, 탑 라인에서 사일러스, 바루스, 쓰레쉬를 통해 라인전 단계부터 강력한 조합으로 중, 후반 밸런스를 맞췄다.

각 팀마다 자신들이 선택한 조합에 대해 바라보는 그림이 있었고 나름 근거도 명확했기에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2레벨부터 상대 칼날부리 지역을 파밍하고 돌아오는 그레이브즈에게 BDDD(아지르)가 잡힌 시점부터 T1의 우세가 확정적이었다.

불리한 상황에서 젠지는 드래곤을 따라가고 사일러스를 잡아내는 상황도 만들었으나, 사실 역전의 발판을 만들기엔 아무 영향이 없었던 요소였다. 엄밀히 말하면 결승전 1경기부터 3경기 내내 같은 방식으로 패배했다.

운영적으로는 오브젝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억지로 진입하다가 진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한타에서 대패했고, 후반부에는 바론을 내주지 않기 위해 급하게 막아내려다가 결국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였다.

그나마 초반에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던 2경기도 굳이 무리해서 차지할 필요 없는 오브젝트를 지키려다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챔피언 구성을 봐도 T1은 초반에 다소 힘들거나 망해도 미래가 보장되는 챔피언을 고른 반면, 젠지는 초반에 힘을 쓰지 못하거나 망하면 아예 힘을 쓰지 못하는 캐릭터를 선택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렉사이'와 '자르반 4세'. 특히, 렉사이는 상대 정글 챔피언을 압도하면서 뛰어난 갱킹력으로 이득을 계속 취하지 않으면 성장형 정글 챔피언에 비해 중, 후반 포텐셜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형 챔피언인 그레이브즈에 비해 모든 면에서 밀린 렉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당연히 힘을 쓰지 어렵기 때문에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으며, 미드 라인의 비디디 선수도 아지르를 통해 슈퍼 플레이를 선보이기엔 바루스와 코르키의 성장력이 너무 압도적이라 포킹 몇 대만 맞고 귀환하는 상황이 계속 벌어졌다.

관련해서 대회에서 1티어로 떠오른 유성 포킹 바루스를 1, 2경기 T1에게 내주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 바루스를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도 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젠지의 패배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기세에서 밀려버린 젠지는 결국 3경기에서 바루스와 코르키를 밴 카드로 사용했다. 개인적으로 DRX와 담원에서 담원이 보여줬던 뚝심있는 밴픽을 보여주면 차라리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T1 입장에선 밴픽을 통해 상대가 자신들의 실력을 그만큼 인정했다는 점을 느꼈을 것으므로 자신감이 넘쳤다. 칸나는 제이스를 상대로 자신의 에이스 챔피언인 오른을 과감하게 선택했고, 코르키가 닫힌 페이커는 트레이드 마크인 아지르를 꺼냈다.

사일러스도 밴픽을 예측하기 힘들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1, 2경기에선 탑 라인에 기용했지만, 3경기에선 커즈가 사용한 것. 이미 그레이브즈, 울라프, 그라가스, 트런들 등 다양한 정글 챔피언을 다뤘던 커즈의 챔피언 폭이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다.

기세에서 밀린 탓일까? 젠지는 1, 2경기보다 훨씬 더 허무하게 무너졌다. 오른을 압도하기 위해 뽑은 제이스는 DRX 도란이 당했던 것과 같이 솔로 킬을 내주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이전까진 강타 싸움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던 클리드도 오브젝트를 두 번이나 빼앗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다전제의 T1, 결승전의 페이커 등 T1은 이번에도 LCK 최고 자리에 등극하면서 국내 e스포츠 팬들에게 자신들의 위상을 증명했다.

한편, 결승전이 끝난 후 관계자들 사이에선 해외와의 경쟁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확실히 라인전부터 안정적인 운영과 오브젝트 획득을 통한 이점 강화 전략은 LCK의 장점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브젝트와 킬 스코어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꾸준한 싸움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가는 LEC와 LPL 스타일의 경기를 보여준 팀이 없어 과연 LCK 팀들이 월드챔피언십에서 이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나마 DRX가 T1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보여준 비원딜 전략이 최근 G2가 보여준 조합과 비슷했다. 압도적이었던 T1도 3경기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만큼 해외와의 경쟁력을 위해 서로가 플레이 스타일을 한층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코로나19로 인한 MSI의 취소는 아직 해외 팀과의 대결 준비가 끝나지 않은 LCK 팀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팬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월드챔피언십 우승. LCK가 3부 리그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LCK 상위권 팀들은 당장의 섬머 시즌과 월드챔피언십을 한꺼번에 준비할텐데, 과연 이번 시즌에 LCK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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