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게임

[게임플]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중반에 비디오게임으로 출시된 게임이 휴대용 게임기로 이식되면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어렵지 않게 '앉아서 하던 게임을 누워서도 할 수 있게 됐다', '화장실에서 일 보면서도 게임할 수 있겠네' 등의 반응을 찾을 수 있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이는 꽤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다. 단순히 게임이 구동되는 플랫폼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게임으로 인해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PC 혹은 비디오게임 위주의 시장에서 게임이라 하면 '정해진 장소에 앉아서 즐기는 것'이었다. 휴대용 게임 시장이 일찍부터 존재하기는 했으나 주력 산업으로 게임 산업을 이끌지는 못 했기에 이런 명제에 변수로 작용하지는 못 했다.
 
모바일게임 시장의 부각은 이런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게임이라는 개념의 기저에 깔려있는 이런 '기본 사항'에서 유저들이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게임을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됐으며, 집 안팎을 가리지 않고, 눕거나 앉거나 등 자세를 가리지 않고 하는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다. 
 
로스트아크는 11월 게임시장 최대 화제거리다. 출시 전부터 큰 기대를 받았고, 출시 후에는 기대에 부응하는 게임성을 선보이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이 와중에 불거진 접속대란과 이에 대한 스마일게이트의 대응은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들마저 '도대체 무슨 게임이기에 이 난리인가' 하면서 게임판을 기웃거리게 만들었다. 
 
핵앤슬래시와 MMORPG가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PC 온라인게임을 기다리는 유저들이 많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지금이야 개선되기는 했다지만 한때 2만 명을 넘어선 대기열 숫자 그 자체는 불편하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게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걸고 있고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를 가장 잘 증명하는 데이터다.
 
지난 몇년간 모바일 MMORPG의 폭발적 성장은 MMORPG의 개념을 바꿔놨다. MMORPG는 PC 앞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로 즐기는 것이 아닌 스마트폰을 터치하면서 즐기는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MMORPG는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장르가 됐고,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라이프' 역시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MMORPG는 유저들의 생활 습관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습관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작이건 이미 시장에 출시됐던 게임이건 가릴 것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유저들이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모습을 바꿨다. 
 
개인적으로 로스트아크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현상은 앞서 이야기한 각종 지표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닥에, 침대에, 쇼파에 주저앉고 드러누워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PC가 놓여진 책상 앞 의자에 앉게 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지난 몇년간 유저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든 MMORPG를 즐기는 기본 자세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편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치를 느끼는 재화, 서비스, 물건이라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손에 넣고 경험한다.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손에 넣기 위해 밤새 줄을 서서 전자제품 출시를 기다리는 이들의 소식은 이를 증명한다.
 
편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굳이 불편하게 한 자세로 앉게 했다는 것은 로스트아크가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피곤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게임'. 올해 출시된 게임 중 유일하게 로스트아크만 획득한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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